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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지혜 Jul 13. 2024

40일 동안 7개 항공사를 이용한 후기

    40일간의 여행을 계획하면서 너무 많은 이동은 피하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비행만 9회가 되었다. 거기에 신칸센 한 번, 페리 두 번, 지구를 한 바퀴 돌고도 한참 더, 참으로 먼 길이었다. 구간마다 저렴한 티켓을 찾느라 항공사는 무려 7개였는데 그 일곱 회사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러고 보니 항공사마다 다른 특색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에어프랑스 (몬트리올-파리-도쿄)    

    미식의 도시 파리의 명성은 에어프랑스에도 이어질까? 에어프랑스를 가리켜 '하늘의 미슐렝 레스토랑'이라고 한다는 말에 은근 기대했는데 기내식은 기내식일 뿐, 이코노미석의 기내석은 별만 다를 게 없었다. 굳이 다른 게 있다고 한다면 와인을 미니사이즈로 한 병 통째로 준다는 거? 메뉴에 라따뚜이가 있었다는 거? 커피와 차를 줄 때 코냑도 받을 수 있다는 거? 캐나다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는 캐나다 케이터링 회사의 음식이니까 그렇다 쳐도 파리 출발 메뉴도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심지어 모기가 한 마리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서비스가 다르다. 흰 수염을 단정하게 다듬은 승무원 한 분이 와서 사과를 한다. 말랑말랑하고 사각거리는 프랑스 불어. 이웃집 아줌마 같은 친근한 미주의 승무원들만 보다가 에어프랑스 사람들을 보니 기분 탓인지 갑자기 주변공기가 나긋나긋하고 우아해졌다. 

별 볼 일 없어 애꿎은 와인만 축낸 에어프랑스 기내식

    영화 종류도 볼만한 게 많았고 무엇보다 카메라로 비행기 밖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다만,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갈 때도 올 때도 출발이 지연됐다. 두 번째 지연에서는 '오늘 못 갈 수도 있다'는데, 밤이 깊어 공항의 상점은 다 문을 닫고 우리 게이트 외에는 텅 비어있는 공항에서의 막막함이란. 

    스타팀 소속이라 대한항공으로 마일리지 적립이 가능하다. 


피치 항공 (오사카-이시가키. 오키나와-삿포로)

    피치 못해 탄다는 일본의 저가항공 피치항공을 처음 타봤다. 예약은 공홈에서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비싼 표만 남아버린다. 대부분의 저가항공이 그렇듯 위탁수하물은 별도로 국내선의 경우 예매할 때 같이 신청하면 한 개에 약 2천엔 정도였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보다 짐이 많아져버려 추가하려니 2500엔으로 올랐는데 신용카드 인증문제가 (해외카드라) 자꾸 걸려서 앱으로 못하고 결국 공항에서 3천 엔을 내고 보내야 했다. 기내에 갖고 들어갈 수 있는 짐은 한 명당 7kg라고 돼있지만 7.9킬로까지는 봐준다고 했다. 그 7kg라는 것이 러기지만 아니라 가지고 있는 핸드백, 우산까지 소지품 무게는 합한 거라 생각보다 금방 넘어간다. 그걸 맞추겠다고 여행용 저울로 이리저리 재보고 물건을 옮겨 담고 하는 수고를 하다 포기하고 돈으로 메웠다. 두 번째 비행에서는 처음부터 무게가 약간 초과되는 가방을 3천 엔에 맡겼는데 오키나와 공항에서는 기내수하물 무게를 재보지도 않았다. 이래저래 짐 때문에 힘들고 허무했던 피치 항공.  (이 날의 교훈: 웬만하면 처음부터 사람 수대로 위탁수하물을 신청할 것. 간식은 갖고 탈 것)

죽 한 그릇에 기간한정이라는 복숭아주스를 주문했는데 맛은...


