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교실 첫 수업 2.

퇴근 후 웹툰학원

by 지훈

그러고 보니 종이 노트와 펜을 꺼내 놓은 수강생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아 보였다. 다들 랩탑이나 태블릿을 꺼내 놓은 것 같다. 이럴 때는 주눅이 들어야 정상적이겠지만, 되려 무근거한 자신감에 차오른다. 일단 종이노트와 펜에 수업 내용을 꼼꼼히 적어 놓고, 복습하고 또 복습을 하면 어느 시점에 웬만한 수준에 오르지 않겠는가 하는 그런 낙관적 미래 전망에 근거한 감상이다. 내가 갖고 있는 최상의 무기는 항상 그런 출처를 알 수 없는 자신감과 한계 없는 낙관론이다. 물론, 가끔은 나보다 더 지나친 사람을 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저 뒤편에 아무것도 책상 위에 올려놓지 않고, 팔짱을 끼고 두 눈을 꾹 감고 있는, 코밑과 턱수염 자국이 거뭇한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그렇게 보인다. 그 순간 문을 열고 그 남자의 바로 옆으로 웹툰 강사로 추정되는 깨끗한 민머리의 안경 쓴 남자가 스쳐 지나가는데도 그는 여전히 팔짱을 끼고 두 눈 불끈 감은 그 자세이다. 놀랍고도 존경스럽다.




예상대로 그 깨끗한 민머리의 안경 쓴 남자는 웹툰 강사였다. 그는 자기소개를 한다. 누구나 다 아는 거대 웹툰 플랫폼에서 운영하는 최대 공모전에서 우승한 이력과 랭킹 고 순위권에 오른 본인의 웹툰 작품 제목과 그중 지금 드라마와 영화로 시나리오 각색 단계에 있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수강생들 사이에서 웅성웅성 소리가 들린다. 그 정도 레벨의 강사가 실제로 수업을 하리라고는 미처 예상 못했다는 반응들이다. 그런데, 나는 처음 듣는 작품이고 이 남자 강사 이름도 처음 듣는다. 워낙에 평소에도 웹툰을 잘 보는 편은 아니니까 그렇다고 해도 왠지 여기 온 수강생들은 매일 열심히 웹툰 열공하는 독자들인 것 같다. 허기사 그러니까 직접 웹툰 그리기 기술을 익혀서 자신만의 웹툰을 그려보겠다고 여기까지 온 것이겠지. 비록 취미반이라고는 하지만 다들 이러다가 언젠가는 진짜 웹툰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꿈을 한편에 품고 온 것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든다.




웹툰 강사의 거의 자기 자랑에 가까운 자기소개에 뒤이어 나온 정면의 슬라이드 PPT 화면에는 느닷없이 하얀 배경에 "웹툰이란 무엇인가?"라는 검은색 글자만 큼지막하게 쓰여있다. 아니, 첫 수업에 이런 본질적인 의미심장한 질문을 준비했다니. 나는 긴장한다. 혹시 강사가 갑자기 손가락으로 나를 콕 집어, 내게 "웹툰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편안하게 의견을 말씀해 주세요."라고 정중하게 요구할까 봐 우려된다.




언제나 우려는 현실화되기 쉬운 물질처럼 여겨진다. 예상대로 강사는 "웹툰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여기 오신 여러분들 생각을 듣고 싶은데. 혹시 말씀해 주실 분 있으실까요?"라고 묻는다. 일순 썰렁한 긴장감이 강의실을 격하게 훑고 지나간다. 그런데 저 뒤에 누가 뭐라고 혼잣말처럼 우물 중얼거린다. 강사는 귀가 밝다. "예? 뭐라고요? 저 뒤에 뭐라고 하셨죠?" 순간, 뒷자리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조용해진다. "저기 뒤에 가죽점퍼 입으신 분 같은데.. 들리게 말씀해 주세요." 강사가 목소리 톤을 높여 재촉하자, 하는 수 없다는 듯 지목받은 가죽점퍼 남자가 목소리를 높여서, 하지만 자신감 없는 말투로 말한다. "웹에 올리는 카툰..."

다른 사람들 몇몇은 그 답변에 키득키득 숨죽여 웃는다. 장난하나? 그걸 누가 모르나? 웹툰은 당연히 웹에 올리는 카툰이지. 저런 철학적 질문에 그런 단답형 답변을 쯧쯧. 그런 반응들인 것 같은데.


강사는 말한다. "그렇죠. 맞습니다. 웹툰은 웹에 올리는 카툰입니다. 정확히 그겁니다. 웹, 즉 인터넷에 올리는 디지털 만화 형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웹툰 이전에는 무엇이었죠?"


수강생 일부 : 만화책!


수강생들은 이제 강사의 질문에 대한 기대 답변이 무엇인지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강사는 이것인지 저것인지 모호한 철학적 성찰이 담긴,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를만한, 그래서 자칫 심오해 보이는 답변이 아니라, 단답형의 명확한 답변을 원하고 있었다.


강사 : 그렇죠. 카툰이었죠. 종이로 된 만화책이었죠.


이어지는 이 나라 만화와 웹툰의 장구한 역사와 현재 웹툰 시장 구조의 명(明)과 암(暗),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 전망까지 거시적이고 통사적인 접근으로 만화사(史), 웹툰사(史), 카툰사(史)를 강사는 입에 침을 튀겨가며 열강했다. 수강생들은 감동받았고 감격한 것 같았다. 나도 그랬다. 우리는 왠지 이 나라의 빛나는 만화사(史), 웹툰사(史)의 한 페이지를 멋지게 장식하기 위해 여기 같이 모인 것 같은 운명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략 여기까지가 내가 웹툰 학원에 가기 전에 상상해 본 웹툰 학원에서의 첫 수업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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