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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Nov 22. 2017

3박 4일 간토 여행

이번 3박 4일의 일본 여행은 연초에 이미 계획을 세웠다. 그날이 다가왔고 일행 여섯 명은 토요일 아침 인천공항에서 만났다. 11월 18일(토) 아침 서울은 너무나 추웠다. 갑자기 영하로 떨어졌으니까.


에어서울은 잘 들어보지 못한 항공사였다. 알고 보니 아시아나의 계열사였다. 이륙한 지 불과 1시간 30분여만에 비행기는 사뿐히 후지산시즈오카공항에 내렸다. 비가 살짝 내리고 있었다. 일본 사는 친구 내외가 마중 나와 있었다. 그가 갖고 온 차에 올랐다.


처음에 가기로 한 곳이 하코네의 온천이었다. 공항에서 그 온천까지는 100킬로가 넘었던 거 같다. 우선 후지산 밑으로 다가갔다. 여름철이 아니라 후지산으로 올라가는 도로는 폐쇄되어 있었다. 23번 도로를 따라 하코네를 향해 달려갔다. 후지산 아래의 23번 도로는 산중에 나 있어 호젓함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산중도로가 끝나니 고텐바시였고 다시 꼬불꼬불 하코네산 밑에 난 길을 달려 하코네유모토역 앞을 지났고 오른쪽으로 꼬부라져 텐잔온천에 도착했다. 일본에 참으로 많은 온천이 있지만 텐잔온천은 제법 알려진 온천인 것 같았다. 온천 안에 전망 좋은 식당이 있어 거기서 요기를 했다.


탕은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했다. 크고 작은 탕이 여럿 있었다. 물의 온도도 달랐다. 자그만 노천탕이 큰 탕 위에 둘이나 더 있었다. 이리저리 옮겨가며 즐길 수 있어 좋았다. 온천욕을 하고 나와 숙소로 예약해둔 가와구치호 부근의 호텔로 향했다. 운전한 친구가 첫날부터 운전을 참 많이 했다.


야마나카호를 지나 가와구치호에 닿았다. 예약한 호텔은 이름이 특이했다. 샤리아호텔이었는데 간판에 일본 문자 외에도아랍 글자가 씌어 있었다. 아랍인들이 많이 오는 호텔이었던 것이다. (샤리아는 이슬람법을 말한다.) 야마나카호나 가와구치호나 모두 후지산 북쪽 가까이에 있어 후지산이 잘 보였다.


저녁 먹을 데를 찾아 가와구치호 부근을 돌아보았는데 한 군데 문 연 음식점을 찾아 들어갔다. 서민적인 곳이었다. 라멘을 주문했다. 소주도 곁들여 시장기를 지웠다. 60대 주인 할머니가 한국말을 몇 마디 했는데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익혔다고 했다.


이튿날 아침은 샤리아호텔에서 제공했는데 절로 감동했다. 주방 할머니가 어찌나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하고 내놓는지 놀랐다. 손님을 극진히 모시는 게 눈에 보였다. 정중하고 공손했다. 음식 또한 정갈하고 맛깔스러웠다. 일본의 전형적 아침식사...


호텔을 나와 차는 달리고 또 달렸다. 잠은 도쿄 시내에서 자기로 돼 있고 낮에는 닛코(日光) 관광을 하기로 했다. 닛코는 꽤나 거리가 멀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일본의 시골 풍경을 실컷 보았다. 그러나 워낙 거리가 멀어 다시 고속도로로 들어가 우쓰노미야를 통과해 닛코에 닿았다.


닛코는 일본 중부의 작은 도시로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묘와 유적이 있는 곳이다. 그래선지 일본인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손자 묘를 먼저 보고 이에야쓰의 묘로 넘어갔다. 일본을 통일한 장군은 후세 일본인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닛코 관광을 마치고 도쿄로 오는 길은 멀고 험했다. 거리야 뻔하지만 워낙 교통 정체가 심했기 때문이다. 하도 막혀 도중에 하뉴(羽生) 부근의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어갔다. 가서 놀랐다. 휴게소가 마치 민속촌처럼 일본의 전통 가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로 치면 평택쯤 되는 거리였을 것이다. 그 휴게소에서 음식을 사먹는 사람들이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해 음식을 들고 허둥대고 있었다.


