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영어를 시작하다.

10대 시절에 무엇을 제일 좋아했더라?

by 지훈

중고등학교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 보았다. 그때는 무엇을 좋아했었는지. 중학교 1학년 때, 만화 그리기를 그만둔 다음에는 딱히 열정적으로 무엇을 한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만화 그리기 이외의 다른 예술 방면으로도 딱히 특출한 것 없었던 것 같다. 그때는 시간이 있을 때, 책을 많이 읽었던 것 같다. 주로 국내외 유명 문학작품들이었다. 이해가 되는 것도 있고,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있었지만 고전이고 명작이라고 하니까 탐독했던 것 같다.




책 읽기 이외에 흥미를 가졌던 것은 외국어였다. 영어와 독일어를 배웠는데, 이상하게 재미있었다. 당연히 시험 보는 것은 싫어했지만 그래도 시험을 보면 비교적 다른 아이들에 비해 결과는 잘 나오는 편이었다. 이후에 대학을 가기 위한 시험으로서의 영어, 취업에 성공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영어를 학습하다 보니 지겨워졌고 흥미를 잃었다. 그래서 회사 입사 이후에 특별히 영어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2020년도인가 그즈음에 생각이 바뀌었다. 세상이 변화하는 것이 눈에 보였고, 내 짧은 소견으로는 다가올 세상에는 영어 구사력이 지금보다 더 중요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 대다수 주변 사람은 앞으로 실시간으로 나의 말을 영어로 통번역해 주는 기술이 점점 빠르게 발전되고 더 성능 좋은 기계가 나올 것이니 굳이 아등바등 영어 실력 향상에 시간과 노력을 투입할 필요가 없다는 조언을 많이 해주었다. 일견 수긍이 갔지만 반드시 그렇지도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단순 여행 목적이라면 모르겠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대화와 의사소통, 프레젠테이션을 위해서는 영어 구사력을 고양시킬 필요가 있어 보였다.


최근에는 세대가 확 달라지면서 영어를 학습하는 방법도 현저히 달라진 것 같았다. 과거에는 책을 보거나 학원에 가서 영어를 익혔다면 이제는 화상을 통해 지구 저 편에 있는 원어민과 직접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이다. 더구나 인공지능을 활용한 학습이 추가되더니 점점 말하기가 더 중요해지는 것 같다. 앞으로 일정 정도 시간이 지나면 꼭 해외에서 유학하거나 이주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영어를 일상에서 우리말만큼이나 빈번하게 사용되는 시기가 오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뭐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외국으로 출장이든 여행이든 또는 취미로든 영어 구사력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만들어 놓아서 손해 볼 이유는 없어 보였다. 2020년 봄부터 영어 학습을 다시 시작했다. 재부팅이라고나 해야 할까. 팬데믹 상황에서 화상 회의를 통해 다른 나라에 있는 사람들과 영어로 소통할 기회가 오히려 더 많아지고 있었다. 영어 학습도 자연스럽게 스크린을 통한 온라인 화상 면대면 대화가 일반화되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외국에 가서 연수, 유학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머리, 피부, 눈동자 색깔이 다른 사람들과 마주하는 일은 늘 긴장되었다. 더구나 나는 텍스트 위주의 학습에 아주, 매우 익숙한 세대다. 실시간으로 듣고 말하는 방식 더구나 온라인을 이용한 경험은 처음엔 정말 생소했다.




하지만, 거꾸로 이것은 나와 같은 사람에게 매우, 아주,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라인의 발달로 유튜브와 실시간 대화 등 다양한 영어 학습이 가능해졌다. 우선 영미권 유튜버들의 기본적인 영어 표현, 비즈니스 영어 표현을 설명하는 채널부터 보기 시작했다. 국내 채널 중 영화에 나오는 대사 표현, 비즈니스 상황 표현, 섀도윙 등 찾아보면 부지기수로 많다. 그리고 온라인 영어 클래스 수업을 시작했다. 주로 미국이나 호주, 캐나다 거주 대학생, 대학원생들과의 영어 대화 수업이었는데, 내가 그동안 텍스트나 시험문제로만 익혀왔던 영어와는 완전히 달랐다. 리얼 잉글리시라고 해야 할까. 첫 수업에서 현지인들이 쓰는 영어는 이런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그들이 하는 말의 상당 부분을 알아듣지 못했다.




