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그냥, 두리뭉실하게

by 최지호

"지호샘, 이건 왜 이렇게 했어요"

"아, 그건 이 페이지에서 주로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또다.


"오늘 점심은 샐러드 어떠세요?"

"좋아요. 왜, 요즘 다이어트 하세요?"

"그건 아니고 어제 밥을 좀 헤비하게 먹었더니..."


일에서도, 취향에서도 벗어날 수가 없다.


"일은 좀 어때요, 잘 맞는 거 같아요?"

"네, 좋아요. 예전에 경험했을 때도 좋았던 부분들이 더 잘 체감되고..."


나이를 먹을수록 내게는 왜라는 질문이 점점 더 쌓였고,


"흠, 왜 그런 거 같아요?"


나는 더 촘촘한 단어들로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나라는 사람을 설득해야 한다.


"그냥요"


하.

한숨이 나오도록 빡빡해지는 세계.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그 언짢은 갑갑함에 너의 말이 떠올랐다.

- 당신은 생각을 그만해야 할 필요가 있어




"어떻게 생각을 그만할 수 있어?

이유와 생각 없이 삶을 대하기엔 삶이 너무 아까운데, 넌 그럴 수 있어?

그리고, 무언가에 대한 명확한 이유가 없다면 그게 진심이라고 할 수가 있나?"

"그냥 하고 싶으면 그냥 하는 거지.

당신은 대체 왜 그렇게 생각이 많은 거야? 안 피곤해?"

"됐어, 네가 아직 어려서 그래"


그땐 피곤하지조차 않았고, 그렇다 할지라도 그 피곤마저 멋이라고 생각했다.

단어들을 촘촘하게 쌓을수록 나라는 사람과 삶이 뚜렷해지는 것 같았고

그 뚜렷함은 곧 유능함과 비례하는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단어들로 뚜렷하게 조각할 수 있고,

담기지 않는 것들을 담아내려고 애쓸수록

모호함을 명확함으로 가공해주는 나는 '인텔리'한 사람이 된다고 믿었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이유와 취향이 있는 사람을 유능하고 멋있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이유가 있어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라는 것들을 단어로 써내려 가는 것이,

결국은 이름표에 내 이름 석자를 써 붙이는 것과 동일한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의 말과 행동에 꼭 이유를 달아줬던 때가 있었다.


무지했지, 애초에 전제부터가 틀렸단 것을 몰랐던 거다.

세상엔 태어나기를 단어라는 그릇에 오롯이 담길 수 없는 것도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내 것'을 만드는 데에 있어 중요한 건 덕지덕지 붙인 이름표가 아니라는 것을 몰랐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난 그때 마음이 아닌 그저 단어에 취해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너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모든 게 반대로 흐른다는 것을 알았다.

그건 내게는 혼란이었다.




단어에 푹 빠져버린 난 사랑도 단어로 확인받고 싶어했다.


"날 사랑해?"

"그럼, 당연하지."

"날 왜 사랑해?"

"그걸 대답해야 알아?"

"안 말해주면 내가 어떻게 알아."

"그냥 다 사랑하지, 이유가 어딨어."

"어떻게 이유가 없을 수가 있어. 얼굴이 예뻐서, 성격이 발랄해서, 머리가 똑똑해서...

결국 모든 거엔 다 이유가 있어. 네 사랑도 다 이유가 있어.

그걸 말하지 못하면 날 사랑하지 않는 거지."

"알았어, 당신이 맞아.

하나씩 얘기하려면 끝도 없어서 밤새 얘기할 수 있겠다..."


단어로 된 이유를 맹신하던 나는 네가 나침반을 들고 상하좌우앞뒤로 날 다 훑으며

정수리부터 발톱까지,

왼손부터 오른쪽 발뒤꿈치까지,

피부부터 심장까지,

모든 방향의 것들을 애써 단어에 담아줘야 그제서야 날 사랑함을 믿었다.

그런 대화가 수백 번은 반복됐을 즈음에 네가 물어왔다.

