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 그리고 사라진 내면
이민은 부분적인 자살과 같다. 정말 죽는 것은 아니지만 내면의 많은 부분이 죽는다, 특히 언어가 그렇다.
그래서 나는 스웨덴어를 익힌 것보다는 그리스어를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더욱 뿌듯했다.
스웨덴어는 필요의 산물이었고 그리스어는 사랑의 몸짓이다. 망각과 무관심을 딛고 일어선 승리였다.
- 다시 쓸 수 있을까 - 테오로드 칼리파티데스
[다시 쓸 수 있을까] 책을 읽다가 뜬금없는 구절에서 마음속 이름 모를 일렁임을 느꼈다.
이민자인 작가와 달리 한국에서 쭉 나고 자라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지만 서울로 상경해 '서울 사람'이 된 내가 먼 타국의 이민자의 마음에 공감이라도 하는 걸까?
내면의 많은 부분, 그리고 언어가 죽는다는 말은 뇌리에 강력하게 꽂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 것이다.
부산 사투리가 강하게 묻어나는 어색한 서울말과 어리숙했던 행동은 자연스럽게 '서울'과 잘 어울리게 되었고 마음과 행동도 빠르게 흘러가는 사회 속에 맡겼더니 어떤 색채도 남지 않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안다. 이는 <서울>이라는 지역이 주는 문제는 아니지만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했던 일이란 것을.
하지만 무채색 인간이 된 지금의 내 모습을 가끔 들여다보면 슬픈 걸 어쩌겠는가.
익숙한 피아노 소리가
책의 마지막 챕터쯤 읽었을 때쯤인가. 배경음으로 틀어놓은 랜덤 추천 곡에서 귀에 익은 음악이 흘러나왔다.
피아노 선율이.. 너무 익숙한데? 어디서 들었을까. 책을 덮고 처음부터 다시 재생시켰다.
청각이 감정과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는 글을 본 적 있는데, 확실히 음악덕에 시간여행을 하게 되었다.
조용한 선율을 따라가니 어느새 작은 정원이 딸린 주택을 개조한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작은 출판사 겸 카페였던 탓에 사방이 책장으로 둘러싸있었다.
메뉴는 단출하지만 조용히 책을 읽기도 창 밖 정원의 푸르름을 감상하기도 최적인 그곳엔 늘 피아노 음악이 흘렀다. 그 덕에 몰래 타인의 서재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을 만끽하기도 했다.
이곳을 아직까지 기억하는 건, 특유의 분위기도 있지만 커피를 훌륭하게 뽑아주신 매력적인 사장님 때문일 것이다. 40대 중반의 여성이셨는데 차분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늘 커피 리필을 물어보셨다.
학생이었기에 가장 싼 아메리카노를 시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내게 자리까지 오셔서 리필을 권하셨다.
섬세하게 책 읽는데 방해될까 봐 음악도 낮춰주시곤 했던 사장님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카페 사진 한 장 남겨놓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열심히 검색해 봤지만 소용없다. 더군다나 카페 이름까지 기억이 안 나니, 2010년 대학생 때 사랑했던 아지트로 남겨두는 수밖에.
역시 사진이라도 남겨놓을 걸 그랬다.
난데없이 찾아오는
괜스레 사진첩만 뒤적거리다가 추억 상자를 열어버리고 말았다. 일해야 할 때 열어보면 가장 재밌는 게 추억 상자 아니던가. 커다란 추억상자, 구글 포토
사진을 타고 타고 가다 2014년, 드라이브에 보관된 가장 오래된 사진을 보았다. 2014년은 서울을 올라오던 해이기도 하지만 동생을 떠나보낸 해이기도 했다.
그래서 내 무의식 폴더에는 2014년이 지워져 있다. 굳이 사진을 찾아보지도 않을뿐더러 기억도 저 구석으로 밀어버렸다. 그 해의 사진 속에 동생 얼굴이 담겨있지 않으나 그냥 추억 여행을 종료했다.
해가 어둑해졌기에 냉장고를 뒤져서 버섯을 볶는데 그냥 이유 없이 눈물이 흘렀다.
사람의 감정은 우스운 게 동생을 보러 매년 2~3회 방문하는 기장의 납골당에선 전혀 흐르지도 않던 눈물이 '버섯'을 볶는 난데없는 순간에 난다.
못난 누나는 요리를 잘할 줄 몰랐고 귀찮은 마음으로 종종 간단히 버섯을 볶아 내어주곤 했다.
순전히 내가 버섯을 좋아해서였다. 고기반찬 없으면 밥을 먹지 않던 그도 배고픔에 못 이겨 먹었다.
엄마가 동생 챙겨주라고 남겨두셨던 고기도 심술 나서 꺼내지 않았다.
영화나 소설에선 떠나간 이들이 좋아했던 것들을 보면서 그들을 떠올리던데 어째서 난 나만 좋아한 음식을 보며 그가 슬그머니 떠오르는 것일까.
지금은 어떻게 기억될까
미친 듯이 바쁠 때는 계절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달마다 어떤 이슈가 나에게 있었는지를 기억하기보다 차라리 내가 만들어낸 콘텐츠를 기억하는 편이 더 쉬웠다.
하지만 반대로 시간적 여유가 흘러넘치는 요즘은 매일을 기록하려고 억지로 노션을 켠다.
사실 별다른 변화가 없기에 비슷비슷한 기록, 키워드들 뿐이지만 그래도 잔상이라도 남겨보려 애쓴다.
적막한 고요 속에서 불안 초조한 나날이지만 사진 속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롭다.
모두가 바쁘게 출근한 아침 시간에 달리기를 하고 돌아오면서 찍은 동네 풍경이나, 산책 코스 등 든 몇 년이 지난 후에 어떻게 기억될지 궁금하다.
그래도 10년 뒤 2034년도에서 추억상자를 열어봤을 땐 사진 말고도 기억할 게 하나 더 생겨 안심이 된다.
<브런치>를 보면서 저 땐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지를 떠올리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