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이 지천에 널렸다?!

해석과 투시와 성찰이 관건

by 라떼파파

요즘은 ‘배움’이란 말이 좋다. 학습 욕구라는 태생적 동기보다, ‘배움’은 ‘성장’으로 치환할 수 있다. ‘성장’은 내가 살아가는 목적과 맞닿는다. 그리고 그 ‘성장’이 멈추면, 내 삶도 동시에 소멸의 길을 걸을 것이다.


요즘은 술자리에서조차 배울 수 있는 것은 없는지, 시간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없는지 고민한다. 계산적일 수 있지만, 허리띠 풀고 긴장을 늦추는 건 젊은 시절 충분히 해봤으면 그만이다. 이제는 그 ‘배움’으로 성장의 탄력성을 키우는 데 관심이 많다.


가령 고리타분한 술자리에, 고만고만한 언어의 질량에, 푸석푸석한 감정의 질감이 공간을 장악하지만, 그 순간에 ‘배움’을 득할 수 있는 상황들을 시뮬레이션한다. 대화에 몰입하다 보면, 순간 번뜩이는 혜안에 그 사람의 진가를 다시 보기도 하고, 음식에 탄복하며 맛의 성찬을 절로 우려내기도 한다. 또한 지인들에게 이전엔 들려주지 못한 이야기를 곁들이며, 설득에 기반한 대화의 기술을 높이는 데 정성을 들이기도 한다.




요즘엔 ‘사람’에게서 얻는 지혜의 총량이 늘어간다. 농축된 말속에서 건져낼 수 있는 ‘언중유골’이 가슴을 뒤흔드는 경우다. 다만, 그 ‘배움’을 발아시킬 수 있는 나만의 준비가 필요하다. 내가 마주한 상황과 적절하게 조합해 타인에게서 얻은 ‘배움’을 써먹는 영리함이다. 따뜻한 사람에게는 언어의 품격을 담고, 똑똑한 사람에게는 숫자의 쓰임을 알고, 겸손한 사람에게는 행동의 동선을 따르는 것이다.


한때 팀장님이셨던, S 부장님은 내게 늘 ‘배움’을 전수했다. 언행일치로 늘 타인을 향해 사는 듯한 느낌. 그러다 보니 피해 보는 일이 많았고, 사람으로부터 상처받는 일들도 흔했다. 그럼에도 단단하다. 쉽게 역정 내지 않고,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 그분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이내 곧 떨어져 나갔다. 지금은 호위무사들만 주위에 남았다. 배려와 존중의 언어가 흘러넘친다. 손수 행동으로 증명하고,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로 일관한다. 크고 작은 배신과 사내정치로 난무한 회사와는 격이 맞지 않아, 팀장 보임에서 해지됐지만 여전히 즐겁고 강건하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분의 인성을 흠모한다. 참으로 고마운 분이다.



소멸을 향해 나아가는 삶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배움’은 나의 가치를 증명할 것이다. 고집과 아집과 트집에 갇혀 있지 않은, 아량과 도량과 혜량을 넓힌 고마운 존재로 함께할 것이다. ‘배움’을 꾸준히 행한다는 것은 여전히 탐구심과 호기심이 많다는 방증이다. 그 ‘배움’이 결국 삶의 행복을 결정하는 나침반이 된다. 사람으로부터 배우고, 책을 통해 배우고, 경험을 토대로 배우는 사유의 재미를 놓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배움’은 나의 가치를 올리는 최고의 방법인 동시에, 타인과 화이부동하는 최적의 포석이다. 다만, ‘배움’을 추동할 수 있는 체력과 지적 호기심이 계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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