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개스타운의 상징이랄 수 있는 스팀 클락까지 걸어서 5분인 위치에 캐나다 원주민을 지원하는 호텔이 하나 있다. Skwachàys Lodge Indigenous Hotel and Gallery, 이름도 복잡한 이 호텔의 로비는 문을 두드리고 열어주기를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다. 작은 토템폴과 카누, 포스터나 엽서 등 약간의 기념품만 있을 뿐 사진에서 봤던 갤러리의 활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게 황량한 모습을 하고 있는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차이나 타운 방향으로 몇 블록을 걷다 보니 뉴스로만 접하던 펜타닐에 중독된 사람들, 허리를 굽혀 거꾸로 된 U 자 모양으로 서있는 일명 '펜타닐 좀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정말 기괴한 광경이었다. 호텔의 옆 블록인 이스트 헤이스팅스 거리는 밴쿠버에서 가장, 그러니까 캐나다에서 펜타닐 문제가 제일 심각한 밴쿠버에서도 최고로 펜타닐 문제가 심각한 지역이다.
마약을 하는 노숙자가 많아 위험한 위치라는 구글 리뷰를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에야 봤다. 원래는 리뷰가 좋은 호텔이었는데 최근 글에는 조심하라는 사람이 몇 있었다. 하지만 취소하기엔 너무 늦었던 데다 무엇보다 마리화나 냄새 진동하는 몬트리올 중심가도 만만치 않아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캐나다 원주민을 후원한다는 것도 좋았다. 인기도 많아서 몇 달 전에 예약을 했는데도 더블 사이즈 침대가 두 개인 방은 자리가 안 나서 딸의 친구가 합류하는 중간부터는 다른 호텔로 옮겨야 했다.
실제로 호텔은 지내기에 좋은 곳이었다. 리셉션에 일하는 사람들은 어쩌다 조상 중에 원주민이 한 명 있어서 정부의 혜택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누가 봐도 원주민인 사람들이었고 친절했다. 무엇보다 호텔이 너무 예뻤다. 여러 원주민 예술가들이 거주하는 곳이기도 한 이 호텔의 객실은 각각 다르게 꾸며놓았다.
원주민 콘셉트의 호텔이라면 2017년에 갔었던 퀘벡의 '원주민 박물관 호텔 (Hôtel-Musée Premières Nations)'도 인상적이었는데, 그곳이 큰 자본으로 만든 고급 체험학습장이라면 여기는 좀 더 생활공간에 가까운 곳이었다. 원주민의 손길이 느껴지는 곳이 토론토나 몬트리올 같은 동부 대도시보다 밴쿠버에 훨씬 더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밴쿠버에 원주민이 많은가 싶어 찾아봤는데 의외로 원주민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도시는 위니펙과 에드먼턴이었다. 그럼에도 밴쿠버에 원주민들의 존재감이 도드라지는 이유를 알아보았다.
1. 양도되지 않은 땅의 법적 지위
프랑스인 자크 카르티에가 퀘벡 땅에 찾아온 이래 프랑스와 영국은 불공정하고 무식한 방법으로나마 원주민들과 나름의 조약을 체결하며 점령했던 데 비해 서부에서는 그런 절차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큰 개발을 앞두고 원주민들과 협의를 해야 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한다.
2. 도심에서 가까운 원주민 주거 지역
토론토나 몬트리올과 달리 밴쿠버의 원주민들 주거지역은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3. 상대적으로 더 짧은 식민 역사
동부에 유럽인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이 1600년대인데 비해 서부는 1800년대에 들어서야 정착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큰 이유로 작용했다. 탐험가 조지 밴쿠버가 서부로 떠난 것이 거의 1800년 가까이의 일이었으니까 캐나다 원주민들에게 엄청한 희생을 가져온 프렌치 인디언 전쟁은 이미 끝난 뒤였다.
그래서일까? 밴쿠버엔 유난히 토템폴이 많다. 공항에서부터 해안가 공원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오타와 역사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던 것을 밴쿠버는 원주민들에 땅이라고 선언이라도 하듯 참 많이들 서있다. 캐나다 원주민의 기세가 강렬한 밴쿠버에서 원주민 예술가들을 지원하던 스콰차이스 호텔은 그러나 우리가 머문 지 얼마 안 된 2025년 11월로 영업을 마감하고 말았다. 소외 계층을 위한 주택으로 전환한다고는 했지만 펜타닐이 점령한 거리 근처에서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을 것 같아 안타까웠다.
우리 방번호를 잊어버려서 얼음통을 들고 헤매던 리셉션 직원, 조용하고 점잖던 다른 투숙객들과의 간단한 아침식사, 오래된 바인더에 종이를 껴서 만든 호텔 안내서, 그리고 소박하면서도 대범한 원주민 예술작품들. 비록 사흘밤이었지만 특별한 경험을 준 스콰차이스 호텔은 이제 추억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