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반응에서 시사점을 얻다.
지금까지 기억에 아마 다섯 번 정도 다른 사람들에게 꿈 저널링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같다.
3월에 직장 동료에게 그리고 자아 성찰 질문 답변 모임에서,
5월 영어 토론 모임에서,
7월에 드로잉 학원 강사에게 그리고 업무 파트너들과의 커피 타임에서.
대부분은 꿈 저널링에 대하여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았다.
'꿈 저널링'이라는 단어의 뜻을 이해 못 했던 것도 있겠지만,
그것은 내가 바로 설명을 해주었기 때문에 어렴풋이 알게는 되었을 것이다.
그것보다 굳이, 왜, 무엇하러 꿈을 글로 쓰는지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물론 사람들은 그런 반응을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던 것 아닌가 싶다.
다만 그들의 얼굴 표정과 눈빛, 태도, 그 자리에서 형성되는 분위기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 사람 제정신인가? 꿈을 글로 쓴다고? 꿈을 글로 써서 뭐 하게? 살짝 미친 거 아니야?
듣다 듣다가 별 희한한 소리 다 듣겠네? 꿈은 다 X꿈이지 그게 무슨 쓸모가 있지?
말로 전혀, 한 마디도 표현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의 머릿속 생각이 마치 허공에 선명한 자막이 흐르듯 매우 잘 읽혔다.
소수의 몇 사람은 진지하게 관심을 표명해 주었다.
자아 성찰 모임에서 만난 한 분은 여러 가지 질문을 내게 주었다.
정말 꿈이 또렷이 기억이 나는지?
주로 어떤 내용의 꿈을 꾸는지?
마치 시리즈처럼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꿈이 있는지?
나의 시점으로 꿈을 꾸는지 혹은 전지적 시점에서 꿈을 꾸는지?
그 질문들은 나로 하여금 나의 꿈에 대하여 성찰해보게 해 주었다.
드로잉 학원 강사는 매우 긍정적인 의견을 주었다.
본인은 잠에서 깨면 바로 꿈을 잊어버려서 기억이 안 난다.
그래서 꿈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분들이 부럽다.
만약 꿈이 기억이 난다면 그 내용을 그림으로 풍성하게 표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창작하는 사람들에게는 꿈은 창작의 원천일 수도 있겠다.
어떻게든 글을 써야 하는 입장이라면, 꿈을 많이 꾼다는 것은 장애가 아니라 되려 축복일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