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들과 동행
툭 하고 건드리면
음악을 듣다가 마음에 안 드는 곡이 나오면 3초도 못 참고 다음으로 넘겨버린다.
심지어 앨범 커버 디자인이 맘에 안 들어 듣지도 않고 넘겼다가 나중에 다시 듣고, 맘에 든 곡도 많다.
그런데 요즘 내 업무 집중력도 음악 듣는 형태와 비슷해졌다. 1개 하다가 안되면 못 참고 다른 일을 꺼낸다.
이건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아서 다른 업무로 넘어가는 상식적인 형태가 아니다.
그냥 오로지 '아 하기 싫다'는 마음으로 슉 넘겨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겨우 겨우 붙들고 있다가도 '띠링'하고 울리는 알람음에 빛의 속도로 훌러덩 깨져버린다.
분명 반백수인 내게 올 알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즉시 확인해야 속이 시원하다.
이는 딴짓을 하는 지름길이다. 어느새 정신 차려보면 정신없이 인스타 피드를 보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어쩌다가 툭하고 건드리면 툭하고 넘어지는 쉬운 인간이 되었을까?
원숭이들과 나홀로 집에
심심하면 성인 ADHD 체크리스트를 읽을 정도로 그 병에 부쩍 가까워진 나는 남들과 일을 할 때도 집중력을 부여잡기 위한 공을 많이 들여야만 했다.
특히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디어 거나 부담되는 업무일 땐, 마감일까지 미루고 미루는 아주 나쁜 습관마저 갖추고 있어 스스로 엄격한 환경을 조성하곤 했다.
그때는 그래도 상사나 동료라는 훌륭한 감시관들이 존재했기에 타인의 눈에는 최대한 티 나지 않게 일을 마칠 수 있었다.(남들 눈에도 티가 났을 수도 있다.)
거기다가 마감이란 목적지가 분명했기 때문에 쥐어짜 낸 집중력으로 무언가 할 수 있었으리라 본다.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혼자가 되자 집중력도 함께 홀로 집을 나가버렸다.
그 덕에 감시자 대신 우끼끼끼 원숭이들만 남은 상태가 된 것이다. 이제 메일 쓰기와 같은 아주 사소한 것을 해결하려 해도 원숭이부터 없애고 시작해야 한다.
책이라도 잘 읽었는데
엄청나게 진지한 과학책을 읽지 않는다면, 한 자리에 얌전히 앉아 책을 읽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거의 유일한 취미가 독서인 내게 책 한 권 진득하게 읽기가 어려워진 것만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부쩍 혼자 있는 시간이 늘자 고요한 정적이 싫어서 유튜브를 많이 틀었다. 옷 스타일링이나 외국 여행하는 유튜버 위주로 즐겼던 영상에서 자동으로 추천해 주는 무작위 영상으로 바뀌자 내 뇌도 무작위가 되었다.
빠르게 흘러가는 영상들처럼 쉴 새 없이 고자극을 찾으려는 뇌는 결론이 쉽게 나지 않는 소설을 읽거나, 정보위주의 인문학책을 읽을 때면 1.5배를 외쳐대는 것 같다.
목표로 잡은 일이 하나도 실행되지 않는 것에는 충격을 받지 않더니, 책이 잘 읽히지 않는 것에 충격을 받는 것도 참 우습다. 남은 뇌의 반쪽마저 내어주지 않으려면 정신을 차릴 때가 된 것 같기도..
더군다나 홀로 일을 하기 때문에 빠른 실행력이 필요한데 집중력마저 잃어버렸으니 집 나간 집중력부터 되찾아와야 한다.
원숭이들끼리 잘할 수 있는 법
얼마 전에 '집중력'을 주제로 한 어느 다큐에서 본 내용이다.
집중력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는 <자신의 마음>
재밌는 영상이 많은 탓이라고 중얼거리고 있던 원숭이들을 크게 한방 먹이는 말이다.
생각해 보면 핸드폰도 뒤집어 놓고 인터넷 창도 모든 끈 채로, 한 화면만 보는데도 1페이지도 넘어가지 않는 날도 많았다. 원래도 잘되지 않던 집중이 미디어와 만나 훨씬 짧아진 것뿐. 원래도 그랬다.
다큐에선 집중력을 가지기 위한 방법으로 동기부여를 가질 것을 권했다. 동기부여가 집중력에 가장 큰 동력이라고 말이다. 맞아. 주말에 놀러 갈 전시관 예매할 땐 미친듯한 집중력을 보이기도 했었지.
어째서 재밌는 거, 신나는 일을 홀로 해보자고 한 뒤로 더욱더 길을 잃고 내 마음까지 모르게 된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게 신나는 것인지 모르겠는 것이 가장 큰 난제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감시관이 사라진 원숭이들만 있는 세상에서 <동기부여>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일이 남았다. 원숭이들아 가보자..
훌륭한 훈련법, 브런치
야심 차게 적었던 목표들은 이루지 못하고, 브런치만은 겨우겨우 써가고 있는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홀로 일을 해나가는 모습들, 과거 일을 했던 방식을 기록하고자 시작했던 브런치가 하나의 작은 목표가 되는 순간 들어가기도 싫어지기도 했지만 여차저차 쓰고 있다.
글을 쓸 때만큼은 흩날리는 집중력과 기억력을 총동원해서 써가고 있으니, 날뛰는 원숭이들을 잠시나마 잠재울 수가 있다. 어쩌면 과거와 지금의 행적, 생각들을 써나가는 것이 내 동기부여를 찾는 과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