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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기록자 Mar 12. 2024

허둥지둥, 균형 맞추기

요즘 일상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요... 어른 될 준비

결혼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개인적인 모든 일들이 뒤틀려버렸다. 

거의 백수나 다름없는 내가 총대를 메고 필요한 일들을 처리하니, 이것이 결혼을 하는 것인지 사업을 하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10년이란 오랜 시간 동안 연애를 했기에 결혼은 마음속에 언젠가 해야 하는 최종 퀘스트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그 최종 퀘스트가 바짝 다가온 것이다.(과연 최종일까?)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고 하더니, 인생에서 가장 가난하고 불안정한 시기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돈만 쓰면 해결되는 스드메는 진작 해결했지만, 본격적으로 내 멘탈을 붕괴시킨 건 집 문제였다.

모아둔 돈이 많으면 무슨 문제가 있으랴.. 

허나 현실은 신혼부부 전세자금대출을 받지 않고선 작은 전셋집도 구하기 힘든 실정이다. 무소득이나 다름없는 가난한 프리랜서인 현실 앞에서 한없이 작아져 은행에 들어갈 땐 거의 기어가듯 들어갔다. 

마치 내 이마에 무소득이라는 빨간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처럼..  


기운이 한껏 빠진 채, 털레털레 은행 밖을 나오며 생각했다.     

엄마와 아빠는 우리 삼 남매를 키워내며 얼마나 많은 시간, 이런 순간들을 반복했어햐 했을까?

휴 아직 어른 될 준비가 안된 것 같은데 어른이 되는 문 앞에 서있는 기분이다.


어찌어찌되었거나 캐새라세라 ~

애초에 예상했던 것보다 신혼집 입주일이(결혼식보다 2달 먼저 입주) 빨라지자 막막했던 은행일, 혼수가전, 가구, 집 꾸미기 등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꼼꼼하게 잘하고 있다기 보단, 그냥 여차저차 될 대로 되라는 식이다.


하지만 신혼집을 가꾸는데 시간을 너무 할애한 나머지 정작 해야 하고 제출했어야 하는 것들을 모조리 놓치고 있다. 오랜 자취생활로 신혼집에 대한 로망이 없는 나지만, <오늘의 집>을 들락거리며 집을 꾸미는 건 쓰기 싫은 서류 작업일에서 외면할 수 있는 아주 좋은 핑곗거리가 된다. 


이미 전적도 있다. 재작년 친구와 이사를 할 때도 굳이 사지 않아도 되는 소품, 조명, 소가구등을 사면서 열을 내며 꾸몄었다. 사이즈를 재고 3D스케치업을 돌려 집을 꾸미고 아무 생각 없이 돈을 썼다. 

거짓 없이 당시 몇 달을 단기로 일하면서 벌어둔 돈을 이사한 집에 몽땅 투자했다. 


집을 꾸미고 몇 달간은 진심으로 행복했다. 오늘의 집에 소개되는 여느 멋진 집들처럼 센스 있게 꾸몄다는 만족감과 친구를 소개하고픈 마음까지 더해져 마땅한 지출이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했었지.  


1년이 지나고 2년이 다되어 가는 지금은 어떠한가? 

삐죽삐죽 자유분방한 거울도 유리 테이블도 힙한 소품, 조명들도 그냥 그저 집의 일부일 뿐이다.

(게으르고 관리 잘못하는 주인을 만나 먼지 속에 둘러싸인 짐덩이가 되어버렸기 때문)  


필요한 것들만 사고 나머지는 차근차근 살아가면서 채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려는지 욕심이 끝이 없다.  텅 비어버린 내 머리엔 "무엇이든 되겠지. 캐세라세라"만 울려 퍼지는 것이 틀림없다. 

"무엇이든 되겠지, 될 거야. 모든 게 잘될 거야. 케세라세라"


균형은 어떻게 맞추는 걸까? 

1) 일단 개인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잠시 미루고 결혼 준비에 신경 쓴다.

2) 우선순위에 맞춰 일과 결혼준비를 차례로 병행한다.  


3월 들어서면서 분명 내 계획은 2번이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1번의 형태로 살아가고 있다.
동시에 두 가지 일을 잘못하는 탓에 일을 하고 있어도 정신이 집에 팔려있고, 결혼 준비를 할 땐 제출해야 할 산떠미 같은 일들이 떠오르는 청개구리 같은 상태이다.  


빙판 위를 아슬아슬 걷는 펭귄들처럼 미끄럽기만 한 길을 뒤뚱 거리며 걷는데 자꾸만 미끄러진다. 

균형감 있게 올해의 시작인 3월을 잘 보낼 수는 없는 걸까?? 


달리다 마주친 이름 모를 노란 꽃을 보며 

답이 없는 고민을 계속하던 날들이 지나고 오늘 아침 달리기를 나왔다. 

같은 공원, 같은 트렉에서 달리기에 변할 건 없었다. 아니 없어 보였다. 하나 공원에는 작은 변화가 있었다. 


한 날은 추웠다가, 따뜻했다가, 또 비 왔다가 눈왔다가를 반복하는 변덕쟁이 날씨 속에서도 노란 꽃이 꿋꿋하게 봄임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어떠한들, 자신의 본디 목적을 잃지 않고 꽃을 피워냈다. 


어쩌면 나는 목적을 잊어버린 채 해야 할 일들에 치우쳐 또 그냥 달리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이름은 잘 모르지만, 힌트를 준 노란 꽃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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