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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기록자 Jan 29. 2024

밖은 왜 신나는 것 일까?

프로 뚜벅이 

일부러 1시간 걸리는 버스 타기?

최적의 동선을 알려주는 교통 앱은 언제나 30분 정도 단축되는 지하철을 타기를 권유한다.

하지만 미련하게도 최적 동선 대신 저 멀리멀리 돌아가는 버스를 택한다. (시간 여유가 없을 땐 무조건 최적 동선을 따르긴 한다) 빙빙 돌아가는 시간만큼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재밌는 볼거리가 좋아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몇 달 전에 서울에서 경기도로 향하는 버스를 탔던 적이 있다. 버스에서도 창 밖대신 폰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대다수인 요즘, 초등학생 1학년 정도로 보이는 아이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아이는 창에 바짝 기대 지나가는 차들과 사람들을 향해 신나게 손을 흔들고 있었는데 세상 신나 보였다.    


그 아이를 보자 처음  낯선 버스를 탈 때 내 표정도 저랬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삼 남매는 걸어서 도심 속으로 

방학이 되면 초등학교 1학년인 나와 2살, 5살 터울인 동생들을 데리고 엄마는 여행 가방을 챙겨 기차를 탔다. 
엄마뿐 아니라, 나와 동생들 등에도 작은 가방이 메어있었는데 각자 최애 간식이 담긴 소중한 짐이었다. 


지금은 국내를 넘어 해외로 가족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당시 반에서 국내 여행을 자주 가는 집은 흔치 않았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엄마는 지도 한 장에 의존해 국내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셋이나 되는 아이들을 홀로 데리고 다닌 엄마(아빠는 출근으로 함께 하지 못했다)는 처음 보는 동네에서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길을 찾아다녔는데, 헤매는 것마저 모험 같았다.      

그 모든 과정을 엄마는 일회용 카메라로 담는 것을 좋아해 여행을 다녀온 후에 사진을 맡기로 가는 것이 루틴이 되기도 했다. 현상된 사진들을 보며 낄낄거리며 서로 놀리는 것 재미까지 더해져 사진 나오는 날을 더 손꼽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런 엄마 아래에서 자란 탓인지 낯선 곳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으로 성장해 버렸다.  

여행 방송프로그램이 많지 않던 시절엔 <걸어서 세계 속으로>와 <*두 남자의 좌중우돌 만국유람기> (*지역 방송 프로그램)을 즐겨보며 세계를 돌아다니는 여행작가가 되리란 꿈을 가지기도 했다. 

 

프로 뚜벅이로 승격 

비록 세계를 여행하는 작가는 되지 못했지만  만보 이상은 거뜬히 걷는 [프로 뚜벅이]로 지내고 있다.  

지인 중 하나는 농담처럼 내게 보자기를 메고 산을 건너는 학창 시절을 보낸 거 아니냐고 놀리기도 한다. 

그 정도로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는 오랜 <뚜벅 메이트>가 있는데, 서울로 함께 상경한 친구이기도 하다.

아직은 쌩쌩하던 20대인 우리는 서울의 지리를 익힌다는 핑계 삼아 종종 지하철 6개 역 정도를 걸어 다녔다.

이전에 살던 곳도 도시였지만 '서울'이라는 곳이 가지는 고유의 매력에 끌려 힘든 줄 몰랐던 것 같다.  

한날은 드넓게 펼쳐진 도로와 큰 가로수 그리고 밤새 꺼지지 않는 가로등, 건물 등에 매료되어 친구랑 2시간 정도 밤거리를 배회하며 걷기도 했다.


체력적으로도 흥미도도 많이 떨어 저버린 지금도 가끔 그 친구랑 2~3시간 넘게 걸으면서 수다를 떨고 동네를 떠도는 짓을 하며, 그때의 이야기를 나눈다.  


어디론가 가야 하는 목적지도 없고 제한 시간도 없는 <무작정 걷기>는 때때로 예상치 못한 재미거리도 주는데, 가령 동네를 떠돌다 보면 오래된 반찬 가게의 사장님과 아드님의 재료 준비과정을 본다거나 새로 오픈할 카페의 인테리어를 먼저 훔쳐(?) 볼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일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시선을 끄는 재밌는 소재가 되기도 하니까.   


사실 평소 가야 할 곳이 있을 땐 지도 앱을 따라 걷기 바빠서 길 위에 지나쳐가는 풍경을 눈에 담기 힘들다. 

거기다 심각한 길치이기에 앱의 빨간 점을 놓치기라도 하면 도착시간이 10분 정도 늦춰지기 일쑤이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먹고 무작정 걷기를 택한 날엔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떠돌아다닌다.  


풍경을 이해하려면 당신은 풍경이 되어야 하고, 풍경은 당신이 되어야 한다. - 프랑코 폰타나 


언젠가 <프랑코 폰타나> 사진전을 보러 간 적이 있다.
화려한 색채와 자로 잰듯한 완벽한 구도들의 사진들보다 눈길을 끈 건, 도시 구석구석이 담긴 사진이었다. 

마치 그가 머무는 시선을 함께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비록 사진으로 담아낼 재능은 없지만, 일상에서 순간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능력은 내게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전시였다.


낯선 곳을 가면 집 근처에서 자주 보던 전봇대마저도 설레게 보이게 하는 마력이 생긴다.  

거기다가 날씨까지 환상적이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서 하찮은 재능에 감사한 마음까지 든다.   

매우 추운 겨울에는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일 때가 있는데, 그때 매일 보던 가로수, 건물, 심지어 도로 표지판마저도 낯설게 보인다.    


각자가 느끼는 아름다움의 기준은 천지 차이라서 어쩌면 내 눈에 신비롭게 보이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하찮은 것일지도 모른다. 뭐 그래도 내게만은 반짝거리는 자극을 주니까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점점 사라지는 것들 

사진을 잘 찍지 않아 오직 기억에 의존해 마음에 들었던 골목이나 동네를 돌아다니는데 최근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사건(?)이 있었다. 

1년 만이었을까? 근처에서 볼일을 본 뒤, 찾아 간 동네가 재개발에 들어가 커다란 공사장으로 변해있었다.  

이전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커다란 공사장> 일뿐이었다.   


낙후된 지역을 재개발하는 것이야 막지 못하겠지만 커다랗고 길쭉하고 반딱거리는 건물로 변신하기 전에 진작 사진으로 남겨두지 않은 내가 원망스러웠다.    

기억 속에서 오래오래 남을 것이라는 착각과 달리 이미 흩날리는 공사장 모래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다시 좋아했던 모습으로 떠올리려 해도 생각나지 않아 슬플 뿐이다.  


더 많은 것들이 사라지기 전에 틈틈이 나만의 <시선 백과사전>을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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