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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경 Aug 05. 2023

비트코인을 정의할 때 생기는 흔한 오류

인문학에서 비트코인의 가치를 발견하다

비트코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겉핥기로 작동원리에 관해 공부한 뒤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화폐라더니 가격이 이리 요동쳐서 어디 써먹을 수나 있나?"



"국가 없이 똑바로 돌아가는 화폐 본 적 있어?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돈을 어떻게 쓰라는 거지?"



"비트코인 전송 수수료만 해도 4달러(계속 바뀜)인데 그런 돈으로 어디 커피라도 사 먹겠나?"




각각의 질문에 대한 "기술적인" 반박은 나중으로 미뤄두고, 이 세 가지 질문 자체를 한 번에 무효화시킬 수 있는 재미있는 논리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자.



인간은 창의적인 동시에 매우 꽉 막힌 꼰대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새로운 "범주"의 사물이 나타나면, 무슨 수를 쓰든 현존하는 범주를 활용해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그렇다 보니 사물의 본질을 놓치고 붙여준 이름들로 그 사물의 특성을 단정해 버린다. 결국 그 범주가 온전히 자리 잡는 데에는 꽤 긴 시간이 걸린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한자는 그 글자의 구성을 파헤치다 보면 어떤 논리로 옛 선조들이 글자를 창조했는지 알 수 있다. 


輪(바퀴 륜)은 車(수레 차) 자 와 侖(둥글 륜) 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車(수레 차)는 마차의 모습을 뜻하고, 侖(둥글 륜)은 죽간이 둥글게 말려 있는 모습으로, 수레에 달린 바퀴를 뜻한다. 

이처럼 "바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전의 범주들을 활용하여 새롭게 정의를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바퀴를 "수레에 달린 둥근 것"이라고 더 이상 이해하지 않는다. 바퀴의 本質(본질)이 우리 삶 속에 스며들었기 때문에 바퀴는 이제 그 자체로 하나의 범주에 속한다. 

自動車(자동차)의 경우도 적혀있는 한자 뜻처럼 아무도 "스스로 움직이는 말 없는 수레"라고, 이해하지 않는다. 수레와 자동차는 엄연히 다른 범주의 개념이고, 다른 도로, 다른 법체계가 필요하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봤을 때, 비트코인이 기존의 貨幣(화폐)와 이질감이 든다고 해서 


"비트코인은 화폐라고 불릴 자격이 없어!"


라고 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고방식이다. 새 범주를 만들고 그 안에서 정의를 내리는 방식은 매우 어렵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는 사고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내가 비트코인을 옹호하고 투자하고 공부하는 이유는 비트코인이 완벽한 "투자자산"이거나 새로운 "화폐"라서가 아니라 21세기에 하나의 큰 획을 그을 수 있는 "새로운 범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비트코인은 화폐를 넘어 기술적, 지정학적, 경제적, 인문학적 가치를 지닌다.


현대인들은 포스트 1945 체제, 끝났다고는 하지만 브레튼우즈체제 이전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패권 경쟁이나 국가의 흥망성쇠에 무감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태어나서 보고 자란 세계의 범주로 미래의 범주를 점치는 행동 또한 지양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5년간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시대에 비트코인이 새로운 범주를 차지하게 된다면 지정학적인 질서를 재정립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 비트코인은 단언컨대 21세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문학적 현상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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