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리 풍 그림체에 빠지다.
2025년 봄, 어느 날. 동창들이 모인 카톡방에 아주 익숙한 그림체 이미지가 하나 올라왔다. 따뜻하고 부드러우면서 동시에 어떤 난관 - 거친 폭풍우와 쏟아지는 포탄 등 - 에도 희망을 잃지 않을 것 같은 소녀의 모습. 그런 것이 지브리 풍 이미지일 것이다. 사실 나 개인적으로는 지브리풍 이미지에 특별한 선호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그때 놀랐던 것은 몇몇 동창들이 어느 카페에서 둥글게 모여서 찍은 실사 사진이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지브리 풍 애니메이션 그림체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표현된 것 때문이었다. 친구들은 자신들의 얼굴이 지브리풍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이미지처럼 순식간에 변형되어 표현된 것을 보고 다들 놀라워하면서도 즐거워했다. 그런데, 사실 그 시점에 나는 좀 의아하기는 했다. 주변뿐만 아니라 이 나라를 넘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 동료, 친구, 가족들과 찍은 사진들을 지브리풍 이미지로 바꾸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현상은 지극히 일종의 놀이였다. 그래서 나는 그전에도 자각하기는 했지만 다시금 아주 명료하게 알게 되었다. 역시 사람은. 인간은 놀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놀기 위해 태어났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좀 더 의아했던 것은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지브리 풍 이미지를 좋아하다니. 왜 그럴까? 왜 그런지는 좀 더 찬찬히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더 의아했던 것은 실사 사진을 순식간에 지브리 풍 이미지로 만들어 준 인공지능에 대한 것이었다. 실사를 지브리 풍 그림체로 바꾸어 놓은 이미지들을 보면서, 이 인공지능 앱 개발업체 또는 개발업자가 지브리 스튜디오나 애니메이션 원작자로부터 제대로 허락이나 동의를 받고 이런 기능 서비스를 하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실제로 그 인공지능 앱 개발업체에서 지브리 스튜디오나 애니메이션 원작자로부터 허락이나 동의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원작자가 매우 분노했다는 것과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해당 인공지능 개발업체에 항의 서한을 보냈다는 정도의 보도 기사였다. 아. 그런데, 기사를 다시 찬찬히 찾아보니 원작자의 분노는 이번 일에 대한 것은 아니었고, 과거에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인공지능이 만든 이미지에 대하여 삶에 대한 모독이라고 언급한 것을 다시 재인용한 것이었다. 평생 본인의 손으로 그림 작업을 해왔을 테니 그럴 만도 하겠다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튼 이번 일은 애니메이션 원작자와 스튜디오의 동의나 허락도 없이 인공지능 개발업체에서 무단으로 그 특유의 독창적인 그림체를 학습해서 이용하여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이 현상의 초기에 이용자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점에 대해서는 별 언급 없이 마냥 즐거워했다. 그래서 나는 의문스러웠다.
많은 이들이 사랑스러워하는 그 작품들의 이미지를 인공지능에게 학습시킨 다음에 전 세계의 인공지능 이용자들이 마음껏 자신들의 사진을 그 작품의 그림체로 바꿀 수 있게 된 것. 마술 또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순식간에 사진 속, 나의 모습이 지브리 애니메이션 주인공같은 모습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즐거운 환상이고 놀이다. 인공지능 업체는 이런 마법을 통해 지구상의 모든 이들을 들뜨고 행복하게 했다. 그것 자체로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원작자와 저작권을 갖고 있는 곳의 허락이나 동의도 없이 이런 일을 벌여도 괜찮은 것인가? 인공지능 개발업체가 혹시나 선의로 이런 일을 벌였다고 해도, 그렇다면 원작자와 저작권자에게 일정 수준의 보상을 했어야 함이 마땅하지 않았을까? 만약 개발업체의 고의였다면 원작자와 저작권자의 권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일반적으로 스타일은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지브리 풍의, 지브리 애니메이션 화풍의 등과 같은 것은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개인용 사적인 범위 내에서의 가족이나 친구들 간에 공유하기 위해, 본인의 사진을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지브리 풍 등 스타일로 변환하는 것은 하등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특정 캐릭터를 그대로 재현하거나 그것을 상업적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라는 것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저작권은 보호하되 저작물 이용을 과도하게 제한하여 공정 이용을 못하게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취지라고 한다.
