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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기록자 Apr 19. 2024

길이 안 보일 땐 미술관을 가요.

아무것도 몰라도 괜찮지 않을까. 

공간이 주는 묘한 안정감 

어릴 때 엄마는 종종 나와 동생들을 데리고 박물관, 미술관을 데려가셨다.

그곳을 좋아하는 마음이라기보단, 실내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조잘거리는 우리의 모습을 보기 위해 가셨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도 그 공간이 주는 특유의 안정감을 좋아한다. 그리고       

가끔 머리가 복잡하거나 공허한 마음이 들 때면 무작정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아간다.

무엇보다 입장료가 무료 이거나 3,000원 내외니까 부담 없이 언제든지 갈 수 있어서 좋다.   

 

재밌는 사실은 아무리 자주 갔어도 [미술, 유물, 역사 등에 대한 내 지식 사전]은 텅텅 비어있다는 것이다. 

공간에서 알 수 없는 영감과 안정감만 느끼고 온다. 사실 내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문득 싱숭생숭해서   

봄과 여름 그 사이, 공기의 흐름은 어느새 '새로운 시작'으로 바뀌었고 왠지 나만 겨울 상태 그대로 인 것 같은 마음이 드는 요즘이었다.


글을 쓰다가도 문득, 사업 제안서를 쓰다가도 문득, 산책을 하다가도 문득. 


"요즘 나 뭘 하고 있는 거지?"라든가 "잘하고 있는 건가"와 같은 생각들이 차올라 집중을 방해하곤 했다.  


하던 일을 접고 현대미술관 홈페이지를 들어간 이유이다.  

마침 현재 전시 중인 주제도 마음에 들겠다, 망설임 없이 바로 예매 버튼을 누르고 가방을 메고 나왔다.   


정영선 :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조경은 땅에 쓰는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고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습니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가슴이 뛰듯, 우리가 섬세히 손질하고 쓰다듬고 가꾸는 정원들이 모든 이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치유와 회복의 순간이 되길 바랍니다. -
 정영선

똑똑, 실례하겠습니다.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시멘트와 어울리지 않을 듯한 초록초록함이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입구에 쓰인 한국 1세대 조경사라는 그녀의 소개 멘트를 보니 오늘의 즉흥 결정이 벌써 만족스럽다.   


평소 건축 설계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자연과 어우러진 건축 구조를 좋아한다.

그래서 길을 걷다 마음에 드는 건물이 보이면 몰래몰래 찍어두는 편이다.  


거기다가 검고 흰 것만 구분하는 까막눈인 주제에 외계어 가득한 건축 설계도도 멋대로 뒤져 저장하는 수상한 취미까지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사방에 널린 그녀가 한국에서 작업한 조경 프로젝트들에 대한 스케치, 설계도 들은 그녀의 작업장을 남몰래 들어간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아주 오랜 시간을 자연과 건물의 연계성에 대한 고심한 흔적이 가득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 어..! 여기 내가 작년에 간 곳인데 " "저긴 지난번에 갔던 곳이잖아~!"

전국을 돌아다니는 프로 뚜벅이로 지난날 방문했던 곳들의 배경엔 대부분 조경사님의 손길이 있었다는 사실에 홀로 감탄하며 전시실을 빠져나왔다.    


가변 하는 소장품

하나만 보고 돌아가기엔 아쉬워 함께 예매한 

[가변 하는 소장품]이라는 전시도 들렸다. 


"현대미술에선 정확하게 크기를 잴 수 없는 작품의 경우 작품의 크기를 '가변 크기'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

어쩐지 가변이라는 문구가 계속 눈에 밟힌다. 


들어서자마자 숨 막히게 마음에 드는 작품이 반긴다.  <아홉 번째 판에 부치는 서문: 미완카삽-바치>의 작품인데 액자 캔버스 뒷면에 그린 그림이다.


흔히 작품 하면 떠오르는 고정관념을 모조리 부수고 뒤집는 발상이다.   


"꼭 앞면에만 그리라는 법도 없는데, 저 생각을 못해봤네.." 

별 기대 없이 둘러본 전시관인데 작품들을 들여다볼 때마다 왜 마음이 요동치는 걸까?


자유롭게 배치된 숫자들에게 이유는 묻지 말라는 작가, 국기를 모아 씨실과 날실로 해체한 전시들

이들은 하나같이 모두 명확한 해석, 정답을 찾는 것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그냥 느끼는 대로 느끼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던 내게 던지는 의문 같았다.  


새로운 장소, 그리고 맥락에 따라서 속성은 계속 변화하고 새롭게 해석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뭐든 정해진 틀 안에 넣으려고 노력해 왔던 것 같다. 


남들에게 보이는 시선, 의미만 신경 쓰느라 놓치고 있었다. 

언제든 가변 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저는 가변 하는 중입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아서 자기소개 한 줄을 적는 게 늘 어려웠다.   

그런데 이제 더는 그런 고민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드디어 나도 쓸 말이 생겼기 때문이다.

저는 가변 하는 중입니다. 

 

도저히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이 안 보일 땐, 그냥 가자. 그냥 좋아하는 곳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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