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생각 노트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조현욱 옮김
새삼 저자에 대한 설명이나 책에 대한 소개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미 차고 넘칠 정도로 유발 하라리의 저서 『사피엔스』에 대한 정보는 도처에 깔려있다. 기사 검색이나 유튜브, 블로그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로부터도 이 책에 대한 언급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또 의외로 실제로 책을 읽어본 사람은 그닥 많지 않아 보이기도 했다. 요즘은 책에 대한 내용을 다른 이의 유튜브나 블로그 등의 요약 콘텐츠로 습득하는 방식에 다들 익숙해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도 그런 방식에 익숙한 이들 중의 한 명일 것이다. 어쩌면 이 바쁜 세상에서, 시간이 모자란 세상에서 책을 찬찬히 읽어나가는 방식 보다 블로거나 유튜버가 요약 발췌해 준 핵심만 뽑은 지식 습득이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게 될 때 재빠르게 사용하기 편리한 좀 더 현명한 방식일지 모른다.
워낙에 유명한 저자이고 책이다 보니까 만나는 사람마다 언급은 하는데 정작 제대로 읽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도 몇 번이고 서문만 읽다가 책을 덮었던 기억이 난다. 서문조차도 끝까지 다 읽지 못했던 것 같다. 서문의 첫 페이지의 절반 정도 읽다가 덮었던 것 같다. 그리고 몇 번 더 읽어보려고 시도했는데 결국 다시 덮었다.
기억으로는 그렇게 포기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책을 읽어보려고 한 그날 나의 신체 컨디션과 마음 컨디션이 썩 평화롭지 않았었던 것이라고 찾아본다. 조금 더 부차적인 또 다른 이유로는 용어와 문장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지난주에 동료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에는 초중학생들도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필독서라고. 리얼리(Really)라는 영어 단어 리액션이 머리에서 바로 떠올랐다. 중학생까지는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초등학생이 이 책을 읽는다고? 믿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 참에 제대로 읽어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두고 초등학생과 독서 경쟁을 하는 느낌이랄까. 정색하고 초등학생과 독서 경쟁을 한다니 다소 우스꽝스럽거나 혹은 유치, 치졸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건 개인적으로 정말 가장 강력한 책 읽기 동기부여가 되었다. 방송이나 칼럼에서 여러 지식인과 전문가들이 『사피엔스』 읽기를 권장했을 때도 전혀 움직이지 않던 마음이 "요즘에는 초중학생들도 『사피엔스』를 읽는다"는 그 말 한마디로 책을 펼쳐서 읽게 만들었다.
우선 책 표지를 보고, 열어서 서문을 읽기 시작했는데 서문을 읽다 보니 나의 착각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몇 번이고 읽다가 포기한 서문의 글은 『사피엔스』가 아니었다. 다른 책의 서문이었다. 다른 책을 혼동했던 것이다. 『사피엔스』의 서문은 충분히 이해할만했다. 그리고, 『사피엔스』를 제대로 읽기 전에 좀 더 찾아보니 『사피엔스』 그래픽 노블로도 책이 나와있고, 또 『사피엔스』주요 핵심을 요약한 큰 글자 책도 나와있었다. 그림을 곁들이고 큰 글자로 요약해 준다면 초등학생도 읽기는 가능하겠다 싶었다. 하지만, 혹시나 싶어 본격적으로 『사피엔스』를 읽기에 앞서서 큰 글자 책 『사피엔스』를 훑어보았는데 내용이 너무 압축되어 있어서 그런지 오히려 뭔가 잘 읽히지가 않았다.
이야기는 약 140억 년 전 빅뱅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생명체가 나타나고 인류라는 종이 형성되고 문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유발 하라리 저자만의 종횡무진하는 방식으로 독특한 시각으로 풀어간다. 이 분은 역사학자인데, 읽다 보면 물리학, 생물학, 예술, 철학, 금융, 기업 사례와 더불어 호모 사피엔스의 수렵채집 시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다양한 시대, 지역, 국가에서 벌여졌던 사건들이 예시로서 풍성하게 언급된다. 그래서 좀 어질어질하다. 거의 6백여 쪽에 달하는 책의 분량도 상당한 압박감을 준다.
