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최종보고서의 5절에서 일상어의 폭력적 재의미화가 주로 한국 남성의 문제임을 지적하기 위해, 걸그룹과 보이그룹의 검색결과를 비교했습니다. 이미지 검색결과(검색결과를 좁혀주는 키워드)에 한해서는 남초 커뮤니티의 문화의 폭력성이 굉장히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 사례에 관해서 동기 친구가 날카로운 질문을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보는건 어때? 남자들이 시각적인 것에 생물학적으로 자극을 받는다고 하잖아. 그래서 그런 사진 검색이 많은거 아닐까? 아이돌을 중심으로 본 건 한계가 있을 수 있는게, 극단적인 여성팬들이 남자 아이돌 상대로 성적인 팬픽, BL물 같은거 많이 제작하고 공유한다는 거도 공공연한 사실이잖슴. 그걸 보면 변태적이다라는 생각하게 될껄. 그런 제작물을 중심으로 비슷한 연구 진행하면 반대의 결과가 나올껄?
남자 아이돌과 관련해서 BL물(Boy's Love) 소설을 창작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고, 구글에 검색해보면 굉장히 다양한 글들이 나타납니다. 이런 맥락에서는 여성집단도 남자 아이돌을 성적 쾌락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남성집단과 여성집단에서 나타나는 폭력적 문화는 각각 얼마나 강한가,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얻게 됩니다. 또 두 문화 사이에 차이점이 존재하는지도 생각해볼 만합니다. 오늘은 이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탐구 방식은 '구글 트렌드'입니다.* 이 사이트에서는 특정 검색어에 대한 구글 사용자들의 검색량과 패턴 등을 분석하여 결과를 제공합니다. 어떤 아이돌을 각각 비교해야 할까 찾아보다가, '최애돌'이라는 사이트에서 선정하는 이달의 인기 아이돌 순위를 발견했습니다. 2020년 8월 기준 탑3 남자 아이돌과 여자 아이돌을 조사해보면 충분한 검색량을 바탕으로 한 자료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선정한 연구 대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남자 아이돌: 엑소 / 방탄소년단 / GOT7
여자 아이돌: 블랙핑크 / 트와이스 / 레드벨벳
그룹명과 각 멤버를 구글 트렌드에 검색했고, 해당 사이트에서 제시하는 '키워드 관련 인기 검색어(최대25위)'를 엑셀로 정리했습니다. 개인 기준으로 몇몇 아이돌은 유효한 관련 검색어가 매우 적거나 없어서 표기해두었습니다. 극단적인 예로 블랙핑크의 멤버 '지수'를 검색하면, 코스피와 코스닥 등의 주가지수만이 유효 관련검색어로 나타납니다. 이와 같은 교란 요인으로 관련검색어를 얻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GOT7 멤버들의 이름은 구글 트렌드 통계에 제대로 잡히지 않아 따로 정리하지 않았습니다.
각 엑셀은 관련검색어를 검색량 순으로 정렬한 것입니다. 주목할 만한 관련검색어에는 굵은글씨/이태릭체 처리를 해두고 퍼센티지를 옆에 적어두었습니다.(애매한 경우는 퍼센티지만 적었습니다.) 그 퍼센티지는 1위 검색어의 검색량을 100%로 놓았을 때, 해당 검색어의 검색량을 의미합니다. 엑셀파일은 글 하단**에 올려두었고, 지금부터 사진으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3-1. 남자 아이돌을 소재로 한 BL물(그리고 야설)의 소비 행태
먼저 남자 아이돌의 경우, '빙의 글'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BL물이 유통되고 있었습니다. 구글에 "~ 빙의 글"이라고 검색해보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남자 아이돌들 사이의 사랑과 성행위를 꾸며낸 이야기들입니다.
하지만 '빙의 글' 전체를 BL물로 분류할 수는 없겠습니다. '빙의'의 의미는 말하자면 글쓴이의 영혼에 아이돌이 빙의해 이야기를 쓴다는 것입니다. 굳이 분석하자면 여기에도 사실 다양한 장르가 있습니다. 여자 주인공이 아이돌 그룹 멤버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 '역하렘', 아이돌 멤버들에게 특별한 능력을 부여하는 '센티넬물'***이 있습니다. 또 보통 드라마처럼 아이돌 멤버를 재벌로 만들거나,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한 사극을 짓기도 합니다.
이런 문화는 나쁠 것 없지만, 위의 표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고수위 빙의 글'이나 '강한 빙의 글(강빙)'이라는 키워드는 다소 폭력적인 글들로 연결됩니다. 이러한 키워드를 달고 올라오는 빙의 글들이 앞서 언급한 BL물에 해당합니다. BL요소 없이 남자 아이돌과 가상의 여자 주인공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기도 합니다.
창작자들은 남자 아이돌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그들의 이름과 사진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성적 유희를 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성 대상화이자 폭력입니다.
엑소를 검색한 사람들 중 최대 다수가 '엑소 빙의글'을 검색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중 40%가 '강한 빙의글'을 검색했다는 사실은 남자 아이돌 BL물에 대한 수요가 적지 않음을 드러냅니다.
