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다듬기] 지시 대상이 모호한 지시어는 쓰지 않아야

by 김세중

지시 대상이 모호한 지시어는 쓰지 않아야


분열을 넘어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박 전 대통령이 어떤 모습으로 물러서느냐다. 박 전 대통령도 억울한 심정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헌재의 결정은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른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불과 얼마 전까지 대한민국 헌법 최후의 수호자였다. 그 헌법에 따라 대통령직을 물러나게 됐지만 전직 대통령으로서 헌법 수호 자세가 달라질 수는 없다. 그런 자세야말로 국민이 기억하는 박 전 대통령의 진정한 모습이다.

0313 ㅈ일보


'그런'은 지시어다. 무엇인가를 가리킨다. 그런데 위 예에서 '그런'이 무엇을 가리키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애매모호하다. 앞에서 '헌법 최후의 수호자', '헌법 수호 자세'라는 말이 나와 있어 '그런'이 이런 말들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즉 '그런'은 '헌법을 수호한'을 뜻하는 게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그러나 대통령이 탄핵된 것은 '헌법을 준수하지 않아서'라는 게 헌법재판소의 판단인데 '헌법을 수호한 자세'라니 앞뒤가 맞아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그런 자세야말로 국민이 기억하는 박 전 대통령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했는데 헌법을 준수하지 않았기에 탄핵돼야 마땅하다고 믿는 국민이 적지 않은 마당에 뭉뚱그려 '국민이 기억하는 박 전 대통령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말한 것도 수긍하기 어렵다. '기억하는'보다 '기대하는'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거두다'와 '걷다'


출마면 출마, 불출마면 불출마를 분명히 밝혀 정국의 불확실성을 확실히 거둬내야 한다.

0313 ㅈ일보


'거둬내야'는 '거두어내야'의 준말이다. '거두어내야'은 본용언은 '거두어'이고 보조용언이 '내야'다. '거두다'는 '그만두다', '그치다', '접다'와 같은 뜻이 있고, 또 '곡식을 거두다', '승리를 거두다', '유해를 거두다'에서 보는 것과 같이 '수확하다', '얻다', '수습하다' 등과 같은 뜻도 있다. 위 예문에서 '불확실성을 거둬내야'라고 했는데 '거두다'의 목적어로 '불확실성'이 오는 것은 적절치 않다. '불확실성'을 목적어로 삼기에는 '걷다'가 어울린다. '걷다'에는 '거두다'에는 없는 뜻이 있다. '장막을 걷다', '커튼을 걷다', '빨래를 걷다'에서 '걷다'는 말아 올리거나 다른 곳으로 치운다는 뜻인데 추상적인 '불확실성'에 대해서도 '걷다'를 쓸 수 있을 것이다. '불확실성을 걷어내야'라고 하면 될 것을 '불확실성을 거둬내야'라고 해야 할 까닭이 없다.


출마면 출마, 불출마면 불출마를 분명히 밝혀 정국의 불확실성을 확실히 걷어내야 한다.



좀 더 세심하게 문법을 살펴야


안개가 걷히면서 대한민국호(號) 앞에 형체를 드러낸 것은 엄청난 파도다. 새롭게 나타난 파도가 아니라 ‘탄핵 내전’의 포화에 가려 보지 못했을 뿐이다.

0313 ㄷ일보


'새롭게 나타난 파도가 아니라 ‘탄핵 내전’의 포화에 가려 보지 못했을 뿐이다.'라고 해도 무슨 뜻인지 모를 사람은 아마 없겠지만 문법의 관점에서 보면 완벽한 문장이 아니다. '~이 아니라'가 나왔으면 '~이다'가 나와야 맞다. 그런데 ''탄핵 내전'의 포화에 가려 보지 못했을 뿐이다'가 나왔다. '뿐이다'에 '이다'가 있지만 '뿐이다'가 '파도는'에 호응하는 말은 아니다. '아니라' 대신에 '아니며' 또는 '아니고'라고 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니라'를 굳이 쓴다면 '보지 못했을 뿐이다' 대신 '보지 못한 것 뿐이다'라고 하면 된다. '것'의 '일'이 '이다'에 해당한다.


새롭게 나타난 파도가 아니며 ‘탄핵 내전’의 포화에 가려 보지 못했을 뿐이다.


새롭게 나타난 파도가 아니라 ‘탄핵 내전’의 포화에 가려 보지 못한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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