사피엔스의 출현 중에서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이 세 가지 있다. 물론 이 세 가지는 내 기억으로는 유발 하라리뿐 아니라 다른 여러 분야의 학자들도 언급했었던 것으로 알지만. 다른 유인원들과 비교하여 두뇌의 크기가 커진 것, 직립 보행을 하게 된 것, 그리고 언어로 소통하게 된 것이다. 그중에서 언어 소통에 있어서는 뒷담화가 기여한 부분이 크다는 점이 흥미롭다. 통상 뒷담화 문화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아왔는데 하라리는 뒷담화 문화가 사람들 사이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의사소통과 협력을 강화했다는 점에 의미 있는 기여를 했다고 본다. 유발 하라리에 의하면 뒷담화에 관한 상당히 많은 연구가 이미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이건 다음 기회에 찬찬히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언뜻 생각이 나는 것이지만, 아마 사회나 회사나 모임에서 뒷담화가 문제라라고 인식하고 지적하는 사람은 - 물론 나를 포함하여 - 어쩌면 본인도 그것이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동시에 이미 다른 누군가에 대해 뒷담화를 하고 있을 것 같기는 하다.
사실 이 설명 보다 하라리가 더 강조하고자 한 것은 인간이 가상으로 만들어낸 이야기, 집단적 상상, 허구야 말로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차이 나게 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 허구의 대표적인 것이 신화, 종교, 국가, 기업, 화폐, 법률 및 금융제도 이런 것들인데 이런 것들은 허구임에도 사람들이 그것을 실제로 믿기에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이런 이야기가 나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웬만큼 알고 있는 일반 상식처럼 통용되지만, 거슬러 올라가서 이 책이 발간되었던 2011년 당시에는 꽤 새로운 통찰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만약 내가 이 책이 발간된 시점에 이런 해석을 읽었더라면 꽤나 감흥을 받았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가끔은 책을 읽을 때 그 책이 발간되었던 시점과 상황을 좀 고려를 하면서 읽어야 될 때도 있다.
지난주부터 읽기 시작해서 이제 5일 정도 지났는데, 약 170쪽 정도 읽었다. 본문만 598쪽에 달하니 아직도 한참 가야 할 길이 멀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더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배회하고 있다는 것이다. 간혹 책을 야심 차게 읽기 시작하다가 중간에 어떤 이유에서든 제동이 걸리는 시점이 있다. 그럴 때는 앞으로 나가려고 해도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이럴 때는 가만히 책을 덮어놓고 다른 책으로 넘어가 보는 것이 방법이다. 굳이 한번 읽기 시작한 책을 한 번에 끝까지 읽어야 할 이유는 없다.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는 잠시 다른 곳에 갔다가 오면 된다. 그래도, 이렇게 덮기가 아까워서 책의 맨 마지막 부분으로 가본다. 통상, 저자가 말하고자 하고 싶은 핵심 이야기는 맨 앞 쪽 또는 맨 뒷 쪽에 압축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 예상했던 대로 핵심은 맨 뒷장에 있었다.
중간을 건너뛰어 훌쩍 566쪽으로 가본다. 유발 하라리는 갑자기 행복의 의미, 인생의 의미를 진단해 본다. 앞 장까지는 신나게 인류 역사에 문화, 언어와 숫자, 화폐, 금융이라는 것이 미친 지대한 영향을 큰 그림으로 그려나가다가 마지막 부분에 와서 그래서, 140억 년 전부터 여기까지 온 현재 상태에서 인류가 그동안 성취해 놓은 것 또는 무참하게 파괴해 놓은 것들을 돌이켜 본 다음에, 그래서 돌연 질문 방향을 과연 각자 인간 개인으로서 우리는 행복한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로 돌린다. 21세기 문화와 문명사회에 사는 사피엔스가 수만 년 혹은 수십만 년 전 수렵채집 시기에 살았던 사피엔스 보다 과연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거와 비교하여 절대적으로 풍요로운 현시대에 갈수록 자살률과 삶에 대한 불만족은 높아지고 있음을 수치들이 명백히 보여주고 있으므로.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를 유발 하라리 자신이 그동안 갈고닦은 특유의 현란한 무예로 화려하게 펼쳐 보여 보는 이들(독자들)을 얼떨떨하게 만들었다가, 동작을 멈추고 이를 감상하던 이들(독자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선문답 같은 엉뚱한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당신(독자)에게 있어 행복의 의미, 인생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여기서 나는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아닌 철학자 유발 하라리의 체취가 강렬하게 느껴졌다.