산타클로스에게 선물을 요청하는 아이마냥 나지막이,


"그럼 이제 당신이 얘기해봐. 날 왜 사랑해?"


그날은 크리스마스였다.

하필 사랑하는 모든 연인들이 더 사랑에 빠지는 날이었다.

우리는, 내가 좋아할 것 같다며 한 달 전부터 예약해둔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먹고 나서,

거기다 너와 나의 이름을 하트로 이어붙인 장신구를 꽂아 평생 함께하자는 소원을 빌며 초까지 끈 후였다.

누가 봐도 사랑하는 사이의 연인 간 해야 할 것들을 충실히 이행하고 더 사랑에 빠질 타이밍이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심지어 너는 그날 유독 더 예뻐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니 그때, 그 질문을 받고서 그 어떤 단어도 떠오르지 않은 내 스스로에게 당황하지 않을 수가.

그때 내 머릿속에 있던 건 그저 둥둥 떠다니는 두리뭉실한 '그냥'뿐이었다.


"...그냥"

"그래? 그렇구나."


그때 넌 정말 받고 싶던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해사하게 웃었지.

내가 좋아해 마지않던 평수가 잘 빠진 호탕한 입동굴을 보여주며 말했지.


"당신은 날 정말 사랑하나보다."




그날부로 널 사랑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기에 난 널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넌 이런 이별 사유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고,

입력된 대사가 그것밖에 없는 전동식 인형마냥 같은 말을 반복하는 나를 떠나면서 넌 말했다.


"당신은 생각을 그만해야 할 필요가 있어."


그리고 머지않아

네 말처럼 이유라는 것이 존재만으로 버거워지는 날이 찾아왔다.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라고 콧웃음을 쳤던 그 문장이

삶에 대한 피로가 쌓이고 쌓일수록 어찌나 사무치던지.

그런 날에도 난 여전히 너를 사랑했다.


이젠 혼자인 침대 위에서 겹겹이 쌓인 어둠에 어지럽게 시선을 던지며 생각했다.

왜 아직도 널 두리뭉실하게 사랑하는가?


생각해보니, 신기하게도 단어들은 내가 싫어하는 것에서 유독 분명하게 남아 있었다.

내가 싫어하는 것들에는 요란하게 몰려와 오와 열을 맞춰 촘촘하게 뾰족해졌다.

- 여름은 끈적거리는 공기가 날 무겁게 눌러서 싫었다.

- 장미는 시드는 모습이 예쁘지 않아서 싫었다.

- 라멘은 기름기가 많은 탄수화물이라 싫었고, 양대창은 몸에 좋지 않은 기름 덩어리라 싫었다.

- 내가 서른 살까지 결혼을 하고 싶은 이유는 세 가지가 있으며,

- 그러므로 지금의 나는 삶이 거지같더라도 꾹 참아야 하는 지당한 이유가 있다.

- ...


반대로 그때까지도 너에게 붙은 단어는 아직도 '그냥' 하나였다.

그리고 무겁게 뻐근한 마음까지.


아,

사랑하는 것들엔 단어들이 뭉치고 얽히고 섥히다 못해 형태 없는 하나의 덩어리가 되었나.

그래서 그 덩어리를 애써 말로 표현하자면 그저 '그냥'밖에 될 수가 없었나.

그냥, 그 형체가 없는 두리뭉실함.

태어나기를 단어에 담을 수 없는 것.

그런 너그러운,

그런 게 사랑.




내게는 이유를 요구하는 상황이 날이 갈수록 제곱수만큼 쌓여가고 있다.

아무래도 일을 시작해서 더 그럴 테다.

사랑하지 않는 것에 애써 단어를 빚어내는 것은 괜찮으나,

종종 내가 사랑하는 것까지 이유를 물으며 두리뭉실함을 무능으로 치부해버리는 대화를 할 때마다

그 '그냥'을 못 해서 놓쳐버린 사랑인 널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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