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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지혜 Mar 02. 2024

남편 성을 따르는 사람들

세계의 이름 이야기 네 번째

일을 하다 보면, 환자의 차트를 찾아야 하는데 이름이 없을 때가 있다. 그러면  가장 먼저 다른 성(surname)이 있는지 확인한다. 특히 60대 이상의 여성이라면 본인이 사용하는 성과 기재된 성이 다른 경우가 상당히 많다. 클리닉의 차트에는 보험 때문에라도 결혼 전 성(maiden name)을 입력해야 하는데 의외로 남편 성에 애착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다.


퀘벡주는 1981년 여성들도 태어났을 때의 성을 결혼 이후에도 가져야 한다는 법을 제정했다. 1876년 권리 헌장 (Charter of human rights and freedoms) 이후의 일이었다. 


Under the Civil Code of Québec, both spouses retain their respective names in marriage and exercise civil rights under those names. Consequently, if a married woman wants to adopt her spouse's surname, the Directeur de l'état civil will authorize that change of name only in an exceptional situation.


퀘벡 민법에 의해 혼인 당사자 두 사람은 모두 결혼기간 동안 각자의 이름을 유지하여 법적인 권리를 행사한다. 따라서 만일 기혼인 여성이 남편의 성을 따르고자 한다면 예외적인 경우에만 이름의 변경을 허가할 것이다.


밴쿠버가 있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처럼 선택할 권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성의 변경을 금지한 것이다. 심지어 다른 주에서 결혼한 여성이라도 퀘벡주에 이주하면 본인 성으로 다시 바꿔야 한다. 근원을 따라가 보면 혁명이 있었던 프랑스의 1789년까지 올라간다. (그 혼란의 와중에 여성의 성까지 챙길 여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단다) 문제는 여성의 권리를 지키고자 만든 이 법을 1981년은 말할 것도 없고 2024년에 와서도 모든 여성이 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젊은 캐나다 총리 쥐스탱 트뤼도의 부인 소피 그레구아르-트뤼도(Sophie Grégoire Trudeau)는 부부가 퀘벡주 몬트리올 출신이니 법적으로 남편의 성을 따랐을 리는 없다. 티브이 진행자로도 활동했던 그녀의 이름은 트뤼도 총리가 2007년 몬트리올 파피노 지역에서 출마를 선언할 때까지 유지됐었다. 그런데 왜 트리도의 이름을 원래의 성에 붙여 사용하게 됐을까? 거기에는 여러 의견이 분분하지만 저 대단한 힐러리 클린턴이 그랬던 것처럼 남편의 선거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바꿨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법적인 이름이 아닌 대외적인 이름으로) 이제 이 부부는 이혼을 하기 위한 과정으로 지난해 별거에 들어갔다. (캐나다에서는 이혼수속을 시작하려면 한 일 년 이상 별거해야 한다. 단, 불륜이나 폭력으로 인한 이혼은 피해자가 즉시 접수할 권리를 가진다.) 


남편 트뤼도는 캐나다 총리 집권 직후 1대 1 남녀비율로 내각을 꾸리면서 "2015년이니까요"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러면 소피는 이혼 이후에도 트뤼도라는 이름을 유지할까? 그때는 전적으로 그녀의 선택에 달렸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소수의 유명인들 이야기일 뿐, 전통적으로 남편 성을 따랐던 서구의 여성들도 이제는 원래의 성을 유지하는 것이 점점 당연한 것이 되고 있다. 여성의 사회적인 활동이 커지면서 이름을 바꾸면 생기는 온갖 법적인 불편함 때문이기도 하고, 이혼율이 높아져서이기도 하지만 서서히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이 되었다.


한편 나는, 남편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 할머니들은 원하시는 대로 불러드리기로 했다. 시대의 흐름이고 법률이고 뭐고, 성은 last name이기도 하지만 family name 이기도 하니까. 50년의 사랑은 이길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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