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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지 Sep 06. 2021

닮은 곳이 있대요


엄마하고 나하고 닮은 곳이 있대요.
엄마하고 나하고 닮은 곳이 있대요.
눈 땡 코 땡 입 딩동댕



 아이가 즐겨 듣는 동요 중 이런 노래가 있다. 엄마와 아이가 닮은 곳이 있다는 내용이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매일 실감한다. 나에게서 나온 이 아이가 나와 닮은 점이 있다는 걸 발견할 때, 놀라운 생명의 신비와 함께 전율을 느낀다.


 아이의 속눈썹은 나의 속눈썹과 꼭 닮았다. 뷰러 같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아도 속눈썹 끝이 자연스럽게 하늘로 올라간 형태다. 별로 잘난 것 없는 내 얼굴이지만 어릴 때부터 속눈썹 파마를 한 것처럼 말아 올려진 내 속눈썹이 참 마음에 들었다. 우리 엄마의 별빛 같은 눈에도 내 속눈썹과 꼭 닮은 하늘로 향한 속눈썹이 있는 걸 볼 때면 더 마음에 들었다. 내 신체의 일부가 우리 엄마를 닮았음을 깨달을 때 왠지 모를 포근함을 느꼈다. 지난 주말에는 고향 집에 갔다 친정아버지의 발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빠의 발은 내 발과 모양이 꼭 닮아 있었다. 삼십여 년이 흐르는 동안 한 번도 실감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아빠의 발 한번 제대로 살펴본 적이 없었나 싶어 부끄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포근한 감정에 휩싸였다. 내가 어디에선가 홀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사랑하는 우리 부모님의 모습을 여기저기 닮아 태어났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고 안도감을 주었다.

 닮은 곳은 비단 신체만이 아니다. 어쩌면 신체보다 우리 삶을 더 좌지우지할 마음속도 꼭 닮았다. 우리 엄마는 음악을 사랑하신다. 내가 어릴 적, 넉넉지 못했던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한 푼 두 푼 허리띠를 졸라 아껴가며 작은 오디오를 장만하셨다. CD와 테이프를 재생할 수 있었던 그 기계로 어머니는 늘 노래를 들으셨다. 학교를 오래 다니시지 못해 영어는 몰라도 팝송을 즐겨 들으셨다. 우리말로 해석된 가사를 음미하시고는 어린 딸에게 내용을 들려주셨다. 오래된 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달라는 그 노랫말은 어린 소녀의 마음에도 큰 울림을 주었다. 바람이 선선히 부는 시골 흙집 툇마루에 앉아 젊은 엄마와 어린 딸은 그렇게 노래를 즐겼었다. 나 역시 자라오면서 음악은 내 삶의 한 축이었다.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니면서 모은 돈으로 CD와 테이프를 사 모았다. 밥과 간식으로 배를 채우듯 내 마음에 허기를 채우고 영양을 주는 방법이었다. 내 아이 역시 마찬가지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동요 CD를 틀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른다. 언제 익혔는지 이제는 제법 그럴싸한 발음과 음정으로 노래 한곡을 뚝딱 불러댄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듣던 여러 노래들이 생각나 기쁜 마음으로 동참한다.

 성격 또한 그렇다. 우리 아이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사교적이다. 이것은 나와는 정반대인 성격으로, 인망이 두터우신 제 친할아버지를 꼭 닮았다. 하지만 이런 바탕 속에서도 이따금 나를 꼭 닮은 성격의 한 부분들이 튀어나오곤 한다. 지나치게 예민하고 때로는 섬세한 내 성격을 닮았는지, 아이 역시 조그만 말 한마디에도 마음에 폭풍이 지나가거나 구름이 드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난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내 아이의 모습에 나의 모습이 겹쳐 보이면서 수십 년간 체화되어 줄곧 잊고 살기 일쑤였던 내 성격을 마주한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어쩌면 나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발견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 익숙해서 때로는 잊고 살았던, 혹은 인정하고 싶지 않아 애써 무시하고 있던 점들도 아이를 통해 다시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별거 아닌 것도 알고 보니 꽤나 장점이었고, 완벽하지 않고 모자란 점들도 많지만 이것도 결국 나의 일부라고. 나라는 존재는 나의 이런 점들을 모두 감싸 안고 살면서 웃기도 했다 울기도 했다 그렇게 사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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