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들숨 날숨에 반하다
'참 따뜻하다. 가족이 맺어준 체온이 이런 느낌일까.'
유치원에서 하원한 아들이 엄마를 졸라 자전거를 타겠다고 했단다. 6살 아들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무조건 방산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에 아내는 아이가 원하는 대로 밖에 데리고 나갔다. 때마침 퇴근한 나는 아내와 아이를 찾아 집을 나섰다.
아파트 정문을 벗어나려는 찰나, 아내에게 급하게 전화가 왔다.
"율이 똥 누고 싶은가 봐. 집까지 못 갈 것 같아. 쌀 것 같아. 공원 화장실에서 볼 일 보게 할 테니, 물티슈 좀 챙겨서 와. 빨리~"
"그래 알았어. 바로 갈게." 다시 집으로 돌아가 물티슈를 챙긴 나는 공원을 향해 힘껏 뛰기 시작했다. 어둑어둑한 하늘엔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무사히 볼 일을 마치고 의기양양하게 나오는 아들. 바깥에서 첫 똥을 싼 기념일까. 배시시 웃는 아이와 손을 잡고 우리는 빵집으로 향했다. 요즘 아침마다 우유 식빵에 딸기잼을 발라먹는 재미에 꽂힌 아들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반찬가게에 들렀는데, 아들이 갑자기 내 등에 업히고 싶단다.
"아빠 너무 피곤해요. 업어 주세요."
"응? 많이 힘들어? 그래, 알았어. 업혀~"
엉거주춤한 자세로 무릎을 구부려 아들에게 등을 내어주었다. 아들은 힘차게 점프하며 나의 등에 안착했다. 아들의 가슴과 내 등이 맞닿았다. 양팔을 목에 휘감으며 떨어질 수 없다는 듯 깍지를 했다. 한 걸음, 두 걸음 보폭을 늘릴 때마다 아들의 들숨과 날숨이 오르내렸다. 아들의 숨결이 나의 폐부를 파고들었다. 그러다 까무룩 잠이 들었는지, 아들의 오른쪽 뺨이 내 오른쪽 어깨에 와닿았다.
궂은 날씨에 10여 분을 걸어 집까지 오는데, 쌔근쌔근 잠든 아이를 업고 가는 길이 마치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떠올랐다.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더군요." 갈림의 연속에서 선택의 순간과 마주할 때, 아빠인 내가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동시에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쳤다. 이전에도 가끔 '어부바'를 했는데, 이날은 유난히 다르게 느껴졌다.
아들의 가지런한 호흡에 장단을 맞추며 나의 발걸음도 리듬을 탔다.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음을 재촉했다. 행여 자다가 놀라까 봐 아들의 엉덩이를 단단하게 감쌌다. '아들! 힘들면 아빠 등에 언제라도 기대도 돼. 언제나 엄마와 아빠가 있으니, 세상 걱정은 노 프라블럼!'
최근 20kg 가까이 몸무게가 는 아들의 중량감이 좋았다. 옆에서 조용히 우산을 받쳐 든 아내 얼굴도 평온함이 묻어났다. 어느새 집 앞 엘리베이터에서 아이를 깨웠다. 행복한 피기배기였다.
"아들, 집에 다 왔어. 이제 일어나. 어쩜 그리 잘 자니?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