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 겨울이면 읽고 싶어지는 책

설국

by 지훈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유숙자 옮김




매년 겨울만 오면 항상 이번에는 이걸 읽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번만큼은 꼭 이것을 읽어야겠다는 결심을 하다가 매번 결심이 사그라들어 실패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왠지 겨울 찬바람에 눈이 하얗게 쌓이면 제목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설국(雪国)』




사실 줄거리나 내용은 전혀 알지 못한 채 다만 제목『설국(雪国)』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다. 굳이 풀어보자면 "눈의 나라" 또는 "눈 쌓인 나라"라고나 해야 할까. 아무튼 눈이 가득 쌓이고 쌓여서 한 번도 녹아내린 적이 없는 어떤 고장, 지역을 상상하게 해 주었다. 더구나 작가 이름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설국(雪国)』이란 책 제목은 이상하게도 마치 그와 이 책 제목이, 원래 그가 이 책을 쓰기 이전부터 혹은 그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그가 결국은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이름을 갖고 마침내는 『설국(雪国)』이라는 제목의 이야기를 쓰기로 아주 오래전에,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리고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예 그렇게 미리 정해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하는 의아한 마음이 들게 해 주었다.




『설국(雪国)』이라는 제목은 그렇게 늘 눈이 내린 다음날 아침의 겨울이 되면 내 머릿속에서 어김없이 떠오르는 책 제목이 되었다. 그런데 매번 그렇게 떠오르다가 막상 책을 집어 들지도 못하고, 또는 아마도 책을 집어 들지 않은 채로 매해 겨울을 지나왔다.


그것은 어쩌면 나의 게으름 탓도 있었겠지만, 『설국(雪国)』과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그가 일본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더욱 마음의 하중을 가중시켰다. 이렇게 저명하게 명성이 자자하고, 교양인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가 되어버린 책에 대해 부담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가끔 흥미를 잃어버리는 마음 상태가 된다. 나만 그런 것일까?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 같다. 사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두 가지 마음, 혹은 여러 가지 마음이 중첩되는 것 같다. 세계적인 걸작인데 내가 아직 읽어보지 않은 것이니 당연히 궁금해진다. 그런데, 동시에 누구나 모두가 이것은 세계 명작이라고 하면 좀 심드렁해지는 마음, 일종의 반발 심리도 생기는 것 같다. 세계 고전 명작이라고 해서 열심히 읽어보았는데 아! 이것이야말로 진정 명작이야!라고 마음으로 외쳤던 작품이 몇이나 있었었나 싶기도 한데. 이렇게 말하면, 세계적인 거장들과 걸작들에 대해 마치 폄하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이 스스로 거슬리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지만 이제는 조금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독서가로서 내가 세계 명작을 집필한 작가들에 대해 우월한 위치에서 평가할 능력이나 역량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거나 약간 다른 이야기다. 세계 명작을 읽기 전에 나는 늘 내 멋대로 그 작품의 이야기와 등장인물을 상상해 버린다. 해당 작품을 읽기도 전에, 내 나름대로 그 세계 명작의 제목으로 내 상상 속에서 전혀 엉뚱한 별개의 작품을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나도 내가 그런 식의 책 읽기 버릇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자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어떤 책을 읽기도 전에 그 책의 제목을 가지고 내 나름의 스토리와 캐릭터를 가진 나만의 상상 이야기에 푹 빠져버리다 보니, 막상 그 책을 읽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전혀 내가 상상했던 내용과는 다른 이야기와 인물들이 나오게 되니 당황스러워진다. 그리고 나는 이미 내가 그 책의 제목으로 전혀 다른 내가 만들어낸 상상 이야기 속에 흠뻑 빠져있기 때문에 본래 그 책의 원래 이야기와 구성, 등장인물에 그다지 매료되어 버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내 상상력이 뛰어나다는 것이 아니라, 본래 책을 읽기도 전에 자기 멋대로의 공상과 상상에 먼저 사로잡힌 나머지 책을 읽기 시작하면, 당연하게도 나의 상상과 원작자가 쓴 책의 내용이 간격이 벌어지게 되므로, 책을 읽기 이전 상태보다 반감된 흥미와 흥분 상태, 어. 이야기가 왜 이렇게 흘러가지, 이런 투로 읽어나가게 된다. 원작자 입장에서는 심히 기분이 언짢을 수도 있는 조금 요상한 독자의 이상한 독서 습관일 수 있겠다.




다른 또 하나의 이유는 책을 읽기 전에 그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게 형성된다는 것이다. 걸작을 읽는다면 내 인생에 최초로 맛보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과 감명에 사로잡힐 것이라는 기대를 늘 하게 된다. 어쩌면 이 책을 읽음으로써 나의 당장 내일이 혹은 더 나아가 앞으로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그런 열망까지 가지게 되곤 한다. 그런데 사전에 그런 기대감과 지향점이 지나치게 높게 형성되다 보니 막상 책을 읽어 나가면 애초에 책을 읽기 전에 가졌던, 예측했던 그 정도의 감동이나 감명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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