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글씨 저널링의 효과 - 생각정돈

저널링_생각정돈(성금)

by 지훈

마트에서 식료품을 사서 돌아오는 길,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다리 끝에 여자 두 명이 보였다. 그 자리에 서서 두리번거리며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과의 간격이 가까워지면서 구체적인 윤곽이 눈에 들어왔다. 각자의 손에는 책받침 같은 것을 들고 있었고 거기에 하얀색 종이가 끼워져 있는 것 같았다. 나이는 대략 40대로 보였는데, 요즘은 워낙 나이대를 가늠하기 힘들어서 정확하지는 않다. 그들과 눈빛이 마주쳤고 나는 그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종교단체에서 나와 전단지를 건네려나 하는 추측이 들었다. 전단지를 내밀면 간단하게 받고 지나쳐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거의 한 걸음 정도 가까이 왔을 때, 두 사람 중 한 명이 불쑥 내 쪽으로 얼굴을 내밀며 발달 장애 관련 단체에서 일일 찻집을 한다고 말을 건넸다. 나의 예상이 빗나갔기에 약간 당황했고, 생각지도 못한 일일 찻집이라는 말에 또 주춤했다. 나는 그 사람이 추가적인 설명을 하기 전에 손을 흔들며 관심이 없다는 점을 표시하며 자리를 비켜 걸어갔다. 걸어가다가 살짝 뒤돌아 보니, 두 사람은 다리를 건너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몇 발짝 걸어가다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일일 찻집이라면 내게 성금을 요청하더라도 일정 한도 이내의 금액일 것 같고 한 끼 식사 이내 비용이 아닐까 싶었다. 굳이 내가 그들의 설명도 뿌리치며 달아나듯이 비켜서 종종걸음을 칠 일이었나 싶었다. 잠시 나는 망설이다 지갑에 있는 현찰을 확인했다. 그리고, 되돌아갔다. 만약 내 시야 안에 그 사람들이 있다면 걸어가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판단하면 될 일일 것 같았다. 물론 이야기까지 듣게 되면 십중팔구는 성금을 내게 될 것이 뻔한 일이었다.




다리께로 도착해서 둘러보니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벌써 다른 구역으로 이동을 한 것 같았다. 나는 다소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그들의 설명도 다 듣지 않고 자리를 재빨리 피하게 된 것은 일일찻집이라는, 최근에 기부후원유치 캠페인과 비교해서 다소 낯선 활동이었다는 점도 있었지만, 그들이 들고 있었던 하얀 종이를 낀 책받침에 대한 인상도 한몫했었던 것 같다. 나는 내심 그 종이에 나로 하여금 무엇인가 적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 예를 들어 일시후원이든 정기후원이든 나의 개인정보 같은 - 추측을 했던 것 같다. 나의 추측이 사실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지금 와서 확인할 길은 없지만 불현듯 과거의 일이 연상되었다.




어느 날 길가 한편에 세계적인 구호 활동을 하는 국제기구 마크가 새겨진 간이 부스에, 그 마크가 새겨진 조끼를 입은 두서명의 남녀 청년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무엇인가를 홍보하고 있었다. 나는 간혹 그 국제기구에 일시후원을 하기도 했었기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가까이 가보게 되었다. 퀴즈였던가, 무엇인가를 간단하게 하면 국제적으로 우리보다 많은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알고 보니 결국은 그 자리에서 즉석 정기후원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국제기구 이름을 달고 부스를 차렸지만 길거리였고 그 자리에서 개인정보를 기입한다는 것이 매우 미심쩍었고 거부감이 들었다. 그들의 간곡한 설득과 설명을 듣고도 나는 몇 가지 의문점이 들어서 질문을 했고 그들이 해당 기구의 직원이 아닌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들임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사실이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결국 나는 정기후원 가입은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 자리를 벗어나면서도, 나 보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다른 나라 사람들을 위해 후원을 하지 않은 나 자신에 대한 책망보다는 후원 가입을 길거리 홍보를 통해 하면서 그 자리에서 개인정보까지 요구한다는 것이 마뜩잖았다. 마지막에는 국제기구 마크를 인쇄한 그 부스도 진짜일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몇 주 전 지하철역 바로 앞에서 작은 모금함을 두고 목탁을 두드리며 탁발을 하는 승려를 보았다. 오후 5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고 그는 혼자였다. 나는 그냥 지나치다가 뒤돌아 보았다. 그의 앞에는 소년 두 명이 있었다. 처음엔 그 소년들이 성금을 내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들은 그냥 굴렁쇠같이 보이는 물건을 가지고 노닥거리고 있었다. 나는 좀 갈등했다. 그냥 가버릴까 했다. 그런데, 그늘도 없는 땡볕에 목탁을 두들기며 간간이 고개를 숙여 지난가는 행인들에게 인사를 하는 그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지갑을 확인해 보니 지폐는 달랑 2천 원이 있었다. 기억하기로는 그 전날엔가 무슨 일로 만 원권은 다 소진한 상태였던 것 같다. 다시 그냥 갈까 하는 마음과 조금이라도 성금을 내자는 마음이 갈등했다. 1천 원을 꺼내서 모금함에 가까이 가서 통에 집어넣었다. 그가 얼굴을 가까이 내게 들이밀면서 동시에 손을 내밀면서 나의 손을 잡으려 했다. 나는 예상치 못한 그의 몸짓에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여자였다. 나는 두 번 놀랐다. 그 사람이 여자일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그는 진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성불(成佛)하십시오." 나는 딱히 뭐라 말할지 몰라 고개만 끄덕이고 물러났다. 고작 1천 원을 모금함에 성금으로 내고는 성불(成佛)하시라는 엄청난 말을 듣다니. 내가 그럴 자격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뒤로 물러서는 내 눈에는 모금함에 붙여있는 문구가 들어왔다. 어떤 꽃모양 로고 밑에 무슨 사회 복지회라고 쓰여있었다. 나는 되돌아오면서 갸우뚱해졌다. 흔히 알고 있는 우리나라 불교계 최대 종단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시 생각이 든 것은 내가 아는 한에는 불교계에서는 길거리 탁발을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승려는 어쩌면 진짜 승려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라는 말은 진심처럼 들렸고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만약에 혹시라도 내가 성불(成佛)한다면 1천 원으로 성불(成佛)한 최초의 인간으로 기록될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이렇게 그날그날 있었던 내 감정과 생각의 요동침에 대해 손글씨 저널링으로 정돈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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