여기서 엑소가 굉장히 특이한 데이터(outlier)임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엑소는 빙의 글 검색량이 다른 남성 그룹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그룹이었습니다. 특히 멤버 백현을 중심으로 많은 빙의 글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GOT7, 세븐틴, 빅스 등 다른 남자아이돌의 검색 트렌드를 조사해보아도, 엑소만큼 빙의 글 검색량 비율이 높은 그룹은 찾을 수 없습니다.
엑소가 특이한 데이터라는 점에서, 남자 아이돌을 소재로 한 BL물의 수요는 위의 데이터에서 조금 과대하게 측정되었다 보아야 합니다. 뒤에서 할 이야기(3-3)와 이어집니다.
3-2. 여자 아이돌을 향한 성희롱 문화, 그리고 '딥페이크물' 소비 행태
다음으로 여자 아이돌의 경우, 여러 신체부위가 인기 관련검색어에 올라와 있습니다. 친구가 지적했듯이, 장황한 서사보다는 뚜렷한 시각적 자극에 민감한 남성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일 것입니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이 폭력적인 문화를 정당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표에는 당사자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고도 남을 추악한 검색어들이 많습니다. 이용자들이 단지 그런 사진을 공유하는 데서 나아가, 이런 문화가 아이돌의 신체를 품평하고 희롱하는 담론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은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신체부위에 관한 검색어들을 보면서 크게 놀라지 않았습니다. 커뮤니티나 SNS에서 종종 마주치는 문화라고 할까요. 아이돌 BL물을 n번방과 비교하는 기사****는 올라오면서도, 남초 커뮤니티의 문화에 대한 지적은 딱히 없는 현 상황도 하나의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남자 아이돌을 소재로 한 BL물은 기자와 독자의 충격을 이끌어내지만, 여자 아이돌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은 이미 너무 익숙한 일이죠.
아무튼 저에게 진짜 충격을 주었던 것은 '딥페이크'라는 키워드였습니다. 여자 아이돌의 얼굴을 합성한 야한 사진/영상이 논란이 된 바 있었습니다. 그것을 딥페이크라고 하더군요. 딥러닝이라는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여 영상에 아이돌의 얼굴을 합성하는 방식이라는 의미입니다.*****
단지 극소수 집단의 일탈적 문화로 치부하기는 어렵습니다. 레드벨벳의 아이린을 검색한 이용자들 중 가장 많은 비율이 아이린의 딥페이크 영상을 찾았다는 점(연관검색어 1위), 다른 아이돌들에게서도 딥페이크가 유효한 연관검색어로 나타난다는 점은 상당한 수의 남성이 이런 문화에 동조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구글 트렌드에서 아이유의 연관검색어 3위(1위 연관검색어인 '아이유 갤러리' 검색량의 93%)로 딥페이크가 제공된다는 점은 더더욱 충격적입니다.
가짜를 꾸며낸다는 점에서, 혹자는 BL물과 딥페이크의 유사성을 지목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쎄요. 비동의 BL물을 옹호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지만, 서사에서 소재로 쓰인 아이돌은 최소한 인간의 형태를 갖추었습니다. 딥페이크 영상을 직접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그에 사용된 아이돌은 꼭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되는 것 같아 너무나도 거북합니다. 사족을 덧붙여보았습니다.
3-3. 각각의 문화는 얼마나 강한가
아래의 그래프는 강한 빙의 글(BL물과 야설), 딥페이크, 빙의 글의 검색량을 비교한 자료입니다. 왼쪽은 최근 1년, 오른쪽은 최근 3년을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딥페이크가 등장해 힘을 받은 이후, '딥페이크'(빨간색)는 매 시점 '강한 빙의 글'(파란색)보다 3~4배 정도 많은 검색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팬 소설을 가리키는 '빙의 글'(노란색)과 비슷한 수준의 검색량을 보이기도 합니다.
절대적 검색량을 알기 위해 '블랙핑크'(노란색)와 '엑소'(초록색)도 함께 돌려보았습니다. 이제 BL물과 딥페이크 유통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가렸습니다.
이게 팬덤의 소행인지도 불분명합니다만, 검색량으로 어느 성별의 팬덤이 낫다를 가리는 일은 조금 유치합니다. 폭력적인 사진과 영상을 합성하는 일은 물론, 폭력적인 서사를 창작하는 일도 멈춰야 하고, 폭력적인 담론도 멈춰야 합니다.
하지만 본래 프로젝트와 이어지는 맥락에서, 오늘 살펴본 자료들이 (한국) 남성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희롱과 신체 품평에서 딥페이크에 이르기까지, 남성이 여성의 신체에 행사하는 권력은 반대 방향에 비해 훨씬 범위가 넓고 정도도 강합니다.
본래 프로젝트에서 저는 남성이 여성의 일상에 행사하는 부당한 권력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세부적으로는 다양한 논의의 여지가 있지만, 큰 틀에서는 생각이 바뀌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회혁신 프로젝트 시리즈는 이 글을 끝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달 반 정도 휴식기를 가졌는데, 다시 평소 같은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https://trends.google.co.kr/trends/?geo=KR
**
***조금 더 복잡한 세계관이 있는데 '센티넬버스(sentinel verse)'를 검색해보면 여러 설명이 나옵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757941
*****https://news.lawtalk.co.kr/issues/1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