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자욱한 밤이었다.
어쩌면 낮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방이 어두컴컴했으니까. 아니다. 가만히 기억을 떠올려보니 바로 눈앞까지 빽빽하게 숨을 조이던 안개가 서서히 사라지면서 살짝 황금빛 광채가 빛났으니까 새벽 아침이었던 것 같다.
비탈길이었다. 오솔길이면서 비탈이 진 길이어서 몇 번이나 미끄러질 뻔했다. 축축하게 젖은 낙엽들로 미끄러웠다. 나는 어떤 목표를 향해 조심스럽게 하지만 꿋꿋하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아마도 이 산의 정상을 올라가던 길이었을 것이다. 공기는 깨끗했지만 차가웠다. 얼굴에 이슬이 맺히는 것 같았다. 산 꼭대기가 나오기에는 아직 한참 남은 것 같았고, 이 비탈길의 막다른 지점에 이르렀을 때 안개가 걷히면서 사람키만 한 돌덩이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비석이었다. 요 근래에 조성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약간 비스듬히 땅에 묻힌 모양새와 무엇엔가에 파이고 깎이고 훼손된 흔적이 꽤 오래전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어두운 진회색 화강암이었던 것 같다. 누구의 비석인지 알 수 없었다. 비석에 한자로 가지런하게 쓰인 비문(碑文)을 읽으려고 시도했다. 긴 세월 비바람에 씻기고 파였던 것일까. 문자의 형태가 선명하지는 않았다. 더구나 한자어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아 해독이 쉽지 않았다. 선뜻 산 정상으로 가는 비탈길로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끙끙대며 비석에 새겨진 한 글자라도 읽어보려 했다.
꿈에서 깨어났다. 비석의 주인은 오래전 조상님 중의 한 분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략 지금으로부터 약 1천 년 전에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큰 공을 세우셨던 그분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조상님에 대한 존경 어린 그리고 경건한 마음에 바로 뒤이어 최근에 읽었던 연금복권 당첨자들의 당첨 수기가 생각났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조상님 꿈을 꾸고 1등 당첨되었다는 고백들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그날 점심식사 후에 산책 겸 가까운 복권판매소를 찾았다. 내가 찾은 곳은 몇 년 전에 1등 당첨자가 나왔다고 플래카드가 걸려있는 곳이었다. 아무래도 당첨자가 나온 판매소에서 다시 당첨될 가능성이 높지 않겠는가.
연금 복권을 구입하러 가는 길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 무엇보다 당첨이 되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먼저였다. 매월 일정액으로 받는 방식이니까 일시불로 한꺼번에 큰 뭉치 금액을 받는 것보다 좀 더 안정적이고 계획적으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수령액의 최소 절반 정도는 다시 저축이나 투자로 돌려놔야겠다. 나머지 절반으로는 무엇을 하지? 일단 직장에 사직서를 내지는 않을 것이다. 연금복권 당첨 사실을 굳이 알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할 것이다. 흔히 로또 맞으면 당장 직장일 그만두겠다고 확언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직장일이 지옥에서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인 경우가 아니라면 내가 보기엔 그렇게 갑자기 회사일을 그만두는 것은 실생활에 썩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난 좀 규칙적이고 구조화된 리듬의 생활이 필요하다. 생활을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기에 규칙적인 출퇴근으로 짜인 직장 생활은 일단 유지한다. 그리고 여분의 연금으로 내 생활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봐야겠다. 그러면 직장에서 내외부적으로 어떤 스트레스가 발생해도 좀 더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일정액은 기부도 해야 할 것 같다.
즐거우면서도 다소 복잡한 미래 계획을 세우면서 드디어 복권 판매점에 도착했다.
결과는? 5천 원에 당첨되었다. 5천만 원을 잘못 타이핑한 것이 아니다. 5천 원이 맞다.
잠깐 갈등했지만 당첨된 5천 원은 다시 복권 구입에 쓰지는 않았고, 현금으로 바꾸었다. 5천 원 당첨으로 그 직전까지 열기구처럼 부풀어 올랐던 미래 계획은 김이 쏙 빠지면서 손바닥의 풍선 조가리처럼 쪼그라들었다.
의구심이 올라왔다. 안갯속을 헤매다가 마주친 비석. 비석에 새겨진 어떤 문자들. 꿈의 분위기나 장면은 매우 선명했다. 비록 안개 속이었지만 안개가 서서히 걷히면서 화강암 비석이 우뚝 솟아 보였다. 손으로 만지면 화강암의 다듬어진 단단한 질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명, 명확한 메시지가 있는 꿈인 것 같았다. 다만, 꿈에서 깨자마자 부리나케 복권판매점으로 달려가서 복권을 사는 행위는 그 꿈이 내게 암시한 메시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곰곰이 반추해 보니, 비석의 주인공은 매우 오래전, 지금으로부터 약 9백여 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조상님 중 한 분인 것 같았다. 나의 직계 혈족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분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대군을 이끌고 침략해 온 적군에 맞서서 국가의 전군(全軍) 총사령관이 되었던 분. 흐르는 강물의 물을 막고 터트려 적군을 혼란에 빠트리고 이어지는 전투에서 십만여 명의 적군을 물리친 이야기가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오래된 전승(戰勝) 이야기에서 내가 새롭게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이 있을까 싶었다.
꿈에서 본 비석에 무엇인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 글자가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시 되풀이해서 그분의 생애 이야기를 반복해서 읽어 보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분의 태어난 연도와 세상을 떠난 연도가 눈에 확 들어왔다. 전쟁터에 임했을 당시의 나이를 계산해 보았다. 현재까지 알려진 탄생과 임종 연도가 맞다면 전군(全軍) 총사령관이었을 때, 연세는 대략 60세가 넘어야 한다. 당시 일반 사람들 평균 나이는 40대도 넘기기 힘들었다고 한다. 아무리 장수(長壽)를 했다고 해도, 60세에 전쟁터의 총사령관이 되어서 출정(出征)을 한다는 것이 쉽게 상상하기 힘들다. 9백여 년 전의 60세라면 지금으로 치면 거의 90세에 가까운 나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다른 것 보다 이 점, 내게 깊은 시사점을 주었다.
조상님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천년 전에 60세의 연세로 전쟁터를 누볐다는 점이 나를 전율하게 했다. 나이가 들었다고, 또는 나이가 들어간다고 손 놓고 정신줄 놓고 뒷방 어르신으로 엎어져있을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조상님은 그 시점과 상황에 딱 맞아떨어지게 필요한 사람이었기에 당시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던 것이다. 언제나 현장감 있게 임하라는 뜻으로 들렸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그 상황에 필요한 사람인가가 중요하다.
꿈은 역시 해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