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를 상수로 치환하는 능력

연대와 지지가 우리의 마지막 저지선

by 라떼파파

작년 12월 대한민국을 강타한 계엄사태 시도, 탄핵정국의 시작, 역사상 최악의 산불 재난, 춘분에 뜬금없는 눈보라, 글로벌 전쟁의 장기화, 생성형 AI 시대의 일상화…


주위를 둘러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생경하고 이질적인 상황이 펼쳐진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법한 ‘설마’했던 일들이 쉴 새 없이 일상 속으로 몰아친다. 게다가 내 삶의 경계까지 무방비로 밀려올 때면 아찔함과 현기증마저 일렁인다. 어쩌면 삶의 밑바닥부터 새롭게 리셋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깊은 고민에 빠진다.




만연화된 변수가 일상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세상이 만만치 않고, 사람이 만만치 않고, 자연이 만만치 않은 것은 만고의 진리지만, 그 변화의 폭과 깊이가 이전과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있다. 과거에는 그나마 예측할 수 있는 옵션의 가짓수가 제한적이었고, 나름의 식견과 경험을 바탕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숫자로 대변하는 분석의 툴(Tools)은 늘었음에도 그 정확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전혀 예측불가능한 상황을 치닫는 경우가 많다.


과거의 배움이 무용으로 전환되는 역설의 패러다임에서, 이 힘겹고 지난한 세상을 어떻게 견뎌내고 살아가야 하는지가 관건이다. 개별의 삶이 저마다 사연을 품고 미래를 추동한다면, 집단의 삶은 변수를 품고 상숫값을 추동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 시작은 ‘관심’이다. 나와 무관한 삶의 가장자리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중심부를 향해 돌진해 올 잠재적 리스크로 인정하고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컨대, 탄핵정국이 당장 우리 가족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라고 에둘러 말하고 싶지만, 국가의 리더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삶의 결이 확연히 차이 날 수 있다는 점은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0.5도라는 극히 미미한 온도 상승이 전 세계적으로 전대미문의 기후변화를 불러오듯이, 플라스틱과 온실가스를 줄이는 작은 행동부터 발현할 용기가 필요하다.




국가와 사회라는 거시적 변화는 상당히 굼뜨기 마련이다. 하지만 변화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면,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때문에 그 임계점에 다다르기 전에 이러한 상황을 자각하고 성찰하고 실천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요구된다. 더불어 모두 함께한다는 강력한 믿음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다시는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학습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전국에 일어난 이번 산불이 생때같은 목숨을 앗아가고, 삶의 터전을 빼앗으며 봄의 시련을 안겼지만, 십시일반으로 전국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작지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시민들의 ‘연대’가 어쩌면 무너진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희망의 토대가 될지 모른다. 이처럼 삶의 위협과 파괴로부터 마음의 위안을 얻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회복력 역시 사람에게 있다.


이제는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국가와 세계적으로 ‘다양한 변수’를 상숫값으로 대하는 치환의 연금술이 필요한 시대다. 그 상숫값은 비록 평온했던 삶을 위협하는 괴물로 탈바꿈할 수 있지만, 적어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사라지는 일만은 없을 것이다. 변수를 자각하고 상숫값으로 치환하는 사람들의 연대의 힘이 반드시 그러한 위기를 저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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