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지 Jul 22. 2020

아기의 첫 감기

 아기가 아팠다. 이런 날이 오리라 예감했건만 막상 뜨겁게 열이 오른 아기를 가슴에 품으니 두려움과 괴로움이 엄습했다. 중병도 아니었다. 계절이 바뀔 때면 으레 찾아왔다 떠나곤 하는 코감기였다. 제법 일찍 찾아온 더위에 하루 종일 돌아가던 에어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후끈 몸을 달아오르게 하는 훈풍이 휘감는 도시에 매일 산책을 나가서일까. 아니, 둘 다 문제였다. 서늘한 집안과 무더운 바깥을 매일같이 참새처럼 종종걸음으로 오간 탓이었으리라. 


 지난 주말은 원래 기쁜 날이었다. 세계를 뒤흔든 전염병 때문에 통 손주를 보지 못하셨던 시부모님이 모처럼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서 날아오셨다. 오랜만에 부모님께 손주를 보여드릴 생각에 아기 아빠도 한껏 들떠 있었다. 나도 시부모님이 아기를 예뻐해 주는 사이 밀린 집안일을 해야겠다며 벼르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부터 아기의 컨디션이 심상치 않았다. ‘에취!’ 재채기를 하더니 코에서 말간 콧물이 나뭇가지에 매달린 도롱이벌레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나왔다. 


 서둘러 집 근처 아동병원으로 향했다. 요즘 맘카페에서 인기 좋다는 원장님의 진료실 앞 모니터에 떠있는 기나긴 대기행렬의 맨 밑에 이름을 올릴 여유가 없었다. ‘다른 선생님이면 뭐 어때, 모두가 전문가일 텐데.’ 하는 마음으로 얼른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원장님께 아기를 보여드렸다. 시원하게 콧물을 빨아들이고, 빨간 시럽 하나와 노란 시럽 하나를 처방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아기는 시럽을 섞은 분유를 조금은 수상쩍은 기색으로 먹었다. 그러고는 뜻밖의 외출이 고단했는지 금세 낮잠에 빠져들었다. 


 낮잠 자는 아기 옆에 누워 나도 쉬는 둥 마는 둥 핸드폰을 들여보다 아기를 들여다보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아기의 볼이 유난히 발갛게 달아오르고 있는 걸 알아차렸다. 체온계로 재어 보니 39도가 넘었다. 열이 나면 해열제를 먹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기에 집에 구비해 둔 해열제를 먹였다. 예방접종 뒤 접종열이 오른 것을 제외하고, 아파서 열이 난 적이 처음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발을 동동 구르게 되었다. 시부모님은 당신들이 오셨을 때 아기가 아프게 되었다며 괜스레 죄스러워하셨다. 그냥 단순한 콧물감기일 뿐인데, 우리 모두는 안절부절못했다. 


 내가 태어났던 1980년대 후반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들끓던 시대였다. 제법 도시화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미래를 노래했지만, 내가 태어난 작은 시골 마을은 그러한 현실과는 살짝 비껴있었다. 지하철은커녕 변변한 도로도 없어 큰 도시로 가려면 구불구불한 길을 몇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달려야 했다. 한여름 그 마을의 작은 보건진료소에서 내가 태어났다. 신생아인 나에게 당장 맞힐 백신이 필요했지만 시골 진료소에 그런 백신은 구비되지 않았다. 보건소에서는 나의 아버지에게 백신을 구해오라고 했다. 이런 시골에는 없으니 당장 이 근처에서 가장 큰 도시인 광주로 가라고.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신혼 생활을 꾸린 우리 아버지에게 차가 있을 리 만무했다. 지금이면 고속도로로 한 시간이면 갈 거리를, 그 당시 아버지는 몇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광주로 향했다. 


 백신을 갖고 돌아온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이 아니었다. 보건소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다. ‘아버지, 이 백신이 아니에요. 잘못 사 오셨어요.’ 절망감 속에서도 달리 방법이 없었던 아버지는 다시 몇 시간을 툴툴 달리는 버스에 앉아 광주에 다녀와야 했다. 그 버스 안에서 젊었던 나의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의 나보다도 더 어렸던 그 청년은 두려웠을까, 화가 났을까, 아니면 미안했을까. 지금의 내게는 맘먹으면 바로 타고 달려 나갈 수 있는 자가용이 있고, 지근거리에 입원실까지 갖춘 커다란 아동병원도 있다. 그럼에도 아기의 열감기에 밤잠 못 이루게 되는 게 부모의 마음임을 이제 알았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주사를 맞히기 위해 버스 안에서 애태웠을 젊은 가장의 어깨를 그려 본다. 백신을 잘못 사 왔다는 사실을 알고 먼 걸음을 다시 내디뎌야 했을 청년의 발에 실린 무게를 가늠해본다. 아, 우리 아버지는 얼마나 무섭고 가슴이 아팠을까. 


 하루 동안 열에 처져있던 아기는 다음날 다행히도 원래 체온을 회복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아낌없는 사랑 속에 아픈 것도 금세 잊은 듯 방긋방긋 웃어댔다. 밤새 체온을 재고 아기를 돌보느라 밤잠을 못 이룬 엄마 아빠는 번갈아 낮잠만 잤다. 그저 코감기에 호들갑을 떨었다며 혼자 머쓱해하다가 생각이 바뀌었다. 원래 부모란 그런 거라고. 작은 것에도 호들갑 떨고 마음을 써가며 아기를 키우는 거라고. 동시에 어떠한 일에도 의연할 수 있는 커다란 마음을 키워나가야 하는 거라고. 그래, 이렇게 엄마가 되어가나 보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아버지와 나의 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