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졌다.
말 그대로 비가 억수로 내렸다.
밤새 빗소리로 귀가 아파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였다.
새벽까지 그랬다.
겨우 간신히 아침이 밝았고
햇살은 짱--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약간 늦게 일어났다.
허겁지겁 출근 준비를 마치고, 부리나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빠른 걸음으로 건널목까지 다다랐는데, 그만 신호가 빨간색으로 바뀌어 멈춰 섰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땅은 젖어있었다.
도로 곳곳에 물웅덩이가 있었고, 엄벙덤벙 걷다가 그 바람에 신발과 바지 아랫단이 흠뻑 젖어버렸다.
찝찝했지만 어쩌겠는가. 빨리 사무실 가서 닦고 신발은 벗어 놔야겠다.
신호는 그린 라이트로 바뀌었다.
성큼 걸어갔다.
횡단보도를 건너자, 보도블록이 나왔다.
보도블록도 흥건히 젖어있었다.
땅바닥을 보지 않고, 저 멀리 보이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는 광역행 버스 정류장을 향해 힘차게 걸어갔다.
사람들의 줄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그것이 나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나는 보폭을 좀 더 넓게 가져갔다.
그런데 그 순간 시야에 발 밑의 물웅덩이가 보였다.
이상하게도 아주 크게, 마치 갑자기 카메라 줌-인으로 쑤욱 확대하듯 눈에 가득 찼다.
마치 저수지나 호수 같은 이미지를 연상케 했다.
그 호수를 피하려고, 아니 물웅덩이를 피하려고 발을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 땅을 밟으려고 했는데.
바닥에서 무엇인가 꿈틀 했다.
나의 발은 아직 허공에 있었다.
꿈틀 한 그것은 윤기 나는 붉은 갈색이었고, 형태는 길고 가늘며 굵은 실을 말아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그것은 지렁이였다.
동공 가득, 그의 몸뚱이가 들어왔다.
그는 심하게 몸을 요동치며 살고 싶다는, 존재하고 싶다는 의사를 온몸으로 표시하고 있었다.
이제 곧 나의 신발 바닥이 그를 짓이기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의 동체를 산산조각 내버릴 뻔한 그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