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5년 전에 난생처음 블로그를 만들어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했던 것은 최근에 읽은 책에서 마음의 울림을 준, 귀감이 되는 문구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책을 읽다 보니 내가 흥미 있게 읽은 내용을 블로그로 소개하면 많은 사람에게 나의 독서 경험도 공유하고, 책에 대한 관심도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블로그를 시작하기 전부터 다른 블로거의 독서 후기 글을 많이 읽었던 영향이었다. 다른 블로그에 게시된 신간 표지와 명언 문구를 찍은 생생한 사진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었다.
마침 그때 고전부터 최근 갓 출간된 책까지 두루 읽고 있던 터라, 핸드폰 카메라를 이용해서 책 표지, 통찰력 있는 문장, 책날개 저자 소개까지 정성껏 찍어 보았다. 우선 내가 직접 찍은 책 표지 사진과 그 아래에 책 내용 일부를 소개하는 글을 올렸다. 전체적으로 왜 이 책을 고르게 되었는지, 책에서 어떤 문장이 기억에 남았는지, 그 문장이 나의 일상생활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대략 그렇게 구성했다. 그리고 글의 중간마다 표지 사진, 문장 사진, 책날개 사진 등을 다시 편집해서 넣었다. 그렇게 첫 블로그 글을 며칠 동안 상당한 시간을 들여 어렵사리 구성해 보았다. 다른 블로거만큼의 수준 높은 서평이나 독자 후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략 평균 수준의 책 소감문 정도는 만들어진 것 같아 내심 뿌듯했다.
그렇게 몇몇 도서들에 대한 감상과 생각을 블로그에 올리다가 불현듯 저작권에 대한 문제가 떠올랐다. 다른 블로그들의 책 인용 글과 사진을 보고 그 방식을 그대로 빌려서 따라 했었는데,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일까? 책 표지 사진, 책날개 사진, 인용 문구 사진 등이 마음에 걸렸다. 혹시 출판사나 저자가 동의 없이 무단 사용했다고 보상을 요구하면 어쩌지? 그런데, 나 말고 다른 블로그들도 책 사진을 많이 올리는데 그 사람들은 출판사에 일일이 허락받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일까? 출판사 동의하에 올리는 사람이 일부 있을 수 있겠지만, 모두가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편으로 이런 식으로 많은 블로그에 책이 소개되면 저자와 출판사의 허락은 없었다고 해도, 결국 책이 널리 홍보되어 판매 실적이 올라갈 테니, 그것은 다시 저자와 출판사에게 이익으로 되돌아갈 테니까 굳이 저자나 출판사가 항의를 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가만 그런데, 다시 또 생각해 보니 책 표지 디자인은 책 내용과는 별개로 보호되는 저작권이 아닌가도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확인해 보았다.
책 소개는 서평을 쓰는 맥락에서 비영리적·비상업적인 목적이라면 공정 이용에 해당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상세하게 책 내용을 그대로 옮겨서 적거나, 상당량의 책 내용 사진을 올리면 문제의 소지가 있다. 또한, 내가 염려한 것처럼 책 표지의 표지 디자인, 일러스트 등은 책 내용과는 별개로 저작권 보호를 받으며, 원칙적으로 저작권자의 동의를 받아야 온라인에 공표할 수 있다. 이 정도 저작권 관련 체크를 한 다음에 고민 끝에 결국 블로그에 올렸던 책 표지 사진과 책 안의 문장을 찍은 사진들, 책날개 저자 소개 사진은 모두 삭제했다. 책 표지 사진이 없이 블로그에 글만 쓰여 있는 상태를 보니 다른 블로그들에 비해 전체적으로 심심해지기는 했지만, 사진을 찍고 올리면서 이것이 저작권 침해일지 아닐지를 고민하며 심난해하고 싶지 않았다.
