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지나간 자리, 퀘벡

by 손지혜

몬트리올에서 퀘벡으로 가는 길을 생로랑 강 북쪽으로 잡았다. 동쪽의 앙주(Anjou)를 지나 몬트리올 섬을 빠져나가면 곧 떼르본(Terrebonne)이라는 작은 소도시가 보인다. 그리고 트루아리비에르 Trois Rivieres를 지나는 복잡한 인터체인지가 나타나면 알게 된다. 여정의 반이 지났다는 것을. 누벨 프랑스 시절 원주민과 영국의 위협을 피해 프랑스인들은 강의 북쪽에 '왕의 도로 (Chemin du Roy)'를 닦았고 그것이 지금의 138번 국도인데,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고 경치가 좋은 곳으로 조금씩 우회하는 구간이 있다고 한다. 이 길이 아기자기하고 예쁘다고 해서 처음 퀘벡에 갔을 때 시도했다가 너무 오래 걸려 중간에 나가버렸던 기억이 있다. (40번 고속도로를 타면 3시간인데 왕의 도로로는 두 배 가까이 걸린다.) 톨비는 안내서 고맙지만 지면의 상태는 영 별로인 고속도로를 달리다 처음으로 사슴의 시체를 봤다. 추운 날, 먹이라도 찾아 나섰던 것일까. 겨울의 시골길은 작은 동물의 로드킬 흔적이 적은 대신 큰 동물들이 죽는 경우가 종종 있다. 더 멀리 가다 보면 순록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쯤 되면 사람에게도 큰 위협이다. 차보다 훨씬 크다는 순록을 나는 한 번쯤 보고 싶기도 하고, 마주칠까 두렵기도 하다. 아직은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된 건 아닌지 눈이 없는 구간도 꽤 보였다.


연말연시 휴가를 맞아 뜬금없는 당일치기를 떠났다. 남들은 비행기를 타고서라도 가는 퀘벡인데 생각해 보니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본 적이 없었다. 퀘벡의 사계를 모두 보았지만 갈 때마다 크리스마스 상점을 들러서였을까? 퀘벡의 크리스마스는 아직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퀘벡시청 앞에 임시로 설치한 크리스마스 마켓은 이미 닫았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화려해진 퀘벡시티를 보러 나는 너무 춥지도 않고 눈이 오지 않는 날을 골라 차를 몰았다.


퀘벡시티에는 사람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남은 사람들인지, 시즌의 정상을 지나 조금은 조용해진 틈을 탄 사람들인지 알 수는 없다. 점심은 좋아하는 브런치 가게에 한 시간 이상 줄을 서서 먹을 수 있었지만, 저녁은 예약이 없어 여러 군데 거절을 당한 후에야 이탈리안인지 프렌치인이 애매한 레스토랑에서 겨우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그런 정도의 번잡함이었다. 적당히 북적이면서도 다니는 데는 문제가 없는 조용한 축제. 컬처클럽의 노래처럼 레드, 골드, 그린으로 가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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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부페인 브런치 레스토랑 L'Antiquaire Buff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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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8_160028.jpg 뒤페린 테라스의 썰매

초록지붕과 빨강지붕

퀘벡에는 유명한 빨강지붕이 두 군데가 있다. 하나는 전에 소개한 적이 있는 부티크 호텔 오베르쥬 뒤 트레조 (Auberge du Tresor)이고 다른 하나는 퀘벡의 전통 요리를 파는 오래된 레스토랑 오 장시엥 카나디엥 (Aux Anciens Canadiens)이다. 오베르쥬 뒤 트레조의 1층에는 레스토랑 '비스트로 1640'이 건물의 역사가 언제 시작됐는지 말해주고 있는데, 지금의 석조건물이 들어선 것은 1805년도였던 것에 비해 오 장시엥 카나디엥은 17세기말에 지어져서 퀘벡시티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에 하나로 꼽힌다. 아담한 가정집 같은 이 레스토랑엔 이름을 봐도 알 수 없는 메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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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지붕으로는 동(copper) 소재가 세월이 지나면서 산화된 것들이 퀘벡에는 많지만, 인위적인 초록지붕은 역시 퀘벡의 백화점 체인인 사이먼즈(Simons)가 대표적이다. 생로랑 강의 북쪽 길을 따라 들어가면 퀘벡의 구시가 입구에서 우리를 맞는 맥도날드처럼 사이먼즈도 마치 400년 전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서있다.


"시몽이 아니고 사이먼이더라"

그러자 딸아이가 말했다.

"당연하지, 불어였으면 뒤에 s가 없었겠지"

"그렇구나"


퀘벡의 기업이니까 Simons를 '시몽'이라고 프랑스어로 발음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라 메종 사이먼즈 (La maison Simons)', 줄여서 사이먼즈는 스코틀랜드에서 온 존 사이먼즈라는 사람이 설립한 회사니까 사이먼즈라고 불러야 한다. 400년 전통의 허드슨 베이 컴퍼니는 작년에 문을 닫았지만 사이먼즈는 꿋꿋하게 패션 및 생활잡화를 팔면서 버티고 있다. 퀘벡 건설 400주년을 맞은 2008년에는 당시 경영자였던 피터 사이먼즈가 퀘벡 국회의사당 앞에 프랑스에서 가져온 분수를 기증하기도 했다. 그게 바로 드라마에서 도깨비가 고딩이랑 '나 잡아봐라'며 놀던 투르니 분수다.

fountain.jpg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금메달을 받았을 정도로 정교하고 예뻐서 퀘벡의 또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밤이 되자 크리스마스의 기운이 아직 남아있는 퀘벡에는 곳곳에 조명을 받아 빨갛고 초록으로 바뀐 지붕이 보였다. 쁘띠 샹플랭 길에서 겨우 찾아 뱅쇼 (Vin Chaud, 따뜻한 와인)를 마셨는데, 이미 닫은 크리스마스 마켓에도 아직 뱅쇼를 파는 곳이 있었다. 축제가 지나간 자리에 남아 노래를 부르는 작은 공연도. 무수히 반짝이는 작은 불빛과 크리스마스트리. 밤이 가장 긴 날들을 희망과 안식으로 채우는 화려한 조명이 추운 겨울날을 감싸면서, 한 편으로는 한 해가 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해피 뉴이어, 평화로운 한 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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