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현 <사바하>
영화 <사바하>에서 필자에게 반전으로 다가왔던 것은 ‘선과 악’의 구도가 뒤바뀐다는 점이었다. 작품 초반 ‘악마’라고 직접적으로 지칭했던 ‘그것(금화의 언니)’이 사실은 진리를 알려주는 존재임이 밝혀지는 부분이었다. 즉, ‘악’으로 생각했던 대상이 ‘선’을 행한다는 점에서 선악의 구도가 뒤바뀌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스승님(사실은 아니었지만)을 지극정성으로 모셨던 제자가, 그리고 거의 열반에 올랐던 김제석이라는 인물이 이기심으로 인한 살인을 저지르는 ‘악’이라는 점 또한 마찬가지였다. 명확한 선과 악을 설정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김제석과 그것 모두 선악의 모든 측면을 보여주고 있었다는 점에서 누가 감히 어찌 선한 인물과 악한 인물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고, 이런 구도는 사실 ‘반전’이라기보단 우리네 삶에서 근본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선악 선정의 한계와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선과 악이라는 건 절대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영원할 수 없다. 물론 그 기준에도 보편성이 있고, 마땅함이 존재하지만(필자도 물론 절대로 살인과 같은 행위가 정당화되거나 이해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선과 악은 인간이 주관적으로 ‘마음속으로 정한 것’이기 때문에 언제든 뒤바뀔 수 있으며,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가질 수밖에 없는 불가항력적인 불완전성으로 인해 이 세상엔 영원히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존재할 수 없다. 특히 ‘선’에 따라 행동하고자 하는 신념은, 우리가 합리성에 기초한 이기적 인간으로서의 존재이기에 악보다 훨씬 사라지거나 유혹에 빠지기 쉽고, 그렇기에 그것을 지키기 위해선 부단한 노력이 필요 하지만, 그것은 매우 어렵기에 종종 무너지고 말 수밖에 없다.
결국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지, 그 구분을 얼마큼 지속해서 가져갈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에는, 지속적인 물음으로밖에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과 악이 뒤바뀌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일이며, 선함과 악함을 규정하는 것도 결국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간사하다’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김제석을 보면서 선이라는 것은 과연 끝까지 지킬 수 있는 존재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김제석은 부처의 진리를 깨달아 거의 열반의 지경에 이르렀고, 영생에 가까운 진리를 가진 사람이었다. 즉, 그는 거의 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었는데 그러한 그 또한 자신의 영생이 위협을 받을 것이라는 말을 듣자 자신을 위해 타인을 해치는 행위를 수년에 걸쳐 단행해온 것이다. 또한 영화 속에서 이정재가 말한 예수를 위해 희생된 무고한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과연 우리는 신을 정의롭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을까?
필자가 많은 종교를 아는 것은 아니기에 불교와 그리스도교만 한정해서 생각해보자면, 종교적인 차원에서 이단이라고 말할 발언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신들도 태초에는 ‘인간’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존재의 근원적 불안정성으로부터 발생하는 신의 부정의를 ‘아예 없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사소한 일상에서 타인의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 정도는 참 부질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다다르게 된다. 타인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에서부터 시선을 돌려, 그저 자신의 내면에만 집중하며 스스로 세운 ‘선’에 부합하기 위해 온전히 노력하는 것만이 우리가 인간에 내릴 수 있는 선과 악에 대한 심판 중 유일하게 정확하고 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찌 보면 그것이 결국 모든 종교에서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가르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