2년 전이었나, 어떤 토론 모임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이 만들어놓은 저작물을 저작권자 동의 없이 학습하는 것이 적정한가에 대한 주제로 의견을 교환한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 그 자리에서의 대부분 사람들의 의견은 인공지능의 저작물 학습은 인간의 학습 방식을 모방한 것이므로 정당하다는 의견들이었다. 예를 들어, 인간의 경우 각 개인이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읽고 학습할 때 개별로 동의받거나 이용료를 지불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므로 그와 같이 인공지능의 저작물 학습도 같은 잣대로 적용해야 타당하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인간인 내가 1백 권의 책을 읽고 학습할 때 그때마다 책의 저작권자에게 비용을 지불하지는 않는다. 물론 1백 권의 책을 내가 비용을 지불하고 구입한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일부는 책을 구입하고 일부는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해서 보기도 할 것이고, 또 지인에게 빌려 보기도 할 것 같다. 그리고 일부는 책을 직접 읽지 않고 블로그나 인터넷상의 요약 서평 등을 읽고 학습할 가능성도 있다. 인공지능이 이와 같은 방식을 모방하여 학습한다면 인간이 책을 읽고 학습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그런 행위에 대해 1백 권에 대해 일일이 저작권자에게 동의를 구하거나, 별도의 비용을 지불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내가 책을 읽으며 학습하는 방식이나 인공지능이 학습하는 방식이나 매한가지라는 것이다. 언뜻 그럴싸하게 수긍이 가는 논리이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 보자. 내가 1백 권을 읽고 습득하는 것과 인공지능이 1백 권을 습득하는 것이 동일한 방식이며 동일한 효과와 결과를 갖는다고 해석함이 과연 타당할까? 내가 1백 권을 읽는다면 일단은 나의 책의 읽는 속도를 고려한다면 또 책의 두께가 두껍지 않다는 전제하에서 아무리 빨라도 일주일에 2권 또는 최대한 3권 정도 아닐까 싶다. 대략 8~9개월 정도가 소요될 것이다. 그리고 설혹 그렇게 1백 권을 다 읽었다고 쳐도, 나는 아마 대부분의 내용을 잊어버릴 것이다. 아마 최근에 읽은 것 또는 그중 내게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 또는 책의 몇 가지 이야기만 뭉뚱거려서 기억할 것 같다. 아마 그마저도 정돈이 안되어 뒤죽박죽 섞인 상태로 기억하게될 것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인공지능이 책 1백 권을 학습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하루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길어도 몇 시간 정도? 속도와 시간 면에서 인간과 동일한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 적정한 것일까? 책의 내용에 대한 숙지로 들어가면 더 확연한 차이점을 알게 된다. 책 1백 권에 대하여, 인공지능은 나처럼 특정한 일부 문장 정도만 기억하거나 또는 전체적인, 대략의 어렴풋한 이야기로 이해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인공지능은 각 책의 표지부터 맨 끝 뒷 장까지의 모든 내용을 남김없이, 한 톨의 단어도 흘림 없이, 누락 없이 고스란히 외울(메모라이즈) 것이다. 그래서, 1백 권 전체를 단 한 번의 읽음으로써 정확하게 통째로 외우(메모라이즈)는 인공지능 학습력을 1백 권을 수십 번을 반복해서 읽는다고 한 들 결코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누락 없이 완벽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나(인간)의 학습력과 동일 유사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적정하지 않아 보인다. 인공지능을 인간의 한 부류라고 보는 바람에 일어난 착오에 의한 판단 아닐까. 