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학위과정 합격을 축하합니다.
박사학위과정 합격을 축하합니다.
명확하게 그렇게 쓰여있었다.
12월에 박사학위과정 입학 최종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뛸 듯이 기뻤다... 까지는 아니었지만 뭐라 말할 수 없이 기뻤다.
누구든 그렇지 않겠는가.
본인이 가고자 원하는 곳에서 입학 합격 통지가 온다면 말이다.
그동안의 나의 노력이 드디어 합당하게 인정받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나름대로 설계한 계획대로 모든 일을 진행해 가면 되겠다.
그때는 머릿속에 그런 생각뿐이었다.
대학원 박사학위과정 신청은 약간은 느닷없이 조급하게 추진한 점이 있었다.
석사 학위 취득 이후에는 박사 과정으로의 진학은 생각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혀 생각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상과 업무에 치이면서 거기까지 고려할 여유가 나지 않았었다.
무엇인가 내 인생의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늘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2024년에 그런 생각이 심화되었던 것 같다.
나는 회사 일을 좋아한다.
하지만, 사무실에 가만히 주어진 일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자각이 들었다.
새로운 돌파구나 변화가 필요했다.
내가 주도하여 만들어갈 무엇인가가 있어야 했다.
박사학위 과정 대학원에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업무와 연관한 전공을 한다.
그것으로 학위 논문을 준비한다. 그리고 논문과 관련한 각종 세미나, 포럼에 참여하여 나의 논문 기반으로 발제하고 토론한다. 이를 통해, 내가 일하는 분야에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 내보자.
대략 이것이 나의 간략한 미래 플랜이었다.
그래서 대학원, 박사학위 과정 진학을 고려하게 되었다.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직원들 몇 사람에게 물어보니 회사 인근 대학원에 다니는 경우도 있고 기차를 타고 몇 시간을 걸려야 갈 수 있는 대학원에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어찌 됐든 직장일을 병행해야 했기에, 저녁과 주말에 수업이 있는 대학원을 찾아야 했다.
찾아보니 평일 저녁에 수업과 토요일 온라인 화상 수업을 하는 대학원이 있었다. 여기다. 싶었고. 일단 서류 제출 마감에 맞추어 후다닥 각종 졸업증명, 성적증명, 자기소개, 논문작성계획안을 준비하여 제출했다. 서류를 제출하고 바로 면접 준비에 돌입했다. 예상되는 질문 리스트를 찾아서 맞춤형 답변을 마련해 놓았다. 아마도 왜 지금 박사학위 과정을 밟으려고 하는지가 가장 핵심 질문일 것 같았다. 혹시 영어로 물어볼 것을 대비해 영어 답변도 준비했다. 그리고 전공 수업 과목에 관한 상식적인 질문이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전공 수업은 내가 하고 있는 업무와 연관성은 있지만, 학문적으로 정돈된 내용을 내가 숙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이 부분 질문에 대한 대비가 필요했다. 도서관에서 전공 서적을 몇 개 찾아서 찬찬히 읽어보고 필기도 하면서 준비했다. 두꺼운 책을 매일 일정 분량 읽어나가며 요약 필기하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상당히 지루한 과정이었다. 책을 읽을 때는 이해가 된 것 같은데 막상 덮고 다음날 다시 책을 펼쳐보면 이미 어제 읽은 내용인데도 생소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았다. 유튜브에서 해당 전공 강의를 찾았다. 유명 대학 교수님들의 강의가 몇 가지 올라와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 보니까 예를 들어 1시간 분량 영상이면 핵심 내용은 마지막 15분 정도에 언급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나머지는 교수님들, 본인이 과거 유학시절에 겪은 체험담이나 사회·정치·문화적 소견을 피력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태반이었다. 물론 여유가 있다면 천천히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상식적인 소양 쌓기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해당 전공에 대한 학원 강사들의 강의를 찾아들었다. 사실 여기서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다. 꼭 필요한 핵심내용, 반드시 알아야 할 교과 과정의 위주로 강의가 구성되어 있었다.
합격통지를 12월에 받았고, 입학등록금은 1월까지 입금해야 했다. 그리고 3월에 개강. 교과과정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했다. 적어도 교수님들이 설명하는 내용에 대해, 아니 최소한 단어가 무슨 뜻인지라도 알고 수업에 임해야 할 것 같았다. 12월에서 2월까지 대략 3개월 동안 기초 학습이 가능할까? 일단 기존에 면접 준비하면서 찾아보았던 해당 전공 관련 동영상들을 다시 찾아보았다. 주중 아침 새벽시간과 저녁과 주말을 이와 관련한 동영상을 보고 노트에 메모하고,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다시 찾아보고 또 해당 전공을 공부한 지인에게 물어보고, 이러면서 준비를 해나갔다. 적어도 다른 학생들에 비해 뒤떨어지지는 말자하는 정신으로 매진했다.
그리고, 결국 건강에 탈이 생겼다. 피로감이 쌓여갔고 스스로 체감하기에 이상이 느껴졌다. 이 상태로 무리하게 학업과 통학을 강행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통학을 하려면 기차로 2시간 정도를 이동해야 하는 거리였다. 그러면 주중 저녁에 왕복 기차 4시간을 타고, 또 주말에 화상 강의까지 들으면, 그리고 강의 내용을 예습 또는 복습하고 과제나 시험도 치러야 할 텐데, 그것은 주중과 주말에 내 몸과 머리에 쉴 틈을 주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즉, 그런 생활을 지속하다가는 몸과 뇌가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고민의 와중에, 통학을 위해 타고 가던 기차에서 일어서다가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정신을 잃었는데. 꿈이었다. 식은땀을 흘리고 깨어났다. 일종의 예시몽 같았다. 이런 식으로 내가 세운 계획대로 나가다가는 필경 그런 일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결단이 필요했다. 여러 가지 고민 끝에 대학원 입학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대학원, 박사학위 과정 등록을 취소, 포기하겠다고 행정실에 전화를 걸어 알려주었다. 아쉬운 감정이 격하게 밀려왔다. 그러나 그다음 날 곧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몸과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주중 아침 새벽시간, 저녁시간, 주말시간에 투입하던 교과 공부를 중단했다. 여러 가지 영어 학습과 모임도 중단했다. 일주일, 이주일이 지난 다음, 지난 수개월간 시달렸던 옆구리 통증이 현저히 줄어들었음을 체감했다. 그리고 2월부터 손글씨 저널링을 시작했다.
대학원, 박사학위 공부가 나라는 사람에게 썩 맞는 것은 아니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의 해준 말이 떠올랐다. 내가 정말 공부를 좋아하서 대학원에 진학하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라는 것이었다. 실용적인 이유가 컸던 것 같다. 박사과정을 다니는 것 자체로도 경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를 통해 관련 인사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도 있지 않을까, 논문을 활용하여 세미나나 심포지엄에 발제하여 다음 경로를 준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공부를 더 하고 싶었냐고 묻는다면 글쎄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른 또 하나는, 무엇을 계획하고 실행하든 자신의 건강을 훼손해 가면서 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지나치면 안 될 것 같다. 내가 바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전념을 다하는 것보다, 존재하는 것이 우선이니까. 일단 내가 존재하는 것이 최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