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시작되는 기쁨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이 감동적인 게시물을 띄웠다. 외국에서 어느 손녀가 올린 할머니의 육아일기였다. 어머니가 써도 뭉클 할 텐데 할머니가 쓰신 자신의 육아일기라니. 뭉클한 마음을 안고 찬찬히 읽었다. 그중 일기 하나를 옮겨와 본다.
"오늘은 너의 엄마아빠가 외출하고 없을 때,
네가 처음으로 '엄마'소리를 내었어.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란다.
너의 첫 말은 엄마아빠가 들어야 기쁘지 않겠니!"
자식 부부가 기뻐할 순간을 위해 손녀의 첫마디를 비밀로 하는 할머니. 생후 첫마디가 가진 의미가 무엇이길래 그런 사랑을 만들어내는 걸까?
나의 생후 첫마디는 '아빠'이다. 어머니는 이 얘기를 할 때면 서운함이 올라오는 것 같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맞벌이로 일하면서도 당시 사회정서상, 육아의 대부분을 담당하셨다. 온 시간과 체력을 바쳐 키운 아기가 처음 뱉은 말이 '엄마'가 아닌 '아빠'라면, 서운할 만도 하다.
아버지는 좋으셨겠지만 어머니껜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든다. 다행히 사건의 전말이 달라질 가능성이 생겼다. 나의 실제 첫마디가 '엄마'였는데 돌봐주시던 친정할머니가 비밀로 하셨던 게 아닐까? 그러다 내가 엄마 앞에서 돌연 '아빠'라고 해버린 게 아닐까? 어쩌다 공식적인 첫마디가 되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생각해 보면 그전부터 나는 말을 해왔을 것이다. 나의 첫마디는 엄마도 아빠도 아니었다. 어른들이 알아듣지 못했을 뿐.
"우으어(배고파)"
"우에으(잠 와)"
살고자 하는 의지로 열렬히 소리를 내었건만 어른들에게 '말'로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옹알이로 불리는 이 소리들은 말보다는 작은 포효였을 터. ‘엄마’ 혹은 ‘아빠’처럼 표현이 말로써 인정받으려면 우선 듣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언어로 뜻을 가질 때 비로소 말로 성립된다.
말로써 인정받은 생후 첫마디는, 세상이 알아들을 수 있는 최초의 자기표현이자 최초로 청자를 지명했다는 의미가 있다. 세상으로 한 음절, 걸음마를 내디딘 것이다. 그 첫마디를 시작으로 아기는 말을 배워나간다. 세상을 향해 사랑을 말하고 아픔도 말하고 희로애락을 말할 것이다. 그러니 첫걸음마만큼이나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기분은 세계가 시작되는 장면을 목격한 신비의 기쁨과 비슷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