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릴 글쓰기 경험

현재까지 유효한 글쓰기 경험은 무엇일까?

by 지훈

지금 쓰고 있는 글이 그렇다. 아직은 유효한 글쓰기 경험이다. 그런데, 인공지능 시대는 이미 일정 정도 도래하였다. 앞으로 더 가속화되고 확장되어 갈 것이다. 나의 삶 곳곳에 점점 더 모르는 사이에 깊숙이 스며들 것 같다. 이미 그러고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다른 무엇 보다 현재 내가 쓰고 있는 글쓰기 경험이 달라질 것이 예상된다. 글쓰기 활동에 있어 인공지능의 활용이 자연스러워지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더 익숙해지고 습관화될 것 같다. 이런 시기에 생각해 보게 된다. 내 경우, 그래도 아직까지는 되도록 인공지능의 도움 없이 글쓰기를 하고 있기는 한데. 이러한 경험이 미래에도 과연 유효할까? 당장 내년에 내가 인공지능 활용 없이 혼자 힘으로 글을 쓸 수 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만약 내년 또는 그 이후에, 주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인공지능을 글쓰기 조수로, 글쓰기 파트너로서 대우하고 있을 때, 내가 그 대열로부터 외딴섬처럼 멀리 떨어져 있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 참에 인공지능 시대의 글쓰기에 대해 써보기로 했던 것이다. 촉발의 시작점은 먼저 글에서 언급했던, 장강명 작가의 잃어버린 독서 경험 이야기에서부터였다. 지금은 그런 적이 있었나 싶은, 되돌아가기도 힘든 사라져 버린 독서 경험 이야기를 들으면서, 현재 내가 하고 있는 글쓰기 경험도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는 잃어버린 글쓰기 경험으로 간혹 언급되거나 또는 아예 그런 것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채 모두의 기억에서 잊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나의 글쓰기는 대략 아래와 같이 진행되었다. 글쓰기에 앞서 이런 글을 한 번 써봐야겠다는 동기를 만들어주는 사건이 있다. 그 사건은 외부 자극에서 오기도 하고 내부 자극으로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부터 파생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생각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흩날린다. 마치 바람에 흩어지는 나무 잎사귀 같다고나 해야 할까 모르겠다. 그리고는 그중에 서로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생각들을 살살 쓸어서 한 무더기씩 모아 본다. 그렇게 모아놓고는 두서없이 타이핑을 해본다. 두서없이 타이핑을 해보지만 일단 초안으로서의 제목, 가제를 만들어 놓는다.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굴리면서 제목을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다. 그런데 가끔 제목 만드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는 분들도 있다.


올해 여름이었나, 에세이를 쓰는 여성 작가의 북콘서트에 참석해 보았는데, 발간된 책 제목이 심상치 않아서 물어보았다. 예상대로 본인은 전혀 책 제목 짓는 것에 젬병이어서 늘 출판사 편집장께 부탁하곤 한다고 했다. 짐작은 했다. 왜면 내가 그분의 책 제목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은 책 제목이 인상적이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전혀 흡인력이 없고 평이하였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오히려 그 평이함이 그분의 에세이 내용과는 잘 어우러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그 책의 제목은 만약 그 작가의 명성이 아니었다면, 독자은 눈에 들기는 어려울 것 같아 보였다.


제목 만들기가 괴로운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인공지능의 신속한 제목 후보 추천 제안은 축복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에 들 때까지, 내가 다소 까다롭게 주문을 넣는다고 해도 인공지능은 지치지도 않고 무한정으로 제목 후보들을 추천해 줄 것으로 예상된다. 혼자서 마땅하지도 않고 마음에도 들지 않는 제목으로 끙끙 앓는 것보다는 그 시간에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으면 빠른 해결이 가능할 것 같다.




간혹 글의 제목이 안 떠오를 때 인공지능에게 물어볼까?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아마도 지금 당장 이러저러한 내용으로 글을 쓰려는데 여기에 어울리는 제목 좀 추천해 줘? 하면 인공지능은 즉시 그럴싸한 후보 제목들을 여럿 제안해 줄 것이다. 머릿속에서 어렵게 쥐어 짜내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오히려 인공지능에게 요청해서 지금 당장 후다닥 제목 후보를 받아내는 것보다, 내 머릿속으로 나 스스로 어렵게 쥐어 짜내며, 언제 마땅한 제목을 찾아낼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경험이 소중해 보인다


