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떼파파 Sep 06. 2021

아내에게 보내는 손편지

8년째 전하는 마음 꾸러미들

자랑부터 하겠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이건 좀 대견하다 싶습니다. 제목에서 눈치챘겠지만, 바로 아내에게 보내는 손편지입니다. 일 년에 딱 한 번, 저는 생일에 아내에게 손편지를 건넵니다. 편지지 3~4장 정도 악필로 뒤덮인 연서입니다. 결혼 햇수로 8년 차에 접어들었으니, 지금까지 일곱 번을 손에 쥐어준 셈이네요. 물론 이런 작은 이벤트가 아니라도, 아내에게 잘하는 남편 분들이 많겠지만 제게 손편지는 내심 뿌듯한 사랑의 흔적입니다. 결혼 후 저는 아내에게 손편지만큼은 일 년에 꼭 한 번이라도 주자고 다짐했어요. 그걸 빠뜨리지 않고 이제껏 실천해오는 셈이지요.


담긴 내용은 여느 가정과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추상어로 가득한 말랑말랑한 어휘가 주를 이뤘다면, 그 이후엔 본격적인 실전 생활 용어가 등장합니다. 육아 돌입 전에는 사랑과 행복이 테마였다면, 양육과 훈육이 그 자리를 대체한 셈이죠. 우선 내용을 컴퓨터로 작성하고 프린터에 출력한 후, 다시 편지지에 받아쓰는 셈이라 수고는 좀 들어요. 그래도 내용이 실타래처럼 꼬여 편지지를 구기는 일만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출근하기 전 식탁에 슬그머니 올려놓았는데, 이번에도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집에 돌아오면 직접적인 피드백은 없어도, 표정과 행동만 보더라도 그 느낌을 알 수 있죠. 웃음의 빈도수가 증가하고, 반찬의 가짓수가 곱절로 늘어난 것만으로도요. 신기한 것은 싸움은 그야말로 칼로 물 베기가 되고, 짜증과 불만은 난데없이 사그라듭니다. 말로 다 전하지 못한 텍스트가 마음을 건드린 셈이죠. 이럴 때 보면 글이 가진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껴요.    

 

때문에 '행복'은 거창한 무언가를 좇기보다, 작은 다짐을 실천하고 소중한 사람의 반응이 전해질 때 찌릿찌릿 전율이 일어나요. 그런 작은 행복의 순간들이 쌓이고 감응의 밀도가 높아지다보면, 우리의 인생사 역시 순도 높은 행복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닐까요. 소확행의 가치도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겠지요. 파랑새는 가까이 있다는 진실을 깨닫게 될 지도요.     




올해도 아내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음 주인데 편지지부터 장만했어요. 여섯 살 된 아들이 올해 유치원에 들어갔고, 드디어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으며, 멀리했던 우유를 마시기 시작했다는 혁신적(?)인 가족사가 실릴 것 같아요. 훈육을 통해 한 뼘씩 자라는 아들의 일상이 편지의 주된 내용이 될 것 같아요. 2년 가까이 코로나19로 갇힌 공간의 답답함을 호소하며, 여행의 복원을 바라는 희망도 말하고 싶습니다. 말미에는 남편으로서 가장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뭐 다소 진부한 내용들도 여백을 메울 것 같아요.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는 분명 결혼생활을 돌아보게 하고, 아들의 훈육 방향을 설계하는 좋은 툴(Tool)이 되는 것 같아요. 감성 무드에서 실전 생활로 급격히 트랜스포밍하는 어휘의 표변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부부 사이 제일 무서운 것은 '무관심'인 것 같아요. 일시적인 흥분과 감정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경우도 제법 본 것 같습니다. 날카로운 말이 비수가 되어 신뢰와 사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일 년에 꼭 한 번이라도 진심을 담은 손편지를 배우자에게 건넨다면, 이런 불안 지대의 완충 역할을 꼭 하리라 확신합니다.      


3년째 매일 아침 시 필사를 하는데, 글씨는 괴발개발 영 시원찮습니다. 그래도 믿어요. 올해 편지에도 아내는 꼭 감응하리는 것을요. 반찬 가짓수를 세어보면 알겠지요.^^  혹시 아나요. 팽그르르 도는 눈시울을 보여줄지도요. 거기에 하필 아내와 생일이 같은 제가 천방지축 나대지는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자기야, 내 건 뭐 없나?"라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