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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지혜 Mar 03. 2024

'That's the way' by 레드 제플린

 편견과 싸우는 조용한 저항

“잠깐 기다려 봐”

그의 한 마디에 내 손이 멈칫했다. 담장 위를 기어가던 벌레는 이내 사라졌다. 우리는 작고 푸른빛이 도는 벌레 한 마리가 사라진 조그만 구멍을 잠시 보고 있었지만 다시 나올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허리를 펴고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나도 이제 되었다는 듯이 고개를 들고 쥐고 있던 나뭇가지를 내려놓았다. 저녁을 먹으라고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에 우리는 잠시 움츠렸다가 눈이 마주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는 앞집에 살았다. 낮은 담벼락 양쪽에는 우리 집과 그의 집이 장독대가 붙어 있어서 거기에 올라가면 무릎에나 오는 높이의 담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하곤 했다. 예고 없이 나타나는 그의 모습에 우리 강아지도 더 이상 짖지 않았다. 내가 뒷마당에서 혼자 공을 차고 있거나 강아지랑 놀고 있으면 불쑥 담장 위로 고개를 내밀곤 했다. 그가 그 집에 언제부터 살기 시작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이 집에서 태어나 자랐듯이 그도 늘 거기에 있었던 것만 같았다. 나는 일곱 살이었다. 그는 중학교에 간다고 했으니 아마 열세 살쯤 되었으리라. 외둥이로 자랐던 나처럼 그도 혼자인 듯했다. 내게 그는 어른이었다. 그가 질문을 하면 나는 반드시 대답을 해야할 것만 같아서 심각하게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그렇게 언제나 내가 알 듯 말 듯한 이야기를 던져 놓고는 갸웃거리는 내 얼굴을 재미있다는 듯이 내려다보았다. 


“밖에서 데려 온 아들이래요. 돈이 없는 집도 아닌데 구박을 받는다나 봐. 야쿠르트 배달하는 걸 본 적도 있어.” 잠결에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다시 잠이 들어서 꿈을 꾸었다. 사라진 벌레가 구멍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더듬이를 흔들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궁금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 그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앞집이 이사를 간 것도 아닌데 하루 종일 마당에 있어도 그가 보이지 않았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나도 더 이상 마당 가운데에 서서 두리번거리지 않게 되었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That’s the way          

레드 제플린


I don't know how I'm gonna tell you,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I can't play with you no more,

이젠 너랑 같이 놀 수 없어

I don't know how I'm gonna do what mama told me,

엄마 말을 어떻게 들어야 할지 모르겠어

My friend, the boy next door.

옆집 사는 내 친구야

I can't believe what people saying,

사람들이 말하는 걸 믿을 수가 없어

You're gonna let your hair hang down,

넌 머리를 땋고 있겠지

I'm satisfied to sit here working all day long,

난 하루종일 여기 앉아 만족하며 일하고 있어

You're in the darker side of town.

넌 동네 어두운 곳에 있구나

And when I'm out I see you walking,

밖에서 네가 걸어가는 걸 봐도

Why don't your eyes see me,

넌 내게 눈길을 주지 않더라

Could it be you've found another game to play,

다른 재미있는 걸 찾은 거니

What did mama say to me.

엄마는 내게 말했지

That's the way, oh,

그런 거라고

That's the way it ought to be,

그렇게 돼야 하는 거라고

Yeah, yeah, mama say

그래, 그래 엄마는

That's the way it ought to stay.

그렇게 돼야 한다고 말했어

And yesterday I saw you standing by the river,

어제는 네가 강가에 서 있는 걸 봤어

And weren't those tears that filled your eyes,

네 눈에 눈물이 가득 담아있었지

And all the fish that lay in dirty water dying,

더러운 강물에서 죽어 가는 물고기에

Had they got you hypnotized?

마음을 빼앗겼던 거니?

And yesterday I saw you kissing tiny flowers,

어제 난 네가 작은 꽃에 입 맞추는 걸 봤어

But all that lives is born to die.

하지만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언젠간 죽어

And so I say to you that nothing really matters,

그러니까 사실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And all you do is stand and cry.

넌 그렇게 서서 울고 있을 뿐이지

I don't know what to say about it,

뭐라고 말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

When all you ears have turned away,

네가 귀 기울여 주지 않잖아

But now's the time to look and look again at what you see,

하지만 이제 똑바로 봐야 할 때야

Is that the way it ought to stay?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걸까?

That's the way...

그렇게…

That's the way it oughtta be

그렇게 돼야 하는 거지

Oh don't you know now, mama said..

모르겠니, 엄마가 그러셨어

That's the way it's gonna stay, yeah.

그렇게 돼야 하는 거라고, 맞아


1970년 레드 제플린의 세 번째 앨범에 수록된 이 곡은 베이스와 드럼이 생략된 채 간결하고 깔끔한 기타와 만돌린의 반주로 담담하게 부르는 로버트 플랜트의 노래가 매력적이다. 가사에 나오는 옆집 아이는 무슨 이유로 엄마가 못 만나게 하는 것일까? 머리를 땋아 기르는, 어쩌면 게이 소년이어서? (그런데 1975년 얼스 코트 Earl’s Court에서 공연한 비디오를 보면 옆집 친구는 boy 가 아닌 girl이다. 그러니까 남자애인지 여자아이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혹시 피부색이 달라서? 가난한 집 아이라서? 혹은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환경문제에 민감한 아이라서? 하여간 어떤 이유로든 엄마는 같이 놀지 말라고 명령했고 아이는 그 말을 따라 몇 번이나 ‘그렇게 돼야 한다(That’s the way)’고 강조한다. 

물론 레드 제플린이 정말로 ‘그렇게 돼야 한다’고 믿어서 이 곡을 썼을 거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 노래가 발표된 지 무려 40년이나 지났지만 옆집 아이에 대한 편견은 그것이 인종이든, 종교든 혹은 다른 어떤 선입견으로 인한 것이든 간데 지금도 유효하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에 꾸준히 싸워야 하고, 때로는 어린아이들이 어른들보다 현명하다. 그렇게 세상은 서서히 바뀐다.


Led Zeppelin - That's The Way [Live at Earls Court 1975] (Official V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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