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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파파 Aug 05. 2021

아들에게 월드콘을 빼앗겼다

조금씩 예민함을 덜어내는 널 응원하마

"아빠, 집에 올 때 우유랑 월드콘 사와. 다 먹었어."

"그래, 알았어. 아빠 일 마치고 편의점 들렀다 갈게."


평범한 대화 같지만, '아이스크림' '우유'라는 대상에 의미를 두는 이유는 따로 있다. 6살이 되어서야 ‘드디어아이스크림과 우유를 탐하 시작한 . 워낙 예민한 기질이라, 아들은 또래에 비해 ‘조심스러움 유난히 컸다. 6살이 되어서야 조금씩 예민함의 허들을 낮추는 중인데, 부모 마음에선 애간장이 녹아내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18개월까지  발로 걷지 않았을 때는 얼마나 식겁했던지, "때가 되면 걷는다." 위로의 말들이 전혀 위로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대학병원에 부리나케 예약하고 검사를 받은 후에야 조금은 안심이 됐다. "또래에 비해 발이 작고, 예민한 기질 때문에 그런  같아요. 조금 기다리시면 걸을 거예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은     거짓말처럼  발로 걸었다. 얼마나 기쁘고 가슴 벅차던지, 요즘도 누군가 때가 되면 걷는다는 말을 들을 , 나는 말을 아낀다. 겪어보면  말을 입에서   없기 때문이다.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부모 마음이 어떨지 짐작하기에.




늦게 걸음마를 떼면서 대근육과 소근육이 느렸고, 기질마저 아주 예민하다 보니 모든 것이 ‘슬로 모드’. 말이라도 제때 트였다면 고민과 번민의 시간이 줄었을 텐데, 홈티와 언어치료를 병행하며 아이의 발달을 재촉(?)했다. 처음 언어치료 선생 " 맞춤이  되는  같아, 자폐와 정상의 경계에 있는  같아요."라며 혼을  빼놓았다. 그러다 보니 우리 부부는 근심만 곱절로 커져갔다. 다행히 언어치료와 홈티를 병행해서인지  맞춤의 어려움은 벗어났지만, 여전히 또래에 비해 말이 느렸고, 발음은 뭉개졌다.


아파트 어린이집에 다닐 때도 또래에 비해 작은 체격에 말까지 느리다 보니 행여 따돌림을 받는  아닌지, 마음이 너무 아렸고 속상했다. 아내와 주로 하는 이야기 대부분 아들의 발달 부분. 대근육, 소근육 그리고 언어까지. 유치원 전까지 어느 정도 정상 범주에 도달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커져만 갔다.  역시 여러 육아서를 보고, 아이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어떻게 해야 효과적일지 유튜브를 보며 공부했지만, 학습과 현실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러다 5 무렵 조금씩 말문이 트였고, 발음도 조금씩 나아지면서 한시름 놓게 되었다. 코로나로 어린이집마저 보내기 힘든 시기, 아내가 스파르타식으로 이리저리 한글과 알파벳 그리고 숫자공부를 시키며 학습적으로 또래 수준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여전히 예민함이 커서 먹는 거라든지, 잠자리라든지 힘겨운 점이 많았다. 예를 들자면 안방 벽걸이 에어컨을 무서워해 한여름 찜통 속에서 선풍기로 견뎌야 했다. 아이는 아이대로 땀띠가 올라오는 악순환. 아무리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도 에어컨이 무섭다고 했다. 원활한 소통이 안되다 보니 ‘라는 질문 앞에 막힐 때가 많았다. 그리고  말고는 전혀 마시는 액상이 없었다. 아이스크림은 아예 쳐다도  봤다. 엄마가 밤중에 조금만 뒤척거려도 잠에서 깨고, 눈물이 잦아 사모곡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올해 6살부터 유치원에 가면서, 이런 예민함이 조금씩 뭉툭해지기 시작했다.  무딤의 시그널이 엄마와 아빠에게는 또 얼마나 기적같은 일인지 모른다. 말하는 단어도 조금씩 늘면서 가끔 이런 말까지 하나 싶어 놀라기도 한다. 며칠  6 영유아 검진에서 또래에 비해 키가 월등히 작아 의사 선생님이 하루에 한잔씩 우유를 마셔야 한다고 아들과 약속했단다. 그날 이후 거짓말처럼  악물고 우유를 마신다. 마치 비장한 결전을 앞둔 장수처럼 매일   비워내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그리고 올여름 가끔 엄마와 아빠가 먹는 아이스크림을 맛만 보더니, 지금은 월드콘을  오라고 독촉한다. 차가운 물이 싫어 미지근한 물만 마시는 아이에게는 혁명과도 같은 일이다.




아이 발달이 늦어 마음이 숯덩이가  부모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 부부 역시 그런 지난한 시간을 겪으며 울고 웃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소통의 한계에서 비롯되는 우울함이 밀려들 때도 많았고, 기질의 예민함에서 오는 상황 대처에도 난감했다. 여느 아이와 마찬가지로 ‘평균에만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기도 많이 빌었다. 특히 노력에 반해 발달의 속도가 느껴지지 않을  찾아오는 무력감은 깊고 컸다.    


"아빠, 월드콘이랑 딸기 아이스크림 맛있어요. 또 사주세요."

"그래, 대신 이는 깨끗이 닦아야 한다.  그럼 과에 가야 한단다. 알지?"

“그럼요..."

 

 밖에 입에 대지 않았던 아이가 우유와 아이스크림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표현이 서툴고 느리지만, 조금씩 알을 깨고 세상과 마주하는 아이가 대견하다. 나는  옆에서 응원하고 박수치고 손을 잡을 것이다. 든든한 보증수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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