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셋째 주에 소설가와 법학 교수, 영화감독, 미디어 아티스트 등이 연사로 나온 AI와 예술에 관한 포럼에 참석했다. 10분 전쯤 포럼 장소에 도착했는데, 입구에 몇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유명 소설가의 사인을 받으려는 행렬이었다. 소설가는 편안한 옷차림에 - 그러니까 정장 차림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통상 작가나 예술가들은 웬만하면 어떤 공식적인 행사에도 정장 차림을 하지는 않는 것 같다. 물론 예외도 있기는 하겠지만. 어쩌면 거의 모든 공식적인 행사에서 발제자나 연사들, 인사말을 하는 사람들이 격식 있는 정장 차림으로 참석할 때, 그에 반하여 평상시 즐겨 입는 편안한 옷차림으로 등장하는 것이 작가, 예술가로서의 개성과 차별점을 확인하는 방식일지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그래서 소설가는 조금은 헐렁해 보이는 니트류의 옷차림에 도톰한 비니를 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날 바깥에 바람이 좀 불었었나 싶다. 하지만, 실내는 예상보다 따뜻했다.
본격적인 포럼에 앞서서, 모 업체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작곡가가 소개되었다. 키오스크처럼 보이는 기계가 있었고 바로 그 옆에 피아노가 한 대 놓여있었다. 세로로 길쭉한 키오스크 화면에는 딱 인공지능이 만들어냈을 가상인간, 걸그룹 아이돌 캐릭터 같은 인물이 눈웃음을 지으며 뭐라고 뭐라고 계속 종알거리고 있었다. 똑같은 말을 무한 반복하는 것 같았다. 웹툰이나 게임 속 여자 캐릭터 같아 보이기도 했다. 뭔가 인공적으로 생성된 느낌이 너무 강했다. 표정이나 동작이 어색해 보였다. 피아노의 몸체는 특이하게 빨간색 어쩌면 주황색에 가까웠던 것 같다. 자세히 보니 피아노와 인공지능 기계는 연결되어 있었다. 아마도 피아노가 저절로 건반을 누를 것 같은 예상이 들었다.
사람들이 자리에 착석하였고 오늘의 연사들이 맨 앞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정장 차림의 여자 사회자가 등장했다. 사회자는 마이크를 들고 이윽고 행사의 시작을 알렸으며, 본격적인 포럼에 앞서 공연을 하나 준비했다고 했다. 인공지능이 작곡한 곡을 바로 그 인공지능이 피아노 연주를 하고, 더불어 진짜 사람 첼리스트가 함께 첼로 연주를 하는 방식이었다. 첼리스트는 여자였고 어려 보였다. 언뜻 보기에 10대 중후반으로 보였다. 20대인데 그렇게 보였던 것인지 아니면 정말 10대 중반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회자의 상세 설명을 못 들었으므로. 그리고 바로 연주는 시작되었다. 예상대로 피아노의 검은색, 하얀색 건반이 저절로 눌러내려갔다가 올라갔다가 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로 자기 스스로 건반이 움직여지는 피아노를 보니까, 마치 허공에서 투명인간이나 유령이 연주를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 이런 광경을 모차르트나 베토벤 시대에 살았던 당시 사람들이 시간여행을 통해 지금 여기로 와서, 이 자리에서 본다면 엄청난 쇼크로 쓰러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청중들은 이미 사전 설명을 들었던 터라 아무런 동요나 놀라움이 없이 음악을 듣고 있었다.