전일본공수 ANA (이시가키-오키나와)

    별 탈 없이, 그렇다고 특별히 인상 깊었던 것도 없는 이시가키에서 오키나와까지 한 시간의 비행. 아시아나 항공이나 에어 캐나다로 마일리지 적립 가능함. ANA를 '아나'라고 읽었다가 딸내미한테 한 소리 들었다. 옛날엔 아나라고도 불렀단다, 아가.


대한항공 (삿포로-인천)

    얼마 만에 먹어보는 비빔밥 기내식이었는지 감회가 깊었는데, 큰 애는 따라오는 고추장 튜브를 뜯지도 않고 버렸단다. 대체 왜... 국내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밖에 없던 시절, 대한항공이 비빔밥으로 기내식의 역사를 새로 썼는데 그게 1997년이었다고 한다. 국적을 알 수 없는 치킨과 비프 요리 중에 하나를 골라야 했던 당시에는 획기적이었는데, 마이클 잭슨이 좋아했다고 해서 더 유명해졌다. 대부분 승객이 비빔밥을 선호해서 뒷자리에는 모자라기도 했다. 고추장은 남겨서 여행 중 사 먹는 음식에 넣어 먹기도 했고, 나중에는 항공사에서 따로 판매를 시작했다. 아시아나는 한술 더 떠서 쌈밥을 제공하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90년대만 해도 항공기에는 개인 모니터가 좌석마다 달려있지 않았다. 커다란 스크린을 맨 앞 좌석 앞에 내려 일정한 시간에 같은 영화를 모든 승객이 함께 보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앞 좌석은 눈이 피로해 모두 꺼렸다. 미주로 가는 노선은 보통 두 편 정도 상영했는데 비교적 최신 영화라 대부분 봤다. 물론 잠을 자는 사람들도 있으니 소리는 헤드폰을 이용했지만 큰 화면으로 보는 영화는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한 공간에서, 어쩌면 생사를 함께 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스크린을 보면서 같이 웃고 눈물짓는 사이에 묘한 연대감이 스며들었다. 지금은 비행기가 교통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비행기를 탄다는 사실만으로 특별했던 그 시절엔 옆좌석 승객하고도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때는 그랬다. 대한민국으로 향하는 대한항공, 8년 만의 귀향에 어울리는 비행이었다,


티웨이 (인천-다낭)

    공항에 일찍 도착했다. 체크인 카운터에 가서 '다낭행'이라고 말했더니 몇 시 비행이냐고 묻는다. 다낭 가는 비행기 편이 하나가 아니라는 말이다. 얼마 전 11시간 지연으로 뉴스에 나왔었지만 파리 공항에서 대기했던 때와는 달리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려 여유를 가졌다. 오늘 못 가면 내일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티웨이를 처음 본 감상은 '젊다'는 것이다. 바지를 입은 승무원, 피카추 홀더에 건 신분증. 직원들의 연령도 대체로 젊다. 내 비행 스케줄은 지연이 되지 않았으므로 티웨이에는 합격점을 주었다. 다시 탈지는 모르겠지만. 

 

진에어 (다낭-인천)

    다낭 공항의 밤은 온통 한국인들로 가득해서 시큐리티 직원들조차 "빨리빨리!"를 외쳤다. 체크인을 마치고 핸드폰과 크롬북을 충전기에 꽂은 채 게이트 앞 벤치에서 잠이 들었다. 갑자기 작은 아이가 깨워서 보니 탑승수속이 시작됐는데 큰 애가 안 보인다. 겨우 화장실에서 찾아와 버스에 올랐다. 저가항공사의 단점 중 하나는 거리가 먼 게이트로 배정되는 경우가 많더라는 것이다. 거기서 비행기로 바로 연결이 안 되고 버스를 타야 할 때도 많다. 피치 항공은 비행기까지 걸어가기도 했다. 옆 게이트 티웨이에서는 지연안내방송이 나오고 기다리던 승객들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티웨이에 대한 인상이 젊음이라면, 진에어는 거기에 귀여움이 한 스푼 첨가된 느낌이다. 

