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 보충하기
*프로젝트 주제 및 내용과 관련해서는 #8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글을 읽으면서 직접 구글검색을 활용해보기를 권한다.
‘구글검색의 젠더권력’을 주제로 탐구를 진행해하는 중이다. 간단히 말해서 ‘길거리’, ‘일반인’, ‘조수석’, ‘호불호’라는 일상어를 중심으로 발생하는 폭력적 담론을 토픽 모델링이라는 수학적 방법으로 분석해보는 것이다. #11 글에서 다룬 토픽 모델링 결과는 한국 남성이 일상어를 어떻게 재의미화하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여성의 일상은 어떻게 위험에 처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단순히 상황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탐구의 의미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보다 의미 있는 논의를 하려면 이것이 한국 남성만의 문제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즉 다음 두 가지 질문을 추가로 던져볼 가치가 있다.
1. 이것이 한국의 ‘남성’에게서만 나타나는 문제인가? 한국의 여성은 일상어를 어떤 양상으로 재의미화하는가?
2. 이것이 ‘한국’의 남성에게서만 나타나는 문제인가? 해외 남성이 일상어를 폭력적으로 재의미화한 사례는 찾을 수 없는가?
그래서 나는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1번 질문에서는, 젠더라는 주제와 관련 있으면서도 남성과 여성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있는 검색어를 찾아야 했다. 까다로운 일이었다. 남성이 주 검색층인 용어를 A라 하고 여성이 주 검색층인 용어를 B라 한다면, A와 B는 각각에서 특정 방식의 재의미화가 나타나는 동시에 A와 B 자체가 어느 정도 의미상의 관련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나는 보이그룹과 걸그룹을 사례로 들기로 했다. 아이돌 자체가 남성과 여성이 성적으로 소비되는 양상을 잘 드러내주는 개념이며, 보이그룹은 대체로 여성이 검색하고 걸그룹은 대체로 남성이 검색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아이돌 자체가 성 상품화 논란을 지닌 주제이니, 근본적인 논의는 미뤄놓고 분석해보아야겠다. 우선 검색창에 입력해보았는데, 걸그룹과 보이그룹 모두 특별히 폭력적인 방식으로 소비되는 정황은 찾을 수 없었다. 여러 걸그룹과 보이그룹에 대한 소개가 검색결과 대부분을 이루었다.
하지만 검색의 이미지 결과를 좁혀주는 키워드에서 충격적인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위 그림의 파란색 밑줄친 부분이다. 밑줄친 키워드를 클릭하면 그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이미지로 검색 결과가 좁혀진다. 이는 특정 검색어를 입력한 사용자들이 어떤 결과를 원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걸그룹과 보이그룹 각각의 검색결과, 구글 검색엔진이 제시한 키워드는 아래와 같다. 주목할 만한 키워드에는 하이라이트 처리를 했다.
걸그룹이라는 검색어에 딸린 키워드는 나에게 굉장한 충격을 주었다. 성희롱 같은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일단 키워드들 자체가 너무 폭력적이다. ‘변태적이다’라는 수식어가 가장 어울릴지도. 걸그룹의 온갖 신체 부위가 남성의 성적 유희를 위해 이용되어 온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에서는 아예 범죄 수준에 가까운 내용도 있었고, 아니면 너무 일상적이어서 오히려 더 당황스러운 내용도 있었다.
이에 반해 보이그룹은 일단 키워드 자체가 많지 않다. 추가 키워드로 내놓을 만한 굵직한 담론이 별로 없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보이그룹의 키워드에서도 논쟁적인 단어를 하나 찾을 수 있지만, 남성이 걸그룹을 소비하는 방식과 여성이 보이그룹을 소비하는 방식에 상당한 차이가 존재함을 양쪽의 결과는 나타낸다.
상당한 수의 남성은 지속적으로 걸그룹의 신체를 파편화시키고, 자신의 성적 쾌락을 자극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앞서 살펴본 토픽 모델링 결과와, 아이돌의 성적 소비 양상의 차이로부터 일상어의 폭력적 재의미화가 남성의 문제임을 뚜렷하게 인식할 수 있다.
해외 남성의 사례를 볼 때 그렇지만은 않다. 구글 알고리즘의 불평등성을 가장 먼저 지적한 연구자는 오히려 미국의 사피야 우모자 노블이었다. 구글 알고리즘의 불평등성에 관한 연구에서 노블을 인용하지 않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 즉 해외 남성도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노블은 또한 흑인을 차별하는 알고리즘의 작동을 지적한 바도 있다. 그의 저서 《구글은 어떻게 여성을 차별하는가》를 참고하라.
아래는 구글 알고리즘에 나타나는 성차별을 비판한 사피야 우모자 노블의 강연에서 따온 자료로, 2014년에 black girls (흑인 소녀)와 beautiful (아름다운)을 검색했을 때 나온 이미지 결과들이다.
여성의 신체를 성적 유희를 위한 담론으로 소비하는 것은 한국의 남성만이 아니라, 전 세계 남성이 공유하고 있는 문제로도 볼 수 있다. 다만 성(姓)적 의미가 전혀 담겨있지 않은 길거리나 일반인과 같은 일상적인 단어에서도 폭력적 담론이 형성된다는 사실은 한국의 여성인권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구글 측에서는 이런 결과가 더는 나오지 않도록 필터링 장치를 개발했다.
문제의 큰 책임이 사용자 남성에게 있다고 살펴보기는 했지만, 이제 black girls와 beautiful과 관련해서 남성과 여성이 불평등하게 호출되는 상황을 멈추었다는 점에서 살펴본 일상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는다. 물론 이보다 중요한 일은, 사용자 대중을 차별적으로 호출하지 않는 알고리즘을 만드는 일이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일은, 여성을 이런 식으로 소비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