유발 하라리에 의하면, 예를 들어 현재까지 과학자들이 밝혀낸 행복이란 다음과 같다. 작가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에서 행복은 쾌락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고 했다. 그와 같이, 현대 과학이 밝혀낸 것에 의하면 인간의 뇌 생화학 시스템만 잘 관리하고 치료 요법을 만들어 뇌에서 만들어지는 생화학 물질의 수준을 높이면 될 일이다. 예를 들어 각 인간의 세로토닌, 도파민, 옥시토신의 수치를 높여주면 지금 보다 행복 수준이 높아진다. 그러니까, 문명과 문화의 발달과 융성이라는 인간을 둘러싼 외부 환경이 과거보다 더 나아져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각 인간 개개인 내부, 인간 뇌의 생화학 반응 물질 수치를 인위적으로 높여주면 더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과학자들이 현재까지 밝혀진 위의 발견에 전적으로 공감하고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다른 반론을 저자는 제시한다. 그런데, 관련 예시가 약간 엉뚱하다. 그런데, 설득력은 있다. 어른들이 어린 아기를 낳아서 돌봐야 할 시기가 있다. 그 과정에서 매우 귀찮고 짜증 나고 힘든 일들이 계속 벌어진다. 그렇다고 그 과정에 대해 어른들이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건 좀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또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뻗어나간다.
한편, 또 다른 과학적 관점을 제시한다. 저자의 관점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그 관점에서는 인간의 삶이란 별다른 의미가 없다. 무목적적인 진화의 산물일 뿐이다. 내일 지구가 폭발하더라도 우주는 계속될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 삶에 의미를 갖는 것은 일종의 환각이다. 과학자, 기업가, 군인이 각자 자기가 하는 일과 삶의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중세기에 십자군 전쟁이나 대성당을 짓기에 의미를 찾고 그 일에 전념한 중세인들과는 별반 차이가 없다. 아마, 행복은 한 개인의 환각을 지배적인 집단 환각과 싱크로나이징 하는 것이다. 나의 개인적 내러티브와 내 주변 사람들의 내러티브를 일치시키는 한, 나는 내게 내 삶이 의미 있다고 설득할 수 있다. 그런 믿음 속에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실제 하지 않는 일종의 착각 또는 환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착각과 환상을 개개인이 하고 있고 또 개인들이 모여 구성된 공동체 사회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의 착각과 환상이 일치할 때 우리는 매우 기뻐하고 행복해한다는 것이다. 대략 요약해 보았는데, 느낌상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을 다소 어렵게 설명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의 이해로는 다음과 같다. 어쩌면 국가대표 선수가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 우승했을 때 그 국가에 속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나 감상이 그러한 것이 아닐까 싶다. 국가, 국민, 월드컵, 올림픽. 이런 것들이 실제가 아닌데 우리가 실제라고 믿는 일종의 가상의 이야기이고 그 가상의 이야기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행복감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참으로 기운 빠지는 결론인데, 그러면 행복이란 정말 자기 환각에 기대는 것인가?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저자는 존재론적인 질문. 철학적인 질문들을 쏟아낸다. 저자는 스스로 역사학자를 넘어서 철학자가 되고자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인간으로서 나의 삶 자체가 일종의 환각 또는 꿈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마 예전의 내가 이런 문장을 읽었다면 많이 충격을 받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역사학자가 하고 있다고. 다소 경악했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부분 수긍하지 않기가 어렵다. 과학이 밝혀낸 점을 살펴보면 그렇다. 나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나 무생물까지도 모두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는 그 보다 더 미세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내가 최근에 보았던 어떤 물리학자의 설명이 떠오른다. 근래에 어떤 물리학자에게 죽음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답변하는 것을 보았다. 그 물리학자가 말하기를, 죽음이란 나의 몸을 구성하고 있던 원자들이 해체되면서 그 원자들이 다시 본래 자리로 - 허공 또는 우주 - 환원되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렇게 그 물리학자의 설명은 확신 있게 명료했다. 그런데 그 명료한 설명에 비교하여 그 물리학자의 표정은 이상하게도 다소 허탈하고 쓸쓸해 보였다. 과학적으로는 하나의 몸뚱이로 뭉쳐져 있던 원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져버리는 것이므로 그렇게 단호하게 설명하고 있었지만, 막상 수십 년 후에 자신이 죽음을 마주하였을 때 그냥 그렇게 사라질 것이라고 상상해 보니 아찔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그 물리학자는 영혼이나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기에 그런 것이 실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 죽음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물리학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존재가 먼지가 되는 것이라고 답변을 한 물리학자의 모습은 꽤나 씁쓸해 보였다. 그건 아마도 그 물리학자가 아마 몇 년 뒤에는 정년 퇴임을 앞둔 연령이었고 그래서 어느 시점에는 내게도 죽음이 아주 먼 미래는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젊은 물리학자였다면 이런 식의 자신의 과학적이며, 물리학적 관점의 설명에 꽤나 만족해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 자신에게서 실제 죽음, 자신이 맞이할 죽음은 도래할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여 거의 결코 어쩌면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의식하지 않고 있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