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노트에 볼펜으로 필사를 하기 시작했다.
일상적인 사건과 간 밤에 꾼 꿈을 저널링하다 보니 어휘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 아침 회의 시간에 누군가와 의견 충돌이 있었던 상황을 잘 묘사해서 정돈하려고 하는데 막상 적합한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대충 얼버무려서 글을 마무리했는데 찜찜함이 남아있었다. 뭔가 그 상황에 딱 맞아떨어지는 표현이 있을 것 같은데 떠오를 듯 떠오를 듯 가물거리더니 떠오르지 않았다.
노트에 저널링한 글들을 다시 읽어 보았다. 부족했다. 어휘가 부족했다. 가만히 보니까 똑같은 단어가 반복되고 있었고 특히 묘사가 세밀하지 못했다. 다채로운 표현과 풍부한 묘사를 찾다 보니 예전에 읽었던 몇몇 문학작품 속 문장들이 기억났다. 분명히 글로 쓰인 작품들인데 읽다 보면 마치 영화나 웹툰을 보듯이 장면이 생생하게 이미지화되었던 경험이 있다. 그런 글을 쓸 수 있다면, 혹은 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 몇 가지를 구해서는 책상 위에 두고 필사를 시작하려 했다. 막막해졌다. 가히 1백 쪽이 넘는 책들을 필사를 한다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무모한 도전이다. 필사의 장점에 대해 언급했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지금 디지털화된 시대에도 필사는 나름의 효용성이 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러데, 정작 그 나름의 효용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효용성이 무엇이었는지 정작 그 내용 보다도 필사가 온라인 시대에도 쓸모가 있다는 점이 인상에 깊게 남았었나 보다.
필사를 시작하기 전에 1백 쪽 책을 필사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미래를 가만히 예측해 본다. 아마도 어느 시점에, 무리한 필사로 손목 인대 파열이 발생하여 끙끙대며 병원을 방문하는 나의 모습이 저절로 그려졌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단어 필사였다. 문장 전체를 베끼는 것이 아니라 단어를 옮겨 적어보는 것이다. 모든 단어를 다 적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 쓰지 않는, 또는 낯선, 신기한 단어들을 만날 때, 그것들을 나의 노트에 적어 본다. 손을 움직여 한번 적으면서 눈으로 또 한 번 읽어본다. 굳이 외우려고 하지는 않는다. 억지로 외우려고 하면 스트레스이니까. 한번 적고 한번 읽고 그렇게 정리한다. 그렇게 쓰다 보면 어느새 노트 한쪽이 각종 단어들로 꽉 채워진다. 필사한 단어들을 굳이 다시 들춰서 읽어보지는 않는다. 그럴 시간에 오히려 새로운 필사를 시작한다.
문장 전체를 필사하지 않기로 한 것은 잘한 것 같다. 보통은 많은 사람들이 감명 깊고 인상 깊었던 문장들을 필사를 하거나 인용을 한다. 나도 간혹 그렇게 필사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일상적인 주된 필사는 내가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은 단어들 필사다. 좋은 문장을 필사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의식 무의식 속에 그 문장이 자리 잡아서, 어느 순간에 내 것으로 착각하고는 마치 내가 그 문장을 만들어낸 것처럼 쓰고는 내가 그 문장의 저작권자인 것처럼 행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간혹 표절 시비가 붙는 것이 그런 경우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좋은 문구를 반복해서 필사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 문구가 내 것으로 자리 잡아서, 어느 틈에 내 글에서 그 문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지 않을까 싶다. 표절했다는 의식을 알아차릴틈도 없이 말이다.
간혹 기발하거나 멋진 문장이 머릿속에 스칠 때가 있다. 그때 잊어버릴세라 급히 적어보는데, 가끔은 그렇게 적은 통찰력 있는 문구가 정말 내가 스스로 생각해 낸 것인지 또는 과거에 내가 읽었던 어떤 책이나 글에서 인상적인 것들이 내 무의식 속에 남아있다가 어느 날 마치 내가 스스로 창작해 낸 생각인 것처럼 툭 튀어나온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나 자신도 모르게 내가 창작해 낸 글이라고 생각한 것이 알고 보니 언제가 읽었던 누군가의 글이나 표현일 수도 있지 않는가. 사실 내가 쓰는 모든 글은 과거에 어떤 사람들이 창작하고 만들고 쓰고 필기했던 단어, 어휘, 문장, 자구들의 누적된 층위 위에서 그것들을 재조합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문학 서적들의 문장 속에 있는 단어들을 적다 보니까 난생처음 보는 말들이 많아서 흥미롭기는 했지만. 어떤 단어들은 내가 평생에 이 단어를 단 한 번이라도 써먹을 일이 있을까 싶은 것들도 꽤 있었다. 글을 앞으로 꾸준히 쓴다면 혹시 나중에 글을 발표하거나 책을 펴낸다면 나의 글을 읽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해 보았다. 전문적인 문학 애호가나 비평가들은 아닐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읽히려면 어떤 단어나 글이어야 할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가 기사에 주목하게 되었다. 특히 어떤 인물들과의 깊이 있는 인터뷰 기사에 관심이 많이 간다. 기자의 질문과 인터뷰 대상의 답변을 읽다 보면 내가 미처 몰랐던 분야나 영역에 대한 짧지만 통찰력 넘치는 견해를 알게 되고 새로운 흡인력 있는 단어나 표현도 배우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장이 이해가 된다는 것. 이것이 내게는 가장 중요했다.
디지털화된 세상, 조금만 클릭하면 다종 다기 다채로운 글을 읽을 수 있고, 살짝 카피해 올 수도 있고, 심지어 카피할 수 없게 막아두어도 사진 캡처로 쉽게 따붙여올 수도지만.
그래도 종이 노트에 볼펜으로 한 글자씩 눌러쓰는 필사의 힘을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