0119 ㅈ일보
'새로운 가치 창출과 동반될 때만'에서 '동반될'의 주어는 무엇인가? '일자리는'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자리가 새로운 가치 창출과 동반될 때만'이 말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문장이 어색하기만 하다. '창출과'가 호응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에서 벗어나려면 '창출과'를 '창출이'로 바꾸면 된다. '동반될'의 주어는 '창출이'이다. 사실 '동반되다'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 말이다. 따라서 더 쉽게 이해되는 '동반하다'라는 말을 쓰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일자리는 새로운 가치 창출을 동반할 때만 지속 가능하고'라고 하는 것이다.
0119 ㅈ일보
'어정쩡해 보이는 이 기간 동안'이라는 표현은 뜻이 모호하다. '어정쩡해 보이는'의 주어가 '이 기간'이라는 것인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모습'이라는 것인지가 분명치 않다. 표현 자체만 놓고 보면 '어정쩡해 보이는' 것은 '이 기간'이다. 그러나 문맥을 살펴보면 기간을 두고 어정쩡해 보인다고 한 것 같지는 않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태도와 행동이 어정쩡해 보인다고 말한 게 아닌가 한다.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어 의아함을 느끼게 한다. 뒤에 '중요한 시기'라는 표현을 썼기에 '어정쩡해 보이는'은 '이 기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하다. 이런 의아한 느낌을 막으려면 '어정쩡해 보이는'을 빼는 것이 좋다. '어정쩡해 보이는'이 없다고 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뜻을 놓치는 것이 있는가? 뺄 수 없다면 '어정쩡해 보이게 행동한 이 기간 동안'이라고 명확하게 뜻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0119 ㅈ일보
조사 '에'가 체언 뒤에 붙으면 부사어로 기능을 하면서 반드시 서술어가 필요하게 된다. 서술어는 동사나 형용사가 맡게 되는데 위 문장의 '독도에 군 위안부 소녀상 설치 주장이나'에서는 '설치'라는 명사만 있을 뿐 동사가 없다. '독도에'와 호응할 말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조사 '에'를 쓰지 말고 그냥 '독도 군 위안부 소녀상 설치 주장이나'라고 했어야 한다. 조사 '에'를 굳이 쓰고자 한다면 목적어와 서술어를 갖추어 '독도에 군 위안부 소녀상을 설치하자는 주장이나'라고 해야 한다.
0119 ㅈ일보
'진흥하다'라는 말은 '떨치어 일으키다'라는 뜻을 갖고 있어 '무역을 진흥하다', '학문을 진흥하다' 등과 같이 쓰인다. 위 예에서 '서비스산업을 진흥해야'라고 해도 충분한데 '서비스산업을 진흥시켜야'라고 했다. 굳이 '진흥시켜야'라고 할 필요가 없다. 굳이 '시키다'를 쓰지 않아도 될 자리에 '시키다'를 남용하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0119 ㄷ일보
'귀국 1주일 반기문, 언제까지 半半인가'라는 제목의 사설 첫 문단이다. 이 사설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불분명한 정체성, 어정쩡한 메시지, 모호한 태도 등을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위 문단 맨 마지막 문장은 '그러나 그게 단 하루에 될 일인가.'이다. '그게'는 앞 문장의 '보수와 진보를 한꺼번에 아우르겠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게 단 하루에 될 일인가'이다. 이 말은 그 일이 여러 날이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되어야 함을 함축하고 있다. 사설 전체는 불분명한 정체성, 어정쩡한 메시지, 모호한 태도를 비판하면서 이 문장 속에서는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것이 단 하루에 될 일이 아님을 말하니 독자는 수긍하기 어렵다. 사설 전체와 부합하기 위해서는 '단 하루에 될 일인가'가 아니라 '과연 가능한 일인가'라고 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