제목을 미정으로 두었다가 또는 대충 가제를 하나 정한 다음에, 글을 써내려 간다. 글을 쓰다가 또는 글을 멈추고 다른 짓을 하다가, 또는 글을 안 쓰는 시간에 내가 쓰던 글을 떠올리면서 이런저런 제목들을 상상해 본다. 나 스스로 이런저런 생각을 굴리면서 툭 떨어져 나온 제목 중에 골라보면서 글 내용하고 하나씩 견주어 본다. 그러다 보면 글 내용과 엇! 이것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하는 제목을 발견한다. 그런 식으로 이 글에는 무슨 제목이 어울릴까 하면서 흘러가는 무수한 시간들이 있는데, 왠지 앞으로는 그런 시간 경험이 줄어들거나 심지어 그와 같은 경험을 못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앞서 제목 만들기만 언급했는데 더욱 심각한 것은 문장 만들기다. 제목에서부터 내용 작성까지, 글 쓰는 사람이 직접 만들고 쓰던 습관이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내가 직접 단어와 표현을 골라보고, 궁리해 보고, 다시 고쳐보던 시간들이 사라진다. 글을 마무리한 다음에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수정하고 문장을 바로 잡던 시간들도 사라진다. 내가 그동안 읽었던 또는 들었던 각종 책, 이야기, 정보들을 기억 저편으로부터 끄집어내어 어떻게든 얼기설기 엮어보려고 하는 노력들이 사라진다. 매끈하기보다는 다소 우툴두툴한 점도 있고 걸리적거리는 듯한 나의 문장들도 사라진다. 결국 내가 이리 궁리하고 저리 궁리하면서 오물 조물 만들어가는 시간이 대폭 생략된다는 것이다. 내 문장의 형태가 국도를 따라간 비포장 도로라면 인공지능의 글은 아스팔트 고속도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무래도 글을 읽는 이가 운전자라고치면, 그는 꿀럭거림 없이 평탄하면서 빠른 속도로 시간을 단축하는 고속도로를 주로 선택할 것 같다.




잃어버릴 글쓰기 경험으로 제목 만들기와 문장 만들기를 예시로 들었지만, 사실 진짜 핵심은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상상하는 경험이 없어질 가능성이다. 글을 쓴다는 것이 단순히 제목을 쓰고,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쓴다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결과적으로 제목, 단어, 표현, 문장이 시각적으로 드러나 보이겠지만, 그 이전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나의 생각과 상상이다.


"잃어버릴 글쓰기 경험"에 대해 쓰고자 할 때 나는 그와 관련한 또는 그와 전혀 무관한 여러 가지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또한 상상하기 시작했다. 생각과 상상은 갈피를 잡을 수 없이 무수히 뻗어나가고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굽이쳐 나가기도 한다. 가끔 그것은 상식이나 논리를 벗어나기도 하고 주제와는 아무 관련 없는 곳에 가닿기도 한다. 그런데, 아마도 인공지능에게 내가 물어봤다면. "잃어버릴 글쓰기 경험"에 대해 써보려고 하는데 어떤 내용으로 쓸지 조언 좀 해달라고 했다면, 인공지능은 나 보다 훨씬 논리 정연하며 일관성 있으며 보편적 설득력 있는 글을 생성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인공지능의 나를 추월하는 능력에 감탄하며 그것의 글이 내가 스스로의 힘으로 쓴 글 보다 더 뛰어난 점에 질투심과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결국은 인공지능이 쓴 글을 마치 내가 쓴 글인양 가져다가 붙여 놓을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생성해 낸 내용을 마치 내가 생각해 낸 것인 양 그런 척을 할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이미 그렇게 글을 쓰고 있는 작가들이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최근에 글쓰기 플랫폼에 올라온 어떤 글을 한 편 읽었었는데 내용은 보편타당했으며 표현은 매우 논리 정연했고 막힘없이 술술 읽혀서 순식간에 마지막 문장까지 단숨에 읽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내 머릿속에 들어온 생각은? 이 글은 아무래도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글 같다는 강한 인상이었다. 물론 나의 추측이 틀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너무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막힘없이 써 내려간 문장에서 기계가 다듬어준 매끈함이 느껴졌다.


찬찬히 들여다보다 보니, 글쓰기에 있어 내가 가장 즐거워하며 행복해하고 있는 경험은 다름 아닌, 나의 힘으로 오롯이 생각하며 상상하는 시간들이다. 그 결과물이 다소 서툴고 미약하고 거칠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나의 문장과 표현을 직접 쓰는 경험들. 그런 경험들이 빠른 속도와 효율성에 기반한 인공지능의 생성 능력으로 대체될 수 있다면, 아마도 그것이 나의 "잃어버릴 글쓰기 경험"이지 않을까 싶다.






이전 01화잃어버린 독서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