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가 풀리면서 볼만한 영화들이 연이어 개봉하고 있다. 덕분에 지난 한 주 동안 두 번이나 극장을 방문했다. '쥬라기 월드 : 도미니언'과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이렇게 두 편을 보았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시리즈물이었다. 그러고 보니 앞으로 시청할 예정인 '범죄도시 2'와 '마녀 2' 또한 시리즈물이다. 사실 본편 이후 나오는 후속작들이 연달아 흥행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 본편만 못하다는 혹평이 쏟아지기 일수다. 그럼에도 쥬라기 월드나 마블은 흥행을 이어나가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 일까?
이들이 흥행을 이어나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저 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세계관'이 아닐까 생각한다. 쥬라기 유니버스에는 '공룡'이 있고, 마블에는 수많은 히어로들이 있다. 물론 공룡이나 히어로가 존재하는 영화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쥬라기 월드나 마블의 세계에서는 활동할 수 없다. 관객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공룡이나 히어로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흥미를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고유의 '세계관'은 다른 영화가 범접할 수 없도록 하는 최고의 무기가 되어준다. 그야말로 최고의 브랜딩 요소다.
영화뿐만 아니라 사랑받는 브랜드들은 저마다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맥도날드와 코카콜라는 끊임없이 '해피니스(happiness)'를 말하고 애플은 'Think Different'라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다. 이들은 제품의 장점을 굳이 자세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자사의 세계에서 소비자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 지만을 보여준다. 사실 이런 감성 마케팅은 선두에 있는 브랜드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다. 후발 주자나 추격하는 브랜드는 대부분 제품의 품질에 대한 이야기를 어필하기 바쁘다. 그런데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고 해서 하루아침에 소비자의 인식 속에 자리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도 2008년에는 아이언맨이라는 좋은 상품을 홍보하기에 바빴다. 아이언맨 이후에도 헐크, 토르, 캡틴 아메리카 등등 하나하나 질 좋은 상품들을 소개했고 10년 후인 2018년 비로소 '어벤저스'에서 그동안 숨죽였던 세계관을 폭발시켰다. 반면 베트맨과 슈퍼맨이 속한 DC코믹스는 상품의 소개 없이 '저스티스 리그'를 먼저 보여주면서 시네마틱 소비자들에게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이번 '쥬라기 월드 : 도미니언'에서는 90년대 스티븐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에 나오는 히로인들이 등장해 쥬라기 유니버스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이들이 하나하나 등장하는 극 초반 부분에는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다. 신구의 조화 속에 그동안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구성이 보는 내내 그 세계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좋은 제품들이 좋은 브랜드(세계관)를 만들었다.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는 이젠 원작에 있던 멀티버스의 세계관을 도입해 버렸다. 21년 '스파이더맨 : 노웨이 홈' 이전부터 꾸준히 언급된 이 세계관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 말고도 무수히 많은 세상이 있고 그곳에는 또 다른 내가 있다는 설정이다. 멀티버스 세계관은 앞으로 배우와의 계약이 만료되어 등장할 수 없었던 캐릭터들의 등장도 가능해진다. 뿐만 아니라 죽었던 기모라나 블랙 위도우가 다시 모습을 보일 수도 있게 된다. 원작에 18,000명 이상의 히어로와 빌런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해 보인다. 이 역시 좋은 브랜딩 요소들이 모여 타사가 범접할 수 없는 브랜드를 만들어낸 것이다.
한국에도 이런 세계관이 명확한 영화들이 있다. 앞에서 언급한 범죄도시 2와 마녀 2가 대표적인 예이다. 범죄도시 2에는 어떤 빌런도 불쌍하게 만드는 마석도가 있고, 마녀는 자윤과 소녀 이외에도 많다는 설정이다. 실제로 마녀의 박훈정 감독은 인터뷰에서 아직 전체 이야기의 10%도 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원작만 못하다는 혹평을 들은 영화들은 세계관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경우가 많다. 심지어 '나 홀로 집에 3'나 '엽기적인 그녀 2'처럼 감독과 주연배우가 바뀌는 경우도 있다. 공들여 소비자를 설득시킨 제품을 바꾸는 꼴이다.
좋은 브랜딩은 세계관을 구축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된다. 소비자가 빠져나갈 수 없도록 얼마나 단단한 세계관을 구축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번 '쥬라기 월드 : 도미너언'은 더 이상 쥬라기 유니버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아쉬움을,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이 세상에서 생기는 다음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주었다. 우리 브랜드는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소비자들을 설득하고 있을까? 혹시 DC처럼 성급하게 세계관만을 보여주고 있진 않은지, 유니버스를 구축할 수 있는 좋은 제품들은 가지고 있는지 고민해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