드디어 도쿄로 들어왔다. 예약한 호텔은 지요다구에 있었다. 짐을 방에다 놓고 야식을 하러 밖으로 나왔다. 일요일 밤이라 음식점 문 연 데가 거의 없었다. 어느 한 집이 영업중이라 들어갔는데 그만 바가지를 된통 쓰고 말았다. 생맥주 큰 것 한 잔에 만 원 정도 하는 거야 참을 수 있었지만 시키지도 않은 나물 반찬을 개인마다 하나씩 주었고 나중에 보니 그걸 다 계산에 넣었다. 안주로 시킨 오뎅 같은 건 사진과 달리 양도 형편없었고 맛도 그저 그랬다. 왜 시키지 않은 나물 반찬에 대해 돈을 달라 하냐 하니 다른 손님들도 다 냈다며 막무가내였다. 친절하고 공손한 일본인들 외에 이런 뻔뻔한 일본인들이 있었다. 여섯 명이 간단히 맥주 한 잔 마시고 11만원 정도 내고 나왔다. 


이튿날 아침 눈을 뜨고 근처 거리 구경을 하기 위해 혼자 나왔다. 내를 하나 건너니 도쿄돔이었다. 그 옆에 고라쿠엔 정원이 있었는데 문 사이로 들여다보니 참으로 잘 가꾸어져 있었다. 9시부터 문을 여니 들어가볼 순 없었다. 서점가인 진보초를 지나 호텔로 돌아왔다.


아침부페를 먹고서는 신주쿠로 이동했다. 도쿄도 청사 45층의 전망대로 올라가서 시내를 조망했다. 참으로 드넓은 도쿄였다. 곳곳에 크고 낮은 산이 있는 서울과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아주 까마득히 먼 곳에야 산이 있을 뿐 도쿄는 온통 평평한 지형이었다. 지진이 많이 나는 곳이라서 고층건물도 많지 않았다. 도쿄역 부근쪽과 신주쿠쪽에 고층건물군이 있을 뿐이었다. 그 사이에 2020 하계올림픽을 대비해 경기장 공사가 한창인 곳이 보였다.


도쿄도 청사를 나와 한국인거리로 가 '돈키호테'라는 면세점에 들러 쇼핑을 했고 이어서 일본 사는 친구의 동네인 나카노로 갔다. 시장 거리에 있는 회전스시집에 들어갔는데 손님들이 자리 나기를 서서 기다렸다. 몸을 벽에 기대고서... 그만큼 장사가 잘 됐다. 손님들은 노인들이 많았다. 부부거나 혼자거나... 스시를 몇 접시 하면 그게 곧 식사라 했다. 


회전스시집을 나와서는 근처 수퍼마켓 구경도 했다. 수퍼마켓 앞의 주차장엔 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게 아니라 자전거들이 즐비했다. 그러니 주차장이 아니라 '주거장'이었던 것이다. 자전거는 종류도 다양했다. 전기자전거와 일반 자전거가 섞여 있었고 자전거마다 앞이나 뒤에 짐 싣는 바꾸니가 달려 있는 게 보통이었다. 자전거가 얼마나 생활화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줬다. 중고카메라점도 큼직한 게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제 마지막 밤을 위애 도쿄를 떠나야 했다. 이즈반도의 누마즈(沼津)로 향했다. 그 길이 참 멀었다. 서울에서 대전보다 더 멀었을 것이다. 다행히 고속도로가 막히지 않아 지루하진 않았다. 누마즈에 들어왔고 다시 최종 목적지인 우미노(戶田)에 가기 위해 산길에 들어섰다. 이즈반도는 온통 산이었다. 예전에 가본 이즈반도 동쪽은 그리 험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는데 이즈반도 서쪽은 매우 험준했다. 산길을 한참을 달려서야 해변의 우미노에 이르렀고 예약해둔 호텔에 닿았다. 다다미방이 넓었고 바다 전망이 탁 트였다.