음악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익숙한 선율이었다. 불협화음은 아니었다. 조용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면서, 맘 편안히 듣기에 딱 어울리는 음악이었다. 음악이 끝나고 사람들은 박수를 쳤고, 사회자는 첼로 연주자에게 소감을 물어보기 위해 마이크를 연주자의 입 가까이에 대었다. 첼로 연주자는 준비해 온 소감문을 읽어 내려갔다. 소감문을 종이로 준비했는데, 인공지능이라는 21세기 첨단 기기 옆에서 더구나 인공지능과 합주까지 마치고 나서, 인간 연주자가 종이 소감문을 읽는 모습은 아이러니한 기분이 들었고, 동시에 아날로그스러운 인간적인 분위기가 들어서 첨단 기기와 묘하게 대비가 되어 보였다. 첼로 연주자는 아마도 긴장 때문이었는지 소감문을 아무 감정 없이 각 문구, 문단을 마치 감정 없는 기계처럼 읽어나갔다. 그렇게 감정 없이 딱딱 끊어지게 소리 내어 읽는 모습이 인공지능 보다 더 기계스럽게 보였다. 아마도 소감 발표를 해본 경험이 많지 않아 보였다. 왠지 처음 인상처럼 아직 10대 첼리스트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 감정 없는 소감문 낭독에, 청중들 여기저기서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자연스러운 소감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종이에 쓰인 글자를 그대로 또박또박 감정 없이 읽어 내려가니 마치 기계가 발음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다들, 인공지능 보다 더 인공지능스러운 소감문 발표에 키득 웃음이 새어 나왔던 것 같다. 사회자도 그 점을 눈치챘는지, 연주자가 긴장 때문에 미리 준비해 온 소감문을 읽게 된 점 있으니 많은 양해바란 다고 서둘러 마무리하며 정돈했다. 나는 웃지 않았다. 사실 나는 인간 첼리스트가 더듬거릴 때 오히려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뿐더러,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감정과 생각을 능숙하게 전달하는 것도 경험 없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많은 경험을 통해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데, 아직 말로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서툴러서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만약 인공지능에게 소감을 물어보았다면 어땠을까 상상하게 되었다. 아마 멋들어진 표현으로 적절한 감정 섞인 어조로 청중들이 감탄할만한 감상을 효과적으로 전달했을 것 같다. 인간이 경험할 수밖에 없는 낯선 다른 사람들 앞에서 긴장, 떨림, 자칫 말을 잘못하거나 실수해서 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하면 어쩌지 하는 그런 두려움과 공포, 그러한 상황에 익숙해지기 위해 필요한 시간과 경험들. 인공지능에게는 그런 것들이 완전히 생략되거나 제거되어 있다. 아니 인공지능에게는 처음부터 그런 불필요해 보이는 감정과 경험이 설정되어있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런 경험과 기분, 감정들은 말하는 이의 의도가 듣는 이에게 정확하게 전달되는데 방해가 되는 그저 비효율적인 일종의 에러로서 분류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이런 자리에서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인공지능이 매끈하면서도 감동적인 소감문을 발표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는 인공지능에게 미리 훈련받은 사람들이 소감문을 무난하게 발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어느 날에 이와 같은 인공지능과 인간 합주가 끝나고 인공지능이 소감문을 발표하기로 했는데 그만 그 순간에 인공지능에게 에러가 발생하여 띄엄띄엄 말을 이어가지 못할 때, 나는 지금 보다 더 많이 당황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은 항상 어떤 상황에서든 완전무결한 것처럼 여겨졌을 것이기에. 그렇게 인공지능에 에러가 난다면, 내가 가끔 인간 발표자가 인간적인 실수를 했을 때 그러하듯이 따뜻한 격려의 박수를 인공지능에게 보낼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이 퍼포먼스를 보기 전에 딱 한 달 전에 다른 장소에서 바로 이 인공지능이 사람의 개입 없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을, 피아노 건반이 저절로 움직이는 장면을 보았다. 아마 아무 설명 없이 피아노 건반이 저절로 움직이는 이 광경을 보았다면 유령이 나타났다고 모두 혼비백산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자리에 참석한 어느 누구도 비명을 지르거나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다. 모두 차분하게 마치 누군가, 투명인간이 건반을 두들기는 것 같은 괴상한 광경이었는데도 진지하게, 지긋이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 연주가 끝나고 모두들 이 인공지능을 개발한 개발자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개발자의 설명에 따르면 수년 전에 처음 인공지능으로 작곡 및 피아노 연주를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많은 음악 분야 인사들을 만났는데 당시에 적지 않은 분들이 기계가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를 한다는 점에 상당한 거부감과 적개심을 드러냈다고 한다. 소위 "감히 기계 따위가 인간의 예술적 영역을..." 이러한 인식이 팽배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서 인간 연주자와 함께 연주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하고 있다고 한다. 또 하나, 개발자의 예상으로는 앞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모든 음악 연주를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인간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시도는 가능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인간은 손가락이 10개여서 그 이내에서 건반을 타건하지만, 인공지능은 20개, 30개의 건반을 한꺼번에 타건하여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음악이라는 새로운 장르나 흐름을 기대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