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가 삶의 진정한 시험대
반 백 살까지 딱 5년 남았다. 나이가 들면서 '셈'에 민감해진다. 과거에 합당한 의미를 부여하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래 이만하면 잘 살았지...' 그러다 앞날을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앞으로 뭐 먹고살아야 하나?' 양단의 마음이 잦은 혼선을 일으킨다. 그리고 옆에서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를 보며 씩 웃는다. '아빠는 웃어도 웃는 게 아니란다...'
정년 보장을 책임지거나 전문직의 업에 종사하지 않는 한, 40대 가장들의 고민은 비슷할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흰머리와 주름살 그리고 빠듯해지는 통장 잔고에 한숨만 차곡차곡 쌓인다. 신세 한탄도 한두 번, 푸념과 뒤섞인 자기 원망을 늘어놓다 보면 어찌나 남루하던지. '열심히 살았다'는 존재의 증명은 하등 쓸모가 없어진다. 정작 중요한 것은 오늘과 내일의 삶이기에. 미련으로 포박된 과거부터 벗어던져야 하는 데, 모든 생의 연결이 과거에서 비롯되니 이조차 쉽지 않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50살로 규정해 본다. 하늘의 명을 알았다는 지천명(知天命). 왜 50살이 반환점이냐고 묻는다면, 50대가 삶의 진정한 시험대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경험도 쌓았고, 연륜도 있으니 치기 어린 실수보다 전체를 아우르는 '넓이의 힘'은 커질 터. 그동안 쌓였던 삶의 여러 독소를 빼고, 그곳에 여백을 채울 수 있다.
그럼에도 [눈 떠보니 50]이란 책처럼 달갑지 않은 연민의 정서를 느낄 것이다. 낯선 숫자에 당황하는 시간들. 그럼에도 50대는 인생의 황금기를 구가할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인생의 날것을 마주했던 젊음이 지나가고, 비로소 본연의 '나'와 마주할 수 있는 시간들. 아이는 훌쩍 자라 교감의 신경이 덜할 수 있고, 아내는 아내의 삶을 향해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이에 나는 50에 들어서야 내 삶의 방향을 제대로 읽으며, 무감했던 감각을 그제야 깨울 수 있지 않을까.
어른으로서 진짜 '성장'을 확인하는 시기. 나는 50대를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말라비틀어진 메마른 감성에 다시 꽃을 피우며 진짜 어른으로서 '삶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전성기가 도래했다고 말이다.
내겐 아직 5년이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준비기간이 남았다. 그동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되묻고, 결핍을 채우기 위한 여러 일들을 벌리고자 한다. 그래서 50대에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확실하게 구분해, '본질'을 향한 '내 삶'을 단단하게 다져갈 것이다. 때문에 현재의 습관을 철저하게 규격화하고, 빈틈없이 들어차는 시간 관리가 필요하다. 체력을 다지고 마음 근육을 키우는 일도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모난 관계는 정으로 두드려 뭉툭하게 만들어야 한다.
40대까지 쳇바퀴 돌 듯 영혼 없는 생의 매달림이 많았다면, 적어도 50살부터는 감각이 지배하는 삶을 살 것이다. 울림과 떨림이 가득한 충만한 시공간을 펼치면서 말이다. 적어도 주위에 휘둘리지 않는 자기 주도적인 삶을 강제하며 숙성의 시간을 음미할 것이다. 되려 50이 기다려지는 이 뻔뻔한(?) 느낌은 뭘까. 지천명 너, 게 섰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