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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기록자 Mar 14. 2024

별안간 설렌 건, 다 날씨 때문이야.

친구네 강아지 

알쏭달쏭한 3월의 날씨 덕분에  

최근 들어 집을 나서기 전에 외투를 어떤 걸 입어야 할지 한참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제법 쌀쌀한 밤공기에 대비해 두툼하게 껴입고 나선 날엔 꼭 덥다. 

"좋아. 이번엔 얇게 입고 가자." 

날씨가 내 이야기를 엿들은 건 아닐까. 이번에 바람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다. 


이렇게나 알쏭달쏭한 날씨 퀴즈에 번번이 실패하는 난 오늘도 두툼한 숏패딩을 걸치고 집을 나섰다.

세상에나.. 햇살이 따스하다 못해 덥다. 역시나 오늘도 날씨와의 눈치싸움에서는 진 듯하다.

비록 옷이 두꺼워도 햇살이 눈부신 날에는 더위도 잊은 채로 걷게 된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평소 가는 사무실을 뒤로하고 오랜만에 안국역을 찾았다. 빛을 한껏 받으면서 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마엔 어느새 땀이 삐죽 나와있다. 입구에 들어서는데 어쩐지 스산한 것이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구나.. 

오늘은 촬영대관으로 입장이 불가합니다       

아무렴 어때, 그냥 걸을까..! 

평소 같으면 알고있는 일할 수 있는 다른 공간으로 바로 이동했겠지만 오늘은 그러기엔 날이 너무 아까웠다.  

아주 평범한 횡단보도 표지판도 이뻐 보일 정도면 말 다한 거 아닐까?  


그렇게 무거운 노트북 가방과 패딩과의 무작정 걷기 동행이 시작되었다. 

주특기이자 유일한 취미인 [발길 닿는 대로 걷기]는 아무런 계획도 목적지도 없이 걷기 때문에 무엇을 마주칠지 모르기 때문에 묘하게 설렌다.  


안국역은 평소에도 관광객이 넘쳐나는 동네인데, 점심시간까지 겹쳐 인도가 발 디딜 틈이 없다.
하지만 프로 뚜벅이는 사람이 많다고 걷는 걸 쉽게 포기하거나 주늑들면 안된다. 

특유의 고요한 매력을 느끼려면 깊숙이, 그리고 대담하게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야 한다. 

마치 어딘가로 가야 할 목적지가 있는 사람처럼.  

설레는 게 천지잖아. 

30분쯤 걸었을까?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쳐 어느새 가회동 한복판을 걷고 있다.  

등에 땀이 맺히기 시작하는 걸 보니, 새삼 겨울의 끝자락 같아 기분이 좋다. 사실 사계절을 몽땅 좋아하는 나에게 봄은 어떤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겨울 내내 움츠러들었던 마음 대신 설레는 두근거림을 느끼는 걸 보니 그런것도 아닌 듯 하다.  


멋스러운 한옥을 두르고 있는 동네를 차분히 걷다 보니 잊고 지냈던 감정이 떠올랐다. 

촘촘히 수놓은 기와들, 삐죽삐죽 고르지 않은 돌담, 매력적인 골목길.. 이곳은 설레는 것들이 천지다. 

건축에 대해 아는 것은 전혀 없지만 소나무, 덩굴과 같은 자연과 어우러진 건축들을 보면 이상하게 설렌다. 

괜스레 만지고 싶어 져, 손을 뻗어 돌담을 스치며 걸어간다.   

 

목이 너무 타서 그만. 

너무 깊숙하게 들어온 탓일까? 들어갈만한 카페가 없다! 

슬슬 어깨도 아프고 목은 너무 타는데 카페로 보이는 건물이 도통 보이지 않는다. 아무런 계획도 목적지 없이 걷는 무작정 걷기에 난감한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언덕을 오르다가 더 이상 올라가면 안 될 듯한 엄숙한 분위기에 지레 겁먹고 내려왔다. 


터벅터벅 내려오다 보니 올라갈 땐 보이지 않던 오밀조밀하게 모인 가게들이 눈에 들어온다.

작은 화장품 가게, 소품샵 그리고 그리고 커피머신! 드디어 찾던 카페를 찾았다. 

언뜻 보기엔 내부가 협소해 테이크아웃 전용 카페처럼 보였지만  위를 올려다보니 작고 귀여운 초록초록한 쪼꼬미 화분들이 줄지어있는 2층 공간이 보인다. 유레카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작은 공간 곳곳에 삼삼오오 앉아있다. 홀로 온 사람은 나뿐인건가?  

혼자 잘 돌아다니지만 작은 카페나 식당에 들어서는 건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 중앙 자리에 앉는 걸 꺼리는 편이지만 (공용 자리만 남은 상태) 원목이 주는 따뜻함 때문일까? 오늘은 용기 내서 중앙에 앉았다.    

날이 좋은 날의 법칙   

노트북을 켜기 전에 가만히 창밖을 내려다보는데 문득 예전 직장 선배가 했던 말이 스치듯 생각났다.  

"오늘 같이 날 좋은 날, 사무실에 갇혀있기만 하는 건 아까워. 나가자" 

당시엔 그저 일하기 싫어서 밖으로 나갔다. 그뿐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선배와 같은 마음으로 지금의 순간을 즐겼다.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거리를 멍하니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언제든 가질 수 있는 건 축복이지 않을까? 

한껏 위축되어 있었던 최근의 날들을 한 번에 보상받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것,    

그리고 새롭게 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건, 묻혀있던 영감이 떠오르는 건 모두 날이 좋아서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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