매일 일정 시간 이상 나의 귀를 영어에 노출시켜야겠다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유튜브의 자기 계발, 자기 발전, 성공하는 사람들의 습관, 좋은 운은 어떻게 만드는가 등에 관한 영어권 유튜버의 비디오를 들었다. 보지 않고 들었다. 처음에는 시청했는데 이른 아침에 유튜브 시청은 눈을 따갑게 만들고 쉽게 피로해졌다. 그 이후로는 듣기만 하는 것으로 패턴을 바꾸었다. 퇴근 후와 주말 시간도 최대한 활용했다. 영어권 강사들과의 온라인 강의 일주일 최소 2회, 한국인들과 최소 1일 1시간씩 영어로 대화라는 온라인 모임 참여. 주중 및 주말 모임까지 참여. 영어 관련 질문과 정보를 교류하는 온라인 모임 참여, 매주 및 매일 미션 도전하는 영어 온라인 앱 모임 참가 등. 일주일 7일의 7일을 온통 영어로 채웠다.




애당초 계획은 영어 능력 향상뿐 아니라, 이러한 영어 챌린지를 통해 매주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성찰하여 글을 쓰는 것이었다. 블로그를 하나 만들어서, 영어 학습을 통해 경험하는 시행착오와 이번 주에 새로 익힌 영어 표현, 튜터와 영어 중독자들로부터 얻은 통찰의 말 공유, 나의 단계별 영어 능력 향상 일지 나눔 등의 활동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영어 실력이라는 것이 무한정 시간을 쏟아붓는다고 단계적으로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기하급수적으로 뛰어올라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영어가 목표가 될 수는 없다는 것. 내가 누군가의 영어 강사가 되거나 영어 교재를 펴내거나, 영어 유튜버가 된다면 혹시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는 영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라는 점이다. 매우 당연한 이야기인데, 영어를 목표로 삼기보다 다른 나의 목표를 마련하고 도달하는 것에 있어 도움이 될만한 하나의 도구인 것이었다.




원래는 영어 능력을 발전시키면서 나의 실력이 변화하는 과정을 블로그에 차근차근 올리고 공유하려고 했었다. 대략 그런 계획이었다. 수년간의 노력으로 초기 시작 시점 대비하여 일정 정도 영어 능력이 발전한 것 같기는 한데, 블로그에 올려서 공유할만한 내용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스러웠다. 영어 학습에 시간과 비용을 적극 투입하면서 그 과정의 이야기를 정돈하여 블로그에 올려 보기도 했는데, 어느 시점에서 중단했다. 의미 있는 활동이었으나 딱히 반복되는 내용을 또 올리기도 민망했다. 그리고 찾아보니 영어 학습 블로그 올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 많고, 상당수가 준전문가 수준이었다. 내가 그들 보다 또는 그들 만큼 숙성된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이야기를 더 붙일 수 있을까도 싶었다. 사실 그런 이유보다는 영어 능력이 내가 기대한 것만큼 향상되지 않으니 달리 꾸준한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것이 잡히지 않았다.





되려 최근에 우연히 읽은 책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태어나서 영어는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었고 심지어 공부보다는 길거리 싸움에만 능통했던 탈북 10대 청소년이 이곳 환경에 좌충우돌 적응하면서, 처음에는 영어 무식자로 또래들한테 집단 놀림을 받고 영포자가 되었다가, 점차 영어에 눈을 뜨고 악착같은 근성으로 공부하여, 호주로 영어 연수를 다녀오고 마침내는 유엔 회의에서 본인의 탈북 경험에 대해 영어로 연설까지 하고는 지금은 해외 대학에서 학위 과정을 밟고 있는 이야기를 접했다. 이것은 실화인데 한 개인의 영어 발전사를 쓰려면 이 정도 드라마틱한 설정이 아니고서는 읽는 이의 감동과 흥분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겠다 싶었다. 비교해서 왠지 내 이야기는 하품 나올 정도로 지루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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