독서 후기 다음으로 올린 글은 내가 일하는 문화 분야와 관련된 기사나 정보 소개였다. 프랑스어를 전공했기에 아무래도 프랑스 현지의 새로운 뉴스에 늘 관심이 있었다. 개중에는 여전히 우리에게 잘 소개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특히, 프랑스 정부 차원의 새로운 문화정책이나 사업에 대한 부분이 주된 나의 관심사였다. 평소에도 프랑스 일간지나 프랑스 문화부 사이트의 기사 또는 공지, 보고서 글을 즐겨 찾아보는 편이었는데 따끈따끈한 새 소식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주고 싶었다. 지식과 정보는 나눌수록 그 의미가 커지는 것이니까. 그렇게 나름 원어 자료를 우리말로 옮긴 다음에 블로그에 올렸다. 이렇게 차곡차곡, 우리가 미처 몰랐던 프랑스 문화 분야의 새로운 정책에 관한 기사나 정보를 올리면 개인적으로는 전문성이 쌓이고, 사회적으로는 문화 부문 발전에 일정 정도 이바지하지 않겠는가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런데, 역시 어느 날 저작권에 관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특히 해당 일간지의 허락도 없이 기사를 그대로 우리말로 번역해서 블로그에 올리는 것은 생각해 볼수록 향후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나는 기사 전체 문장을 그대로 옮기지는 않았다. 요약 및 축약 방식으로 글을 정돈했고 처음 시작과 맨 마지막 문장에 나의 의견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구성했었다. 그러나 그런데도 고민이 되기 시작한 것은 다음 부분이었다. 먼저 해당 언론의 허락이나 동의 없이 번역하는 것이 문제이다. 물론 동의 없이 번역까지는 할 수 있고 나 혼자서 번역된 글을 보관하면 그만이기는 하다. 하지만, 동의 없이 번역한 기사 글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블로그에 올리는 것은 저작권 침해일 것 같았다. 특히, 외국 저명 언론의 기사가 단순보도 정도가 아닌 담당 기자의 취재와 노고가 투입된 집중 기획 기사라면, 동의 없는 번역과 온라인 블로그 등재는 적지 않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애초에 어렴풋이나마 이런 점을 고려했었기에, 기사 전문을 싣지 않고 핵심 요약과 일부 인용, 그리고 해당 기사 내용과 관련된 다른 몇몇 언론의 보도 내용을 포함하여 종합하여 글을 정리하는 방향으로 글을 집필했었다.
언론 기사 이외에도 프랑스 정부 부처인 문화부에 공표된 보도 자료와 보고서 등을 번역하여 올렸다. 물론 이것도 전체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고 내용을 가급적 요약했다. 일반적으로 정부의 보도 자료는 공공 영역(퍼블릭 도메인)에 속하므로 상업적 용도로 이용하지 않는 한 활용이 가능하다고 알고 있다. 그럼에도 다른 국가 정부 부처의 자료를 허락 없는 번역 하여 소개하는 것에 찜찜함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나는 프랑스 문화부에 아직 대한민국에 잘 소개되어있지 않은 귀 문화부의 정책에 관한 자료들을 한글로 번역하여 내 블로그에 소개하고 싶으니, 이 점을 허락해 주면 고맙겠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허락의 가부 여부에 대한 회신은 오지 않았다. 회신이 오지 않은 것이 해당 자료들은 공공 영역에 속하여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므로 굳이 공식적인 허락 통지가 필요하지 않아서 안 보낸 것인지, 또는 다른 나라 개인 블로거의 공식 허가 요청이 정부기관이 대응할만한 사안은 아니라고 여긴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를 발견했다. 주요 보도 내용을 요약해서 소개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보도 자료를 보면 통상 연관된 사진이 같이 따라붙는다. 그래서 해당 보도 자료의 사진들을 다운로드하여 편집하여 글과 같이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진행하다가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보도 자료에 같이 붙어있던 사진을 가만히 살펴보니 사진 바로 아래에 다음과 같은 표기가 있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 Adagp, Paris, 2025. 이 사진의 저작권은 파리에 있는 ADAGP(프랑스 시각예술작가 저작권협회)에게 있고 저작물은 2025년에 등록되었다는 뜻이다. 사진에 관하여는 명확하게 저작권 표시가 되어있는데 그것을 동의도 없이 무단으로 내려받아 편집해서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저작권 침해인 것이다. 결국 내가 그동안 올린 프랑스 문화부 보도자료 소개 글에 있는 사진들을 모두 삭제했다.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그동안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기존의 썼던 내용을 다시 수정하거나, 내가 올린 글에 대한 자부심을 만끽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작권 논쟁거리가 될 점은 없는가에 대한 우려가 가시지 않았다. 도서 소개, 외국 주요 뉴스 소개, 외국 정부 부처 보도자료 소개. 비상업적 용도로 사용한다면 일정 정도 범위에서 사용이 가능하다고 해석을 들었지만, 때에 따라 저작권 침해 논란이 있을 수 있겠다 싶어 보였다. 여러 번 다양한 각도에서 숙고한 끝에 나는 그동안 블로그에 공개로 올렸던 모든 글들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마다 저작권 문제를 떠올리면서 골머리를 싸매고 싶지는 않았다. 한참 생각 끝에 타인의 저작물에 대한 나의 의도치 않은 침해 발생 가능성을 말끔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하고 책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대신에 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판단하는 내용의 글을 쓰면 될 일이었다. 남의 저작물을 허락도 없이 가져다 쓰거나 또는 허락받을 방법을 찾아 고군분투하는 대신에 나의 온전한 저작물을 만들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결심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나는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작권자가 되기로 했다.