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도 식후경이 필요해

손목과 가슴뼈 부상이 남긴 깨달음

by 라떼파파

테니스는 재미만 붙이면 그 흥의 가속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처음엔 레슨을 통해 포핸드, 백핸드 샷으로 지루한 기술습득이 시작되지만, 어느덧 발리와 서브까지 야금야금 점령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게임으로 넘어간다. 대부분 복식으로 경기가 진행되는데, 그 룰까지 익히면 여기저기서 아드레날린이 폭발한다. ‘진즉에 이 재미를 알았더라면…’하는 아쉬움도 잠깐, 이제는 경기 욕심에 더해 장비까지 업그레이드하느라 재정적인 걱정까지 덤으로 찾아온다.


축구는 어릴 적 즐긴 사람이라면 나이가 들어도 연어가 고향을 찾는 본능처럼 기웃거리게 되어 있다. 사이드라인을 따라 스프린트하는 그 황홀함에 40대 몸은 청춘으로 도배된다. 가파른 숨을 사자후처럼 토해내고, 공과 하나가 되었다는 부심으로 욕심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다. 대학교 시절 사회대학교 축구 동아리 회장까지 역임했던 나로선, 축구는 그야말로 잊을 수 없는 존재와도 같다.



하지만…


욕심이 앞서다 그만 탈이 나는 경우의 수를 계산에 두지 않았다. 바로 인저리(Injury), 부상이다. 왼쪽 손목(왼손잡이)은 새로 바꾼 라켓 무게와 텐션(줄 강도) 조정에 실패해 너덜너덜해졌고, 축구는 상대방 20대 초반의 혈기에 덤벼들다 팔꿈치로 가슴을 정통으로 가격 당했다. 이 모두가 석 달이 흐른 시점이지만, 몸의

회복세는 참으로 더디고 아프다. 과유불급이라지만, 억울함도 있다. 모처럼 만개하는 몸의 활력을 만끽하던 찰나였는데, 그 모먼트가 어찌나 짧은지 측은함마저 들었다.


혹자는 나이를 생각해 적당히 즐기면 되지 않느냐고 훈수가 날아오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체력이 정점(?)을 향해 내달릴 때, 스스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어찌나 깐죽거렸는지 모른다. 자기 합리화의 두터운 방어기제를 바탕으로 가용할 수 있는 체력을 한계치로 밀어 올렸다. 그러다 결국 이 사달이 났지만 말이다.


공교롭게도 아내는 이런 부상을 모른다. 다른 핑계를 대고 정형외과를 찾아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 진료를 받으면서도, 미안함도 있지만 자칫 운동 금지령이 선포되지 않을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중이다. 아무래도 자체 테니스 클럽 월례회에서 복식 우승을 차지한 후 눈높이가 커져 버린 것이 화근이었고, 최고 연장자 축에 들면서도 체력적으로 탑 5안에 든다며 칭찬하던 축구 코치의 말이 두 번째 화근인 셈이었다.




운동으로 인한 삶의 선순환을 A부터 Z까지 나열하기 전에, 몸의 신체가 노화의 중력을 얼마든지 거스를 수 있다는 작은 확신을 심어준 것이 테니스와 축구다. 젊은이들과 어울려 엇비슷한 레벨로 자웅을 뽐내는 것도 이들 운동의 매력이다.


물론 늘어나는 주름살을 헤아리며 중력의 흐름을 좇겠지만, 몸으로 발산하는 재미는 그 어느 것과 견줘도 강렬하면서도 유혹적이다. 내겐 달리기와 테니스 그리고 축구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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