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작곡가의 피아노 연주 (2)

사람을 보러 간다.

by 지훈


그런데 이 지점에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다음 날인가 나는 인간 연주자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행사에도 참여했었다. 어제 보았던 인공지능 연주자의 피아노 연주와 오늘 보고 있는 인간 피아니스트의 피아노 연주에 대해 자연스럽게 비교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나는 음악 전문가나 전공자가 아니기에 인공지능과 인간 피아니스트 간의 연주 기법이나 실력. 또, 연주한 음악에 대한 감상평을 쓰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향후에 지금 보다 더 많은 인공지능 작곡가와 피아노 연주가가 나타날 때, 내가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인공지능 작곡가가 저 홀로 피아노 연주를 하는 콘서트홀에 갈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 무대에 피아노만 홀로 있고, 건반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모양을 보러 내가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그 음악회를 찾아갈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나로서는 선뜻, 사람이 없는 연주회장에서, 피아노 홀로 건반을 셀프 타건하는 광경을 보려고 시간과 비용을 들여 콘서트홀을 가지는 않을 것 같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완벽하게, 틀림없이, 정확한 음정과 정밀한 박자 감각으로 타건을 한다고 해도 말이다. 혹은 인공지능이 마치 30개, 50개의 손가락을 가진 것처럼 화려한 타법을 자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아마 실연에 있어서 인공지능 연주 보다 간혹 실수 혹은 즉흥을 가미한 인간이, 사람 피아니스트가 등장하는 연주를 보고자 할 것 같다.




순전히 내 개인의 입장에서는 콘서트홀에 갈 때는 다음과 같은 감상이 필요하다. 최초에 청중을 바라보며 긴장하는 피아니스트의 얼굴. 연주가 진행되면서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얼굴은 점점 풀어지면서 이윽고 마치 피아노와, 또는 자신의 연주와 사랑에 흠뻑 빠진 듯 황홀해하는 얼굴 표정. 어찌보면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이기도 하다. 어떤 부분에서는 마구 미간을 찡그렸다가 또 어떤 구간에서는 입을 쫑긋거리기도 하고 때론 머리를 털어내기도 한다. 춤추는 듯한 손가락, 들썩이는 어깨, 완전히 무아지경에 몰입한 듯 피아니스트의 격동적인 몸 전체의 움직임. 그런 다이내믹하고 흥미로운 장면을 보러 갈 것 같다. 사실 콘서트홀에서는 내 귀에 들어오는 음악 소리에 못지않게 내 눈에 보이는 그런 장면들이 나를 매료시킨다.


아마도 이 점을 기획자도 간파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인공지능의 피아노 연주를 인공지능 홀로 실연하는 대신에 살아있는 사람 실연자와 함께 하는 모양으로 구성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기계는 기계만으로는 완성이 안 되는 것 아닐까? 기계도 사람이 곁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이 없는 풍경, 기계가 저 혼자서 움직이고 완성하는 장면을 굳이 우리가 보고 경험하고 싶을까? 그래서 여전히 인간 연주자는 계속 공연을 할 것이고, 우리는 그 공연을 보러 갈 것 같다.




인공지능 작곡가가 작곡한 곡과 인간이 작곡한 곡을 연주한 음원을 우리가 온라인을 통해 들었을 때, 어느 것이 인공지능 작곡가가 작곡한 것이고 어느 것이 인간 작곡가가 작곡한 것인지 구분해 낼 수 있을까? 구분하기 어려울 것이다. 글도 그러할 것 같다. 지금은 이거 혹시 인공지능이 쓴 글 아니야 하고 의심이나 추정을 해보는 경우도 있지만. 앞으로 점점 인공지능 작가가 생성해 낸 글과 인간 작가가 쓴 글을 판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결과물로서 구분해내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흔히들 이야기하듯 인공지능이 인간의 모든 활동을 대체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향후에 아마도 인공지능 작곡가의 곡이든 인간 작곡가의 곡이든 나의 개인 취향과 선호에 맞아떨어지는 음악이 나온다면 그 곡을 즐겨 듣게 될 것 같다. 물론 내가 심취하고 있던 곡이 알고 보니 인공지능 작곡가가 작곡한 것이라는 알게 된다면 이후에 약간은 해당 음악을 감상할 때, 감흥이 반감이 될 것 같기는 하다. 그래도 아예 외면하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만약 해당 곡의 연주회가 열린다고 가정해 보자. 설혹 인공지능 작곡가의 곡이라고 하더라도 가서 보고자 하는 마음이 생길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그 곡의 연주를 인간 연주자가 연주하기를 바랄 것이다. 온라인으로 듣는 음원에서 인간이 작곡한 것인지 인공지능이 작곡한 것이 구분할 수 없기에, 또 설혹 인공지능이 작곡한 곡이라고 해도, 연주회장에서는 그 곡을 인공지능과 연결된 피아노 저 홀로가 아닌 그 곁에 인간 피아니스트나 첼리스트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게 될 것 같다.




한편으로는, 인공지능 작곡가가 작곡한 곡이라고 해도 엄밀히 보면 광의의 의미에서 인간이 작곡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예를 들어 내가 인공지능 작곡가에게 창밖에는 함박눈이 내리고 있고 실내에서 커피 한 모금 마시고 있다. 이럴 때 들을만한 뉴 에이지 계통의 피아노곡 작곡해 줘라고 주문을 넣었다면, 나의 의도가 들어간 것이므로 내가 작곡 행위에 참여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글도 완성된 글만으로는 이 글이 작가 혼자서 모두 써 내려간 것인지, 인공지능이 5% 미만으로 관여한 것인지, 혹은 인공지능이 절반 이상 참여한 것인지, 또는 인공지능이 거의 90% 이상을 생성한 것인지, 우리는 점점 알기 어려울 것이다. 알기 어렵다기보다 굳이 알려고 하지 않게 될 것 같다. 지금은 인공지능이 얼마큼 관여하고 참여하였는지가 논란도 되고 이의도 제기되지만, 앞으로 일상적으로 거의 모든 사람, 대부분의 작가들이 자연스럽게 인공지능의 보조를 받으며 사용하게 될 것 같다. 지금도 가만히 따져보면 인공지능을 전혀 쓰지 않는다고 장담하는 작가라고 해도, 집필은 본인 힘으로 한다고 해도 간혹 무엇인가를 알아보고 조사하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할 것인데 그 검색 과정에 해당 서비스의 인공지능이 구동되지 않았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역설적이게도 또는 아이러니하게도, 온라인과 디지털과 인공지능이 가속적으로 발달하면 할 수록 거꾸로 작가와 독자가, 사람과 사람이 직접적으로 만나는 계기와 기회가 더욱 간절히 필요해질 것 같다. 그것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 든 간에 말이다. 결과물 자체도 중요하겠지만 그 보다 그 결과물을 만들어낸 사람을 직접 보고 만나서 말을 들어보고, 질문을 던지고 설명을 청취하는 것, 그런 식의 활동이 인공지능 시대에는 더 중요해지고 나름 가치있는 의미를 갖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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