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레브 (1)

아드리아 바다는 코발트블루였다.

by 지훈

한정 없이 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았다.

수직으로 쏟아지는 햇살은 코발트블루빛 물결을 튕기고 나와 흩어졌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빛살 조각에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뭉게구름이 느릿하게 떠가는 화창한 날씨였다.

사람들의 시끌벅적 요란한 말소리에 귀가 먹먹해졌다.

어디선가 향긋한 냄새가 콧구멍을 통해 들어와 뇌 전체를 가득 채웠다.




주위를 둘러보니 화려하게 장식한 꽃다발이 테이블마다 놓여있었다. 빙글빙글 또아리를 튼 장식들로 꾸며진 아치형 통로에도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멋들어진 정장 차림에 어깨가 떡 벌어진 남자들과 바디 실루엣을 드러낸 드레스 차림의 여자들이 모여있었다. 가히 사람 반, 꽃다발 반이었다.


남자와 여자들은 마치 모델같았다. 키가 훤출하고 육체의 굴곡이 요란했다. 거의 다들. 물론 개중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긴 있었지만. 나처럼 올망졸망하고 넝마 같은 차림의 녀석들만 보다가 이런 어른들을 보니까 눈이 휘둥그레졌다. 간혹 내 또래나 손윗 아이들도 보였는데 반들반들 윤기 나는 피부에 하나같이 깨끗하게 다림질한 말쑥한 정장이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저런 옷은 도대체 얼마나 할까. 그리고 저 정도 옷을 입으려면 얼마나 부자여야 할까. 대략 그런 생각이 오락가락했던 것 같다. 머리에 부스럼을 긁으면서, 나는 내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몸에서는 뭔가 큼큼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몸을 안 씻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입은 옷이 오래되고 낡아서 그런 것인지 헷갈렸다.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그때 사람들이 갑자기 웅성 웅성대더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때에 맞추어 분위기를 돋우기 위한 바이올린 소리가 울러 퍼졌다. 모여든 키 큰 어른들의 체구에 가려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멀리서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와 턱시도 차림의 남자가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박수와 환호로 그 둘을 에워쌓았다. 결혼식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내가 여기 있는 것일까?


그제야 자각했다.

여긴 남부 유럽, 해안가 소도시다.

불현듯 어쩌면 이 결혼식은 이곳의 부유층, 그러니까 그냥 부자가 아니라 아마도 합법적인 또는 비합법적인 방식을 가리지 않고 평생 부를 축적해 온 지역 유지 자녀의 결혼식 같았다.




시선을 돌려 보니, 손뼉 치고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 저 건너편으로 검은 양복의 남자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눈을 확실하게 가린 선글라스를 쓰고 리시버를 귀에 꽂고 있었다.

경호원들인 것 같았다. 바람이 살랑 불어 그들의 양복저고리를 들출 때, 양복 안 쪽에 권총을 소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긴장감과 공포심으로 살갗이 곤두서고 심장이 떨려왔다.

나는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제야 내가 사람들 몰래 야자수 나무 뒤에 숨어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깜빡 잊고 있었던, 내가 여기 온 본래 목적이 생각났다. 나는 여기에서 뭔가 쓸만한, 그 할아버지에게 넘길만한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그 할아버지는 동네 골목길 막다른 끝 건물 지하에 살고 있었고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수염은 얼굴의 절반 이상을 덮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장물아비라고 불렀다.


아무래도 여기서 더 오래 머물면 안 될 것 같았다.

뭔가 잘못됐다.

내가 있을 곳이 아닌데.

나와 같은 옷차림을 한 사람은 나를 제외하고는 한 명도 없었기에 누가 보더라도 수상쩍게 여길만 했다.

혼잡한 틈을 타서 빠져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행히 그들은 입구로 들어오는 차량과 사람들을 검문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바깥으로 나가는 차량에 대해서는 대충 내보내고 있다.


행사장에서 조금 떨어진 천막 뒤로 트럭 몇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결혼식을 위한 음식물과 물품들을 날랐던 차량들 같았다.

마침 인적이 드물었다.

나는 트럭 짐칸에 몰래 숨어 들어갈 요량이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 내 목덜미를 잡았다.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머리털이 쭈뼛 솟아올랐다. 벌벌 떨며 뒤를 돌아보았다.

갈색 헌팅캡을 눌러쓴 키가 멀쭉하고 턱이 뾰족한 남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와 눈이 부딪혔다.

그가 싱글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내 목덜미에서 살짝 손을 놓았다.


그는 나를 안아 트럭 짐칸 안쪽 박스더미 속에 파묻히도록 해주었다.

그는 나를 여기까지 몰래 데리고 와주었던 나의 파트너였다.

우린 한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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