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링에는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이 필요한 법이다

이안 <라이프 오브 파이>

by 최지호

“맹목적인 믿음은 안 돼, 이성적인 사고를 하라는 거지.”

“종교는 끊임없는 의심의 방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의심은 믿음을 유지해주죠.”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는 한 소설가가 ‘신의 존재를 믿게 해줄 만한 이야기’를 가진 파이를 찾아와 그 이야기를 듣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아무래도 신이라는 것은 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우리는 신, 종교에 대한 믿음과 그 위대성에 관한 내용을 지속해서 체험할 수 있다. 극복할 수 없을 만큼 힘들 때마다 나타나는 구원, 그리고 그 덕분에 신께 감사함을 표현하는 파이. 영화를 비판적으로 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역시 신은 대단해, 경이롭군’이라는 생각밖에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는 단순히 종교의 위대성과 그것이 주는 안식, 신의 존재에 대해 말하고 있는 영화가 아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 영화는 ‘종교’라는 것과 그와 대조되는 ‘이성’이라는 것이, 서로 공존하며 조화를 이뤄야지만 비로소 믿기 힘들 만큼 기적적인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른 말로 하자면 그래야 비로소 신이 내려와 구원을 내려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 같다.


과학은 철저한 ‘이성’의 영역이지만, 종교는 완전한 ‘믿음’의 영역이다. 이성은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지만, 종교는 믿음에 의심을 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다. 과학의 세계에서 신은 증명 불가능한 비 성립의 존재지만, 종교에서 신은 증명할 필요조차 없는 완성된 존재이다. 이렇듯 이성과 종교는 철저히 대립한다. 마치 영원히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처럼.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이 둘은 오히려 더욱 섞여야 한다. 아름다운 마블링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


파이의 일생에서 표류에서 생존한 것은, 예술적으로 말하자면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이런 기적적인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파이에게 이성과 종교가 조화롭게 섞여 존재했기 때문이다. 구원을 기다리는 ‘종교적 인간’이었던 파이의 생존을 책임진 것은 구원에 대한 희망도 있었겠지만, 구원과 구원 사이 치밀하게 작용한 철저한 이성의 몫이다. 육식 동물과 함께 좁디좁은 배에서 공생할 수 있던 것, 서바이벌 키트를 찾아 배를 채우고 물을 마실 수 있었던 것, 식충섬에서 떠나 결국 멕시코 해안에 닿을 수 있었던 것들은 모두 다 이성적인 사고의 생산물이다. 단순히 신에 대한 믿음은 그를 살려줄 힘이 없었으며, 오히려 그것은 ‘신의 곁으로 가고 싶다’라는 반대의 생각만 부추길 뿐이었다. 기적을 만나려면 일단 살아 있어야 하는데, 이성의 작동이 없었더라면 파이는 고난 사이사이 그에게 찾아온 ‘신의 뜻’을 깨달을 때까지 살아있을 수조차 없었을 것이며 표류에서 살아남은 현재와 같은 신에 대한 확신 또한 갖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리처드 파커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리처드 파커는 이 아름다움 속 어떤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


이성적이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지속해서 파이의 이성을 깨워주는데 있어서 큰 도움을 주었던 것이 바로 리처드 파커이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면 정신을 차려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성이 작동하지 않으면 망망대해에서 육지 동물인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의 두려움을 지속해서 자극하는 리처드 파커는 파이의 '이성의 근원'이다. 이런 논리로 보면 결국 파이는 리처드 파커 덕분에 살아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리처드 파커가 파이의 마블링을 만든 근원적인 신, 비슈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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