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매긴 일잘러의 조건

일 센스와 숫자 그리고 배움의 자세와 통찰력

by 라떼파파

일잘러의 특징은 공통 의견으로 압축된다. '뭔가 달라도 다르다?!', ‘접근 방식이 신박하고, 디테일이 너무 뛰어나다!’


우선 센스가 뛰어나다. 달리 말하면 '눈치'가 좋다. 개떡같이 말해도 쑥떡같이 알아듣고 찰떡같은 결과물을 내놓는다. 여기에 인성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 하지만 현실은 이런 부하나 상사를 만나기란 하늘에 별따기라는 점. 그만큼 수요는 많아도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다만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한다. 시간이 누적될수록 정보가 모이고 사람이 모이고 권위가 모인다.


두 번째는 숫자로 표현한다. 정성적인 아웃풋보다 무엇이든 정량으로 수치화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보고 받는 입장에서 문제 파악이 용이하고, 목표 지점이 어디 있는지 알기 쉽다. 일을 하다 보면 숫자는 뭉개고 무엇이든 정성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같이 핑계는 도저히 정량적으로 표기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무엇인들 노력하면 정량적인 표현은 만들어낼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설득력을 가지느냐 마느냐 차이일 뿐이다. 숫자가 전부는 아니지만, 능력을 입증하는 중요한 부분임은 확실하다.


다음은 배우는 사람이다. 겸손하다. 빈 수레의 가벼움을 못 견뎌한다. 배움을 지속함으로써 스스로 부족함을 알고, 그 결핍을 알기에 겸손하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동기부여가 절로 된다. 배움의 끝판왕답게 호기심도 왕성하다. 문해력이 좋다 보니 타인의 메타포를 알아듣는 재주가 기가 막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센스는 여기에서 발로 된다. 타인이나 사물의 센서를 잘 포착해 업무 센스로 진화시키는 것이다. 배움을 쉼 없이 탐하는 이들은 궤도에서 탈선할 가능성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회사는 이런 인재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방치해선 안 된다.


마지막은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보는 통찰력과 안목이 있는 사람이다. 그만큼 일을 총론과 각론으로 구분해 어느 일방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넓이와 깊이를 동시에 아우르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큰 그림을 보되 작은 흠집마저 살펴볼 수 있는 예리한 감각이 살아있다. 물론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이들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일잘러를 보면 부럽다. 혜안을 가지고 디테일을 접목시키는 사람, 센스를 갖추고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 배움을 좇으며 스스로를 낮출 줄 아는 사람, 물질보다 지적 허영을 추구하며 꿈을 가슴에 품는 사람. 그렇게 나도 그들의 삶을 모방한다 여기지만, 속절없이 무너지는 지점이 많다. 구멍이 숭숭 생긴 스스로를 돌아보면 때론 부끄럽고 참담함마저 든다.


물론 일잘러는 타인의 평가라는 스펙트럼 속에 비친 허상일 수 있다. 그 평가가 정작 본인 생각과는 결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런 부류의 사람을 만나면 신기하고, 그들의 머릿속과 가슴속이 궁금해진다.


조금 있으면 지천명이 다가오는 나이다. 이제 ‘퇴직’이란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순간이 시시각각 입박해올 것이다. 일잘러까지는 아니라도 위에서 언급한 내 마음대로 정한 기준의 언저리 정도는 맴돌아야 하지 않을까. 낮음을 추구하고 배움을 동경하는 삶. 낭중지추보다 둥글게 살아가는 삶. 그리고 소중한 가치를 지키는 소박한 삶. 일잘러에서 벗어난 B급이라도, 이런 태도로 일관한다면 실수와 실패를 줄이며, 조금씩 관대하고 센스 있게 세상과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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