호텔 프런트에서 한국인 직원을 만났다. 그녀는 그 호텔에서 연수중이라 했다. 일본어 실력도 쌓고 일본의 앞선 호텔 운영 방식을 익히고 있는 중이다. 저녁식사가 아주 훌륭했다. 우린 식사 후 욕장으로 내려갔다. 욕장에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편하게 온천욕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 바닷가로 내려갔다. 그곳은 지형이 여간 독특하지 않았다. 마치 인공방파제 같은 자연 지형이 있었다. 깊숙이 만이 형성돼 있었다. 낚시꾼들이 아침부터 각지에서 와 낚시를 하고 있었다. 이곳에도 이따금 지진해일이 오는 듯 곳곳에 경고판이 붙어 있었다. 우미노는 일본의 항해사에도 중요한 일들이 있었던 모양이라 조선향토자료관이라는 일종의 박물관이 있었다. 옛 러시아 선박의 닻도 전시되어 있었고...


우미노의 니시즈고요이온천에서 아침식사까지 하고서 출국을 위해 후지산시즈오카공항으로 향했다. 시즈오카의 바닷가는 시미즈(淸水)항이다. 어시장에 가보았는데 시끌벅적한 한국의 어시장과는 분위기가 아주 달랐다. 시미즈의 어시장 규모가 작아서 그랬기도 했겠지만 일본이 역시 깔끔하고 정갈해서 그랬을 것이다. 스시를 도시락으로 포장해두었기에 그걸 사서 우리 일행은 시미즈역 앞 공원에서 점심을 먹었다.


공항에 닿았다. 우릴 3박 4일 동안 밀착 동행하며 운전하고 안내해준 친구와 석별해야 했다. 그는 고등학교 다닐 때도 착했지만 지금도 매한가지다. 그저 머리만 희끗희끗해졌을 뿐이다. 서울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친구와 헤어졌다.


비행기는 힘차게 하늘로 떠올랐고 창가에 앉은 나는 뚫어져라 지상을 쳐다보았다. 금세 오사카 상공에 이르렀다. 멀리 간사이공항이 바닷가에 있었다. 일본 육지를 지나 동해에 이르렀다. 한국의 포항 가까이에 접근했을 때 바다에 불빛이 밭처럼 펼쳐져 있었다. 오징어잡이 선단이라 했다. 그리고 포항 시내 위를 날았다. 한동대학교로 보이는 곳은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아마 지진 복구 작업을 밤에도 하는 듯했다.


대구, 구미, 김천이 한눈에 보였다. 잠시 후 상주가 보였고 문경도 꽤 밟았다. 얼마 후 대전과 청주가 보였으며 수도권에 이르니 불이 너무 밝아 어디가 어딘지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비행기는 영종도 부근 하늘을 한참 선회한 듯했다. 일본에 갈 때보다 일본에서 올 때 시간이 30분 정도 더 걸렸다. 하지만 무사히 인천공항에 사뿐히 내렸다. 


일본에 며칠 머물면서 몇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다. 사람들이 누구나 가방을 들고 다닌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둘이나 셋 들고 다닌다. 가방뿐 아니라 모자도 즐겨쓰는 것 같다. 심지어 마스크 쓴 사람도 한국보다 훨씬 많다. 거리든 건물 안이든 정갈하고 깔끔한 거야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교통 법규를 철저히 지키는 것도 물론이다. 接骨院, 整骨院이 많은 건 희한했다. 정형외과와는 다른 곳인가. 의사들이 운영할까. 알 수 없었다. 빠찡꼬가 많은 것도 신기했다. 아이들을 태우기 위해 자전거 뒷자리에 아이 좌석을 만들어둔 자전거가 참 많았다. 아침에 보육원, 유치원에 아이를 데려다주기 위해 애를 태우고 가는 모습도 여럿 보았다. 평지가 많아서 그게 가능할 것이다. 도쿄 지요다구에서 바가지를 세게 쓰기도 했지만 일본 곳곳의 음식점들은 나름 정갈하고 깔끔하게 음식을 내놓고 있어 어딜 가든 외국인이 여행하기에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일본의 자동차들이 작은 것도 특이했다. 도로 폭도 대개좁고 주차구역도 좁으니 차도 대개 작은 것 같다. 어디든 질서 있고 깨끗한 일본, 그들은 서로 어울려 사는 법을 오래 전부터 터득해 살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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