내리실 때는 여러분의 소중한 물건
그리고 진에어와의 추억 모두 잊지 말고 꼭 챙겨주세요

기장의 기내방송이 이렇게 귀여울 수 있다니... 캐나다에서 자란 아이들은 물론 내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구름 밑으로 보이는 서해안 풍경

에어캐나다 (인천-몬트리올)

    비행기에 들어서는 순간, 승무원의 인사말이 가슴에 훅 들어왔다. 딱히 꼬집어 설명할 수는 없는데, (제2의) 고향의 언어였다. 미세한 차이의 영어 억양이었는지, 아니면 비행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캐나다 느낌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방심한 사이에 내가 집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확인받았다. 좋아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에어캐나다였다. 2023년 북미꼴찌 정시운항율 51%.


    항공기의 결항, 지연은 저가항공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발생한다. 문제는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있다. 에어프랑스 사이트에서 예매한 인천-파리-몬트리올 노선에서 인천-파리 구간이 지연됐다는 사실을 공항에 가자마자 알게 됐다. 파리에서 갈아탈 시간이 모자랐다. 파리에서 다음 비행기를 놓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며 문의하니 카운터에서는 심각한 얼굴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미네아폴리스에서 갈아타는 델타항공으로 바꿔드려도 될까요?" 시간대를 확인하고 괜찮다고 대답했다. 미국 공항에서 저녁시간이라면 갈아타기 복잡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후로도 한참을 찾아보고 다른 직원에게도 물어보고 하다가 미안한 듯이 다시 묻는다. "델타항공으로 바꿔드리려고 했는데 잘 안 돼서요. 혹시 에어캐나다로 가셔도 괜찮으세요?" 

    직원들끼리 의논하면서 AC를 언급했을 때만 해도 설마 했었다. AC, 즉 에어캐나다는 델타와 달리 스카이팀 멤버가 아니다. 오히려 아시아나와 함께 스타 얼라이언스 회원이다. 그런데 소속팀도 아닌 비행기, 그것도 직항 편을 대신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받아 든 보딩패스에는 비행기표의 가격이 찍혀 있었다. 캐나다 달러 $685, 아마도 에어프랑스에서 에어캐나다에 지급하게 될 돈인 것 같았다. 내게 부과되는 추가요금은 없었다. 


    긴 여행의 대미를 장식한 마지막 비행, 22년을 캐나다에서 살면서 처음 보는 몬트리올-인천 직항 편이다. 십여 년 전, 몬트리올 총영사관에서 일하면서 몬트리올 직항에 관한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 인천공항을 허브로 삼아 모집할 수 있는 승객 수는 충분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는데, 그 후로 중국항공이 베이징-몬트리올 직항을 내는데 십 년 정도가 걸렸고 이제야 에어캐나다는 비록 여름 성수기 동안의 임시노선이지만 처음으로 몬트리올-인천 직항을 열었다. 기내는 거의 만석이었다. 곳곳에서 중국어가 들렸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문득 창밖을 내다보았는데 어두운 밤하늘에 둥근달이 떠있었다. 아니, 해인가?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시간을 헤아려보니 분명 낮이다. 사진을 찍어봤는데 전혀 다른 색감의 이미지가 잡혔다. 한낮의 캐나다 상공을 날고 있지만 신체시간은 이른 새벽인 승객들을 위한 배려로 햇빛을 차단한 특수 창문 때문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보잉 787, 그래도 거대한 쇳덩어리가 하늘을 날고 있는 것부터 내게는 모든 게 신기할 뿐.

어떻게 찍어도 눈으로 본 풍경이 나오지 않았던 사진

    여행에서 돌아온 지 이틀째 되던 날, 문득 눈을 떠서 보니 천정에 불그스름한 빛이 가득했다. 여기가 어디일까, 일본일까, 한국일까. 아니면 비행기인가? 캐나다의 내 방인 것을 깨닫기까지 몇 초 간의 시간이 흘렀다. 새벽인 줄 알았는데 핸드폰을 더듬어 찾아보니 저녁시간이다. 멍멍이는 돌아온 엄마가 아직 낯선지 발치에 떨어져 자고 있었다. 안도인지 실망인지 모를 마음에 다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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