내가 보기에는 나(인간)와 인공지능은 기본 설계 설정부터 다른 점이 크다고 보이는데, 자꾸만 인공지능 개발업체와 개발업자들이 나(인간)와 인공지능은 같은 방식으로 학습하고 있다는 논리를 만들어서, 의도적으로 이 점을 판단하는 이들 - 특히 재판부에서 종사하시는 분들 - 에게 혼동을 유발시키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시 토론 모임에는 테크 스타트업 기업 종사자들이 꽤 많이 참여하고 있어서 그 입장의 소견이 주된 의견으로 형성되었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 스타일은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이에 대해 지브리 스튜디오에서는 해당 인공지능 개발업체에 관련 기관을 통해서 항의 서한을 보냈다고 한다. 아직 법정까지 가지는 않은 상태다. 한편, 최근에 어떤 개인 일본 만화 작가가 자신의 작품 스타일로 된 일러스트레이션이 SNS에 무분별하게 유포되는 것을 보고 이의 대응에 부심해하는 인터뷰 보도를 보았다. 인공지능이 그 작가의 작품을 학습하여 유사하게 만들어낸 일러스트레이션들이었는데 물론 그 여성 작가는 해당 인공지능 개발업체로부터 단 한 푼의 보상이나 이용료를 받지 못했다. 이 중년의 여성 작가는 자신이 한평생을 연구하여 만들어낸 본인만의 고유한 만화체를 인간도 아닌 인공지능에게 무단으로 도용당한 채 괴로워하고 있었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무료 버전의 자신과 유사한 그림체 일러스트레이션이 구독자를 뺏어가 버릴까봐, 여성 작가 본인의 생계 활동이 곤란해질 것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었다. 해당 인공지능 개발업체로부터 뾰족한 반응을 확보하지도 못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뒤돌아서, 어깨가 축 늘어진 작가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벅 터벅 걸어가고 있었다. 인공지능 개발업체는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 그리고 전문적인 법률 전문가들로 구성된 대응팀이 있을 것 같았다. 일개 개인 작가가 이에 맞서기에는 너무나 무력해 보였다.
사적인, 개인적인 용도나 범위 내에서 사용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하는데, 글쎄 예를 들어 내가
개인 차원에서 지브리 화풍을 흉내 내어 종이에 캐릭터 몇 명을 그린 다음에 나의 가족, 친구, 동료, 지인들과 같이 보면서 즐거워하는 것과 인공지능 개발업체가 인공지능을 학습시켜서 수억 명의 이용자들이 주문만 하면 유사한 지브리 화풍으로 변모시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을 동일한 사례로 간주하는 것이 타당할까?
이런 경우는 내가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보고 또는 그 이미지들을 찾아본 다음에 유사하게 그리는 것과 인공지능이 지브리 애니메이션과 그 이미지들을 학습하는 것을 기본적으로 동질로 해석한 것 아닐까 싶다. 인간인 내가 학습하는 과정과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 학습하는 과정을 비슷하거나 같다고 보는 것이 적정할 것일까? 나는 내가 학습하는 것의 대부분을 잊어버리고 정밀하게 모든 것을 기억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정확하게 메모리에 담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내가 내 생각과 감정에 기반하여 손으로 그려내는 것과 어떤 사람이 인공지능에 주문하여 인공지능이 생성하고 변화시키는 것을 동일하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더구나 인공지능 개발업체는 유료서비스 또는 아마 앞으로 여러 가지 다양한 서비스를 연결시켜 더 많은 끊임없는 수익 창출의 길을 닦을 것 같은데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인공지능 이용자가 본인의 사진을 이 인공지능으로 지브리풍 이미지로 바꾼 다음 SNS에 올린 것을 일단 비상업적인 용도의 공정 이용에 해당된다고 해석함이 맞는 것일까.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