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업 시간

퇴근 후 웹툰 학원

by 지훈

첫 수업은 다음과 같았다. 그들은 내게 질문을 했다. 여기서 그들이라고 함은 웹툰학원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사무직원과 웹툰작가 두 분을 지칭하는 것이다. 과거에 디지털 드로잉 도구를 사용해 본 적이 있는지? 더 정확하게는 클립 스튜디오(Clip Studio)를 비롯하여 총 세 가지 유형의 디지털 드로잉 애플리케이션 명칭을 내 앞에 제시해 주었다. 나는 당연하게도 그 세 가지 유형 모두, 어느 곳에도 체크를 하지 않았다. 하지 않았다기보다는 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세 가지 디지털 드로잉 도구, 디지털 드로잉 애플리케이션을 전혀 사용해 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그러했다. 설마, 그분들이 나를 그와 같이 생각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분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나 스스로의 기분은 약간 문명세계에 갓 발을 들여놓은 야생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웹툰을 배우겠다고, 웹툰학원에 등록한 사람이 디지털 드로잉 툴을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았다는 것이 마치 비상식적인 일인 것처럼, 흔히 말하듯 기본자세가 안 되어있는 것으로 비치지 않았는가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러나, 사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다잡은 것은, 그러므로 디지털 드로잉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그 방법을 배우려고 여기 온 것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내가 디지털 드로잉 애플리케이션을 진작에 사용해 봤더라면, 숙지하고 있더라면, 굳이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여기 이곳에 올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꽤 괜찮은 자기변명 또는 자기 위로 그리고 자기 합리화가 된 것 같아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웹툰 작가가 첫 수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예상했었으나 그것은 단지 나의 상상이었다. 허기사, 디지털 드로잉의 기본이 안되어있는 수강생이므로 그 기본을 숙지하는 데 있어서 굳이 웹툰 강사가 따라붙을 이유는 없어 보였다. 사무직원은 내게 컴퓨터 모니터에서 디지털 드로잉 툴을 실행시키는 것부터 알려주었다. 여기서는 클립 스튜디오(Clip Studio)라는 툴을 사용한다. 몇 가지 애용되는 디지털 드로잉 애플리케이션의 한 종류로서, 강사와 사무직원에 따르면 웹툰을 그릴 때는 주로 이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한다고 했다.


안내에 따라 빈자리에 앉았다. 빈자리에는 컴퓨터 모니터와 키보드, 그리고 다소 뭉툭한 모양의 검정 볼펜 같은 형태의 도구가 있었다. 그 도구 밑에는 역시 검정 색상의 작은 패드가 깔려있었다. 볼펜으로 패드에 선을 그으면 그에 따라 모니터에 선이 그어져 보이는 방식이었다. 패드는 마우스 패드 같은 재질이었고, 거기에 선을 그리는 것이 모니터에 정확하게 나타나야 하는데, 난생처음 잡아 사용해 보는 펜과 패드, 그리고 모니터와의 떨어져 있는 간극 등으로 어색하게도 선은 질글재글, 삐뚤빼뚤했다. 상상으로는 첫 수업에 멋지게 선을 그려 주변을 감탄시키는 장면을 상상했었는데 망했다. 더구나, 어느 정도 범위로 펜을 잡고 있는 손을 크게 혹은 작게 굴려야 할지 가늠하기가 꽤나 쉽지 않았다. 차분히 바라보고 있던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사무직원은 내게,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했다. 말투에서 나와 같은 초보자는 대개 이런 기초 과정을 겪는 것처럼 비쳤다.


클립 스튜디오 애플리케이션을 클릭하여 구동시키고 메뉴 중에 "신규"라는 부분을 클릭하면 화면 전체에 백지가 나온다. 그 백지에다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백지를 열 때 여러 가지 사양 설정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처음 보는 것이니 너무 복잡해 보였고 이미 기본 설정이 되어있는 것이므로 그에 따랐다. 흰 바탕의 백지는 디지털화된 A4나 도화지처럼 보였다. 그런데 더 정확하게는 흰 바탕 백지 위에 레이어가 깔리고 그 레이어에다가 그리는 방식이다. 처음에 이 개념이 익숙하지 않아서 혼동스러웠다. 그저 백지 위에 그린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백지는 가장 아래에 깔려있는 백색 바탕색이고, 그 위에 모눈종이 형태의 레이어를 하나씩 깔고 거기에 그리는 방식이었다. 기본으로 백지가 깔리므로 눈으로 볼 때는 백지로 보인다. 다만, 작업을 하다가 실수로 모눈종이(레이어)를 지워버리거나 또는 모눈종이(레이어)를 비활성화시켜 놓고 백지만 활성화시킨 상태에서 선을 그리려고 하면 선이 그려지지 않았다. 몇 번 실수를 반복하고서야 겨우 이해를 했던 것 같다. 요약하자면, 새 화면을 열고, 저장하고 닫는 과정을 배우고 그다음에는 그 백지를 밑바닥에 깔아놓은 레이어에 선을 그리는 것을 배웠다. 글로 설명을 늘어놓아보니 더 복잡하게 설명이 된 것 같다. 그런데 실상 말로 설명을 들을 때도 바로 익숙해지지는 않았다. 또, 실제로는 일종의 애플리케이션이기 때문에 화면에 드러나 처음 보는 복잡한 메뉴 구성들과 개별 사용 방법에 익숙하지 않아 적응이 쉽지는 않았다. 지금도 아래 클립 스튜디오 애플리케이션의 각종 그림 아이콘으로 형성된 도구 중에서 극히 일부만 알고 그것들만 겨우 사용하고 있다.


화면은 아래와 같았다. 아래 그림의 왼쪽 도구틀의 맨 하단을 보면 아래 사각형 백지 바탕과 바로 위에 사각형 모눈종이(레이어)가 보인다.


layer (1).png




그래도 생초보로서는 메뉴의 모든 복잡한 기능을 다 익힐 여지는 별로 없었기에, 그것보다 어렵게 느꼈던 것은 굵은 만년필 모양의 흑색 펜으로 보드 위에 선을 그어서, 그 선이 화면에 적당하게 나타나도록 하는 기술이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오른손이든 왼손이든 한 손으로 만년필 모양의 흑색 펜을 잡는다. 그 펜의 끝을, 그 펜의 끝은 뾰족하지 않고 좀 뭉툭하고 고무질감처럼 유둘했다. 단단하지 않았다. 그것을 패드에 꾹 눌러서 선을 그리면 동시에 화면에도 그러한 선 모양이 나타나는 방식이었다.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 말랑한 펜의 끝을 역시 다소 말랑한 패드에 꾹 누르면서 선을 그려내는 것이 꽤나 어려웠다. 이러한 방식을 모니터를 보면서 판 위에 그리는 펜 태블릿이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삐뚤빼뚤에 미끄러지기 일쑤여서, 더구나 옆에서 누가 나의 이런 상황을 계속 지켜보고 있으니 더더욱 긴장한 탓에 수업이 끝난 후에 정신 차려보니 목과 어깨와 손목이 딴딴 뻗뻗하게 굳어 있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