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자신에 투자하는 삶
저마다 내세우는 '성공 방정식'은 가지각색이다. 사회가 지치지 않고 활기를 띄며 발전하는 이유다. 단 하나의 방정식만 유통된다면, 사회는 결국 다양성이 실종돼 질투와 질시만 가득할 것이다. 성공에 대한 정의가 많을수록 사회는 건강하다는 증거다.
혹자는 돈이 많거나 조직의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 즉 명예와 부(富)를 '성공'이라 칭한다. 대부분이 '쩐'을 통해 원하는 삶을 설계하기에 부는 사실 인생의 필요조건 중 하나다. 요즘 광풍처럼 몰아치는 주식 투자는 이런 우리의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른바 포모 증후군(FOMO. 다른 사람은 모두 누리는 좋은 기회를 놓칠까 봐 걱정되고 불안한 마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때로는 빚투까지 동원해 '묻지 마 투자'를 감행한다. 물론 나도 부를 통해 내 삶이 비루해지지 않고 풍족했으면 하는 바람은 매 한 가지다.
또 누군가는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성공이라고 말한다. 기여는 나를 세상에 기부하는 것이다. 돈일 수도, 재능일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사회가 그래도 퍽퍽하지 않고 살기 괜찮다고 말한다. 세상을 품는 사람들이 곧 기여의 삶을 추동한다. 기부의 삶은 '의미'와 맞닿아 있다. 개인에 한정된 삶이 아니라, 타인과 사회를 향해 열려있는 사고를 감각한다. 감각의 열정이 기부로 이어지고, 그 에너지는 닫힌 세상을 활짝 열게 만드는 기폭제가 된다. 예전의 기여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이름으로 꽤나 세상에 이름을 날리던 사람의 전유물이었다면, 요즘은 SNS 덕분에 누구든지 자신의 재능을 나눌 수 있는 플랫폼이 다양해 기회가 많은 편이다.
나는 평범하지만 가장 어려운 성공 방정식을 고집한다. 가정에 충실하고, 내 시간을 즐기는 삶이다. 가정에 충실하다는 것은 그 밀도가 천차만별이다. 나는 여기에 부사인 '더(More)'를 첨가하고 싶다. 가정에 '더' 충실하고 싶은 인생. 싱겁게 느낄 수도 있지만 아내와 아이에게 천착하며 내가 있는 삶의 지점을 만끽하고 싶다. 아내가 좋아하는 바닐라라떼를 함께 마시고, 아이가 힘들어하는 지점에 슬그머니 다가가 '넛지'(Nudge)할 수 있는 그런 삶. 쉬운 것 같아도, 가장 힘든 일이다.
그리고 내 시간을 즐기는 삶이다. 돈도 중요하지만 '시간 부자'가 되고 싶다. 은퇴 후 남아도는 것이 시간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건 '내 시간'이 아니다. 허무와 쾌락에 이끌린 양적인 시간이 아니라, 내면의 성찰과 성장을 위한 질적인 시간을 매만지고 싶다. 그 감각을 조율하는 책과 글쓰기를 애지중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험과 사색을 토대로 이뤄지는 '책'과 '글쓰기'는 시간 종결자로서, 내 삶과 나란히 할 것이다.
올해로 45살. 삶의 유통기한은 점점 길어지지만, 늙으면 비가 샌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이곳저곳 수선할 곳만 늘어간다. 나이가 들수록 더한 괴로움과 더한 외로움을 벗 삼아 일생을 쫓기듯이 사는 것이 주위에서 목도할 수 있는 흔한 인생사다.
강렬하고 화려한 꽃을 좋아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은은한 향을 머금는 꽃이 좋다. 멋지고 폭발적인 에너지를 사랑했지만, 지금은 고즈넉한 침묵과 고요가 좋다. 주위의 인정과 칭찬에 이끌린 삶을 동경했지만, 지금은 한 발 물러나 나를 찾아 떠나는 삶이 좋다. 그때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이렇게 변했고, 그 자연스러운 변화가 좋다.
내가 원하는 삶이, 훗날 나이가 들어 또 다른 형태의 '성공 방정식'을 풀어놓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가정'과 '나'라는